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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93325577
· 쪽수 : 414쪽
· 출판일 : 2012-07-28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 윤호섭 교수 9
시리즈 서문 14
서문: 그 종류대로의 창조 18
감사의 글 23
제1강 창조-진화, 그 논쟁의 역사 29
제2강 다윈과 『종의 기원』 57
제3강 유전법칙과 창조-진화 논쟁 109
제4장 현대 생물학과 창조-진화 논쟁 127
제5강 핀치와 불나방, 진화의 아이콘? 163
제6강 분류학과 비교해부학의 증거 187
제7강 계통발생설과 헥켈의 사기극 217
제8강 지층과 화석, 서로 다른 해석 243
제9강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기원 273
제10강 조류, 포유류, 곤충, 식물의 기원 309
제11장 결론 349
주(註) 355
내용 색인 397
후원기관 및 저자 소개 407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그 종류대로의 창조
본서는 『창조론 대강좌』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자 창조-진화 논쟁의 중심적인 토픽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책인 『다중격변 창조론』이 시리즈의 지질학적 기초가 되는 책이라고 한다면, 본서는 시리즈의 생물학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생물은 진화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목을 매고 있는가? 창조론자들의 중심적인 논지는 무엇이며, 왜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주류 과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가? 이것들이 본서에서 다루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다중격변 모델을 제시했던 첫 번째 책과는 달리 본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창조과학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즉, 나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양한 생명 세계는 하나나 혹은 몇몇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는 견해를 지지한다. 하지만 이 견해는 현대 과학의 기준에서 본다면 몇 가지 약점들이 있다. 가장 큰 약점은 창조론의 기초는 성경인데, 성경은 생명이나 종의 기원과 관련해서 창조주가 창조했다고만 기록할 뿐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이다. 아마 창조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방법론적 불가지론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에서 말하는바 창조주가 ‘그 종류대로’ 모든 생물들을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종의 창조나 분화에 대한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한 창조를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은 창조주가 어떻게 창조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이 맞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화론은 신앙적인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과학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내가 진화론에 대해서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현대 과학철학에서 말하는 과학의 정의에 의하면, 진화는 창조에 비해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 맞거나 진리라는 말은 아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단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를 과학적으로 기술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진화가 명백한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지 않음은 다윈 자신도 언급한 적이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단 하나의 종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즉, 우리는 단 하나의 종도 변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설사 변했다고 해도] 그 가상적인 변화가 유익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는데, [가상적인 변화가 유익하다는] 그것이 이 이론의 근거이다. 또 우리는 왜 어떤 종들은 변했는데 다른 종들은 변하지 않았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변하지 않은] 후자가 가상적인 변화를 가정하는 전자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진화론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진화론의 정신이다.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자존철학(自存哲學)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외부의 초월적인 창조주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주내재적 법칙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모든 진화론자들이 초월적 창조주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묵시적으로 그런 창조주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는 현대의 자연주의로 넘어가기 전, 18-9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이신론자들의 주장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 (중략) …
내가 진화론이 자존철학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진화론의 근본정신이 그렇다는 말이다. (근본정신은 그렇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진화론자라고 해도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유신론자,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적어도 과학적 연구에서는 엄격하게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창조주에 대한 의식적 언급 없이 자연적 메커니즘을 강조한다면 이신론의 덫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자연주의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이신론에서는 창조주가 순간순간 자연을 운행하시는 분이라기보다 주무시고 계시는 분이라고 보는데 곤하게 주무시는 창조주와 죽은, 혹은 계시지 않는 하나님은 현상적으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무신론이다”라는 핫지의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 있는 명제지만, 그 중간에 몇몇 가정과 역사적 증거들을 보충한다면 지금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나는 자연을 연구함에 있어서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유용함을 평가절하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학 연구에서 엄격한 메커니즘만을 강조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메커니즘 뒤에 있는 초자연적인 창조주에 대한 무시, 나아가 부정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다시 말해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로 귀결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창조론자들의 논리를 따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주의와 또 다른 반대 극단에 있는 초자연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나의 의도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혹은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평가해 주기 바란다.
끝으로 나의 천학비재(淺學菲才)로 부족한 점들이 많겠지만 본서가 독자들로 하여금 기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실 창조-진화 논쟁은 지난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워낙 치열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논쟁이어서 진화론자나 창조론자 모두 “그것은 이미 결론이 난 얘기가 아닌가?”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의 논쟁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더 치열한 논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래의 창조-진화 논쟁이 근래에 들어 창조-창조 논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 논쟁은 인간이 전능자가 되지 않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본서는 창조론이나 진화론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나 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원에 관한 논의들을 정리하고 재평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동안 창조론이나 진화론 양 진영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는 데만 핏대를 올리다보니 각자 상대방의 생각을 진지하게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본서는 창조론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지만 본서를 통해 창조-진화 논쟁은 물론 창조론자들 내부에서도 좀 더 생산적이고 진지한 토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본서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데 작은 부분이라도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명철의 집 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