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3506440
· 쪽수 : 271쪽
· 출판일 : 2012-08-09
책 소개
목차
펴내는 글 그리워서 고맙습니다
1 아직은 슬퍼할 때
아직은 슬퍼할 때
벌써 1년!
크리스마스 선물
어미니와 학교 바자회
더 이상 추가할 게 없는…
아프니까
겨울, 그 살아가던 이야기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
2 은행나무 한 그루
달밤
하늘로 보내는 팩스
책상
아버지, 다녀가셨습니까
은행나무 한 그루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우산 필요 없나요?
3 장마가 지나는 자리
봄이 쓸쓸한 까닭
제비
생명
친구
단비
장마가 지나는 자리
가을비
4 마침표
별비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조촘조촘
마침표
눈물겹다, 군밤
추위
관여의 결과
5 꽃과 눈 맞추다
가슴에 잦아들었으니 다시 사랑 있었겠는가
아마도 쪼끔은…
만날 수 없는 얼굴
사랑을 한 적 있을까
너, 그
비, 비, 비
꽃과 눈 맞추다
우리도 한땐 젊고 멋있었단다
묵은 책
6 미안해
빼빼로를 들고 간 딸에게
내 딸이어서 고맙습니다
사랑은 말이다, 애야
우리들이 기른 너희들
덮으면 더 뚜렷한 것
거미가 사는 법
미안해
시험, 그 과정에서 취해라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립다!”라고 말을 하게 되면 문득 기대고 싶어집니다. 아잇적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듯이, 그리고 내가 가슴을 열어 누군가의 얼굴을 받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용서의 시작입니다. 내 영혼은 아직도 키가 자라는 중입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양손으로 턱을 괴고 꽃이 피어 열매 맺기를 기다렸던 키 작은 꽈리가 그립습니다. 그 꽈리가 있던 마당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움이 거기에서 시작입니다. 기억 제일 안쪽에 자리한 꼬마 꽈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리워서 고마워!” 어머니가 옆에서 웃고 계십니다.
-펴내는 글, 「그리워서 고맙습니다」 중에서
우리 집의 월동 준비는 요강에 덮개를 씌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집안의 화장실이라는 건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그때, 집집이 윗목 한 귀퉁이에 요강이라는 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기로 만들어 멋진 꽃무늬 있는 요강도 있었고, 쨍쨍 소리 나는 놋쇠 요강도 있었고, 막 새로 나온 스테인리스 요강도 있었다.
어른 남자들은 무릎을 꿇고 쉬를 했고, 사내아이들은 서서 기세 좋게 오줌발을 쏘다가 곁으로 흘러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여자들이 요강에 앉았다 일어나면 엉덩이에 모두 둥근 자국이 뱄다. 딸이 둘인 우리 집은, 밤에 자다가 징징거리는 소리에 깬 부모님이 우리를 요강에 앉혔을 때 그 차가움에 오르르 진저리치는 것이 못내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슨 일에나 솜씨 좋으신 아버지는 국방색 군용 담요를 오려내어 요강에 덮개를 해 씌우셨다. 위아래를 박아 고무줄 넣고는 요강에 씌우는 건데, 거기에 앉으면 선뜩한 차가움도 없었고 엉덩이가 배겨 아프지도 않아 좋았다. 다만, 잠결에 엉거주춤 앉았다가는 오줌발이 옆으로 새 덮개를 적셔놓기 일쑤였다. 그래서 덮개는 여러 개였고, 어떤 때는 하룻밤에 서너 개의 덮개가 필요하기도 했었다.
_「겨울, 그 살아가던 이야기」중에서
내가 먼저 말 붙이기 전에는 생전 말씀 한마디 없던 무뚝뚝한 분, 무표정한 얼굴, 화장기 있는 얼굴이라곤 내 평생 서너 번밖에 뵙지 못한 손가락 지문이 남아나지 않아 주민등록증 갱신 때면 늘 동사무소 직원에게 타박을 들으며 한 달씩 일 삼가야만 했던, 전혀 그런 신분인 티를 내본 적 없는 부잣집 마나님, 건방진 딸년이 무시하건 말건 당신 능력 안에서 잠자코 온 정성을 쏟아 사시던 어머니의 그 투박한 손이 그립다.
_「어머니와 학교 바자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