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93632514
· 쪽수 : 223쪽
· 출판일 : 2015-10-22
책 소개
목차
독도 분쟁 연대표
책을 내면서
프롤로그 : 사건의 재구성
1장 17세기 최초의 한.일 영유권 분쟁
‘울릉도 쟁계’
수토사 장한상
17세기 조선, 2년 간격으로 수토제 시행 | 장한상, 독도를 관찰하고 기록한 최초의 관리
울릉도 쟁계의 시작, 안용복 사건
안용복 납치사건의 전말 | 죽도(다케시마)는 울릉도의 옛 이름 | “우리나라의 울릉도, 귀경의 죽도”
울릉도 쟁계의 전개, 달라진 정국, 달라진 전략
중차대한 외교 문제로 떠오른 울릉도 쟁계 | 조선,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출입 금지 요구
울릉도 쟁계의 열쇠, 공도정책의 진실
‘공도정책’은 독도를 강탈하기 위한 일본 측 논리 | 조선은 공도정책이 아니라 섬을 관리하는 ‘쇄환정책’ 실시 | 울릉도는 정말 무인도였을까
울릉도 쟁계의 결말, 죽도도해금지령
죽도의 조선 영유권을 인정한 ‘돗토리번 답변서’
영토 주권 의지 밝힌 수토정책
수토제는 영토주권 행사의 증거 | 조선, 1차 한・일 영유권 분쟁에서 승리
2장 19세기 다시 타오른 일본의 욕망
‘울릉도.독도 침탈’
태평양의 무인도, 일본의 영토가 되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어떻게 일본 영토가 되었나
영토편입의 열풍, 울릉도를 향하다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된 울릉도 | 도다 다카요시의 ‘죽도도해청원서’ | 일본인들의 불법 채취와 목재 벌목 극성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울릉도와 부속 섬은 우리 영토
일본, 울릉도에서 독도로 눈을 돌리다
독도 강치에 꿈틀거리기 시작한 일본의 욕망 |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독도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일본 | 1905년 일본, 시마네현에 독도 편입하기로 결정 | ‘마츠시마’였던 독도는 어떻게 ‘다케시마’로 바뀌었는가
독도는 무주지였을까
증거 1. 다시 보는 울릉도 쟁계 | 증거 2. 죽도지내송도 | 증거 3. 대마도 종가 고문서 no.4013 | 증거 4. 1877년 태정관 지령 | 증거 5. 심흥택 보고서
오가사와라 편입을 통해 본 독도 강제 편입의 문제점
독도 문제의 시작과 문제해결 실마리가 담긴 오가사와라 편입 과정 | 일본의 외교 문서와 ‘삼국접양지도’ | ‘약자’ 일본과 ‘강자’ 일본의 두 얼굴 | 미나미도리시마 사건
3장 21세기 새로운 독도戰의 시작
일본 제국주의 사상의 뿌리, 요시다 쇼인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 조슈번 | 이토 히로부미의 생가와 요시다 쇼인의 신사 | 요시다 쇼인의 사상, 정한론과 제국주의로 발전
아시아 침탈의 발판 ‘다케시마’
조선과 만주 정벌의 거점, 울릉도 |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지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일본의 독도 도발, 그 욕망의 본질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 일본 |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독도 도발 수위 | 역사 교과서 왜곡 통한 독도 도발 | 세 번째 ‘독도戰’ 준비하고 있는 일본
에필로그 : ‘동해와 독도’ 표기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
책속에서
1694년(숙종 20년) 8월, 조선 조정은 동해상의 섬 하나를 두고 일본과 외교 분쟁이 한창이었다. 일본 측 사신인 쓰시마의 도다 요자에몽은 “죽도는 일본의 땅이니 조선 어민들의 출입을 금지하라”며 2년여에 걸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말하는 죽도는 엄연한 조선의 땅, 울릉도였다. 몇 차례 교신을 통해 쓰시마 번주의 계략을 눈치챈 숙종은 영의정 남구만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우리나라의 울릉도와 귀경의 죽도’가 마치 다른 섬인 양 얼버무렸던 남인들의 회답서가 제대로 책이 잡힌 셈이다. 도다 요자에몽이 ‘울릉도’라는 문구의 삭제를 요구하며 회답서를 조선에 되돌려보낸 것이 우리에게 크나큰 행운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일 도다 요자에몽이 그 회답서를 그대로 일본에 가져갔다면, 그래서 남구만을 비롯한 소론 세력이 이를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었다면, 우리나라 지도에서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와 동해 바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은 80년간 울릉도를 버려두었고, 그 사이 일본인들이 드나들며 어로 활동을 해왔으니 이제는 일본의 땅이 되었다? 도다 요자에몽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야기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무주지 선점론’이다. 비어 있는 무인도를 일본인이 획득했다는 것이다. 과연 도다 요자에몽의 주장대로 조선은 섬을 버렸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