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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3799798
· 쪽수 : 370쪽
· 출판일 : 2013-10-22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_ 기억은 곧 양심이다
1부 정신적 궤적을 더듬다
1장 예술 이야기
희곡 ‘역마관’
코스모스와 나
우리 예술의 반성 1
우리 예술의 반성 2
우리 예술의 반성 3
2장 제국주의와 사대주의
사대주의와 새로운 국제사회
비단 리봉의 노래
괴로운 박수拍手
4·19 정신론
아메리카니즘에 대하여
3장 역사의 나와 주체
상황과 의식: 나의 심상心像 풍경風景
일상생활의 단편斷片: 영원한 기억
정치·사회·세계에 대한 수상隨想
무책임한 개인들
학생들에게 대답을 주라
동정同情
4장 뽀뽈리노, 뽀뽈리노
풍족하지 못한 뽀뽈리노들: 이탈리아의 서민층
나의 여성론 1: 애인의 논리
나의 여성론 2: 여자의 아름다움
단일민족의 저력 발휘하자
5장 문학예술의 터전
반지성과 비합리의 철학자 베르끄손
남과 나의 비극
‘존재’에의 정시正視
신문 없는 소르본느
상아탑 속의 강제노동: 프랑스 편
작품의 가치와 평가
단편소설 ‘계집애’
2부 일상의 자취를 더듬다
1장 최석규 선생에 대한 회상
나의 남편, 최석규_ 윤을병
최석규 선생님을 회고함_ 김석득
최석규 선생님 기억의 단편들_ 이성일
인생을 바꿔주신 스승님_ 손한
최석규 선생과의 몇 번의 만남_ 이병근
최석규 교수님과 “La Porte etroite”_ 김희정
존경하는 최석규 선생님을 추모하며_ 심선화
알레지아의 부케Le Bouquet d'Alesia 카페에서_ 정재규
슈퍼 할아버지, 무슈 최_ 박성희
최 석규 교수님을 추억함_ 김정수
최석규 선생님과의 추억_ 성낙수
2장 최석규 선생의 사랑
어머님 전 상서
연인에게 쓰는 편지
윤을병 여사 독창회 가사 번역
붙이는 자료_ 최석규 연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러나 4·19는 당장에 나타나는 정치적인 결과보다도, 어디까지나 그 정신적인 새 자세에 참다운 뜻이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민권의 존엄성을 드높이 외치며, 행동으로써 압제자를 몰아내기에 성공했다는 것은, 예부터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훤히 트인 새 전망을 열어 준 것과도 같고, 수백 년 고였던 연못에 사상의 돌을 던져 잠들었던 모든 생명을 일깨워 놓은 것과도 같다. 그들이 정권에 무심했던 것은 결코 4·19를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수성과 정신성을 결정적으로 부각시킨 사실이다. 따라서 4·19는 그것이 혁명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것까지도, 일체를 국민과 앞날의 역사에 맡기고 있다는 데에 중요한 뜻이 있다. 단순히 정권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정변政變이라면 일시에 그 성패와 성격이 결정될 수도 있지만, 4·19는 사회의 병든 생리를 뜯어고치는 싸움의 시작인만큼, 오랜 세월과 모진 파란을 거쳐야 할 역사적인 투쟁이요, 그런 뜻에서 어디까지나 하나의 혁명이다.
현대로 가기 위해 동양을 버릴 것인가? 동양을 찾기 위해 현대를 버릴 것인가? 이러한 양자택일의 두 길 사이에 거의 발 딛을 곳도 없는 듯 우리의 마음은 괴로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딜레마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서양에도 고대와 현대가 있고 동양에도 고대와 현대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 있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예술은 언제나 거센 대립 속에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왔다. 이집트가 그리스에 준 영향, 그리스가 르네상스 이탈리아에 준 영향, 르네상스 이탈리아가 근대 프랑스 미술에 준 영향―그 어느 경우에도 묵은 것과 새것의 대립, 남의 것과 내 것의 대립은 이들의 예술을 죽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놀라운 창조를 자극하였다. 그러면 우리의 딜레마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낳은 유령과도 같은 것―다시 말하면 우리의 현대를 살지 못하는 주체성 없는 의식의 자기표현일 뿐이다.
남편이 외출 시에는 그가 꼭 챙기는 것이 있었는데 담배, 라이터, 휴지 그리고 펜이나 연필과 한두 장의 백지와 들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조그만 책이었다. 학문적인 새 이론이 생각나면 적기 위해서였다. 머릿속에 자기가 쓰고 싶은 언어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 했으며 다른 부면에 대해서도 글로 많이 써낼 수 있는 실력이 있었는데도 그에겐 글 쓰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어 글로 써내지 못하고 가신 것이 너무나 아깝고 안타깝다. 그는 항상 말하길, 글은 읽어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끔 필요 없는 말은 집어넣지 않고 명확하게 써야 된다고 했고 그래서 접속사 하나에도 신경을 무척 썼으며 글을 하나 써내게 되면 그 글을 거의 외워서 말할 정도였다. 내가 그이보다 1년 전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던 편지가 차차 늦어져 나중에는 몇 개월에 한 번 정도 보내왔다. 그 후 연대 음대 황병덕 교수님에게서 들은 말인데 강의 끝나고 오후에 다방에서 최 선생을 만나게 되면 항상 편지만 쓰고 있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