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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연극 > 연극인/연극이야기
· ISBN : 9788993818994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9-08-01
책 소개
목차
1장 죽은 연극
2장 성스러운 연극
3장 거친 연극
4장 살아 있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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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셰익스피어는 뿌리 없이 마법처럼 홀로 구름 위로 우뚝 선 존재가 아니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문제를 더 면밀히 살펴 셰익스피어가 특별히 어떤 면에서 출중했는지를 알아내야 할 것이다.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단적인 사실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하루에 몇 시간씩 저자에서 사람들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말이다. 이는 오늘날의 작가들에게도 통용되는 장치다. 그는 이 시간의 일각일초를 허비하지 않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살아 숨 쉬는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수집했다.
죽은 연극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구습의 반복일 뿐이다. 죽은 연출가는 낡은 공식, 낡은 기법, 낡은 농담, 낡은 효과를 그대로 가져다 쓰며 매 장면을 뻔한 방식으로 시작해 뻔한 방식으로 끝낸다. 무대 디자이너나 작곡가처럼 연출가와 함께 일하는 모든 협력자도 매한가지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장과도 같은 진공 상태에서 의상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음악은 왜, 무엇을 위한 것인가 등등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연극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죽은 연출가란 연극에 종사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배어 있는 조건반사적 타성에 일격을 가하지 못하는 연출가다.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은 공습(1943년 8월)으로 잿더미가 되어 무대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이 모여들었고, 가수들은 종잇장처럼 얇은 뒷벽뿐인 무대를 바지런히 오르내리며 〈세비야의 이발사〉를 공연했다. 어떠한 고난과 장애도 그들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그마한 다락방이 쉰 명 정도 되는 관객으로 꽉 들어찬 가운데 손바닥만 한 빈틈에서 최고의 배우 몇 명이 흔들림 없이 공연을 이어갔다. …… 그런 공연에는 진지하게 논쟁할 거리도 없고 분석도 필요치 않았다. 몇 해 전 런던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해 겨울 독일의 연극은 허기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 허기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허기, 그 무엇으로 채운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는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어떤 실재에 대한 허기였을까? 아니면 삶에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허기, 아니 현실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완충 장치에 대한 허기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