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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3964585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3-05-27
책 소개
목차
다 묶지 못한 매듭
오늘을 보고, 내일을 보고
사유의 길
사신은 어디로
대륙을 자르다
평곽의 전화
재사의 길
흩어지다
누구를 위한 나라이냐
알 수 없는 소년
해를 쫓는 이유
이상한 장군
구부의 소
약속을 지키다
형제가 건넨 붉은 꽃
최후의 전쟁
태왕은 존재해야 하는가
기다리는 이 없어도
간도, 쓸개도, 염통도
농부가 밉구나
이련의 분노
백성의 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마침내 평곽의 성문이 열리고, 단 한 기의 인마가 넓은 성문을 통과하여 모용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온통 뒤집어쓴 흙먼지에도 아랑곳 않고 아영은 이마께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그대로 모용인을 내려다보았다.
“고구려의 원군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어리둥절하여 묻는 모용인에게 아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고구려의 원군이다.”
“예?”
“내가 바로 십만 군사이며, 모용황의 숨통을 끊을 칼이다.”
아영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한 모용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 허황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평생 들어온 어떤 말보다 그를 강하게 전율시킨 까닭이었다.
“부왕께서 그리도 틀리셨나요?”
돌연한 물음에 놀란 왕후는 아들을 깊숙이 바라보았다. 작게나마 일그러진 구부의 표정으로 보건대 필시 제 아비를 비난하는 말을 들었음에 틀림없으리라. 안타까운 기운이 왕후의 고운 얼굴을 몇 번이나 스쳤다. 언제고 자신에게 던져질 질문인 줄은 알았건만 마땅한 대답을 준비하지는 못한 터였다.
“누군가 폐하를 욕하더냐?”
구부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도 말이 없자 왕후는 다시 천천히 물었다.
“너는 폐하를 어찌 생각하느냐?”
“그게…….”
“편히 말해보거라.”
“전쟁은 서로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 일과 비슷해요. 어느 한쪽이 맞고 그만두어야 끝나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때린 뒤 그만두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맞고 끝내려는 거예요. 즉 사람들은 거짓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고, 아버지는 참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시는 거예요.”
“내 추한 어미가 싫었소. 나를 버린 당신이 싫었소. 나를 동정하는 사신장이 싫었고, 나를 구제한 원목중걸이 싫었소. 내 잘난 형제들이 싫었고, 점잔을 빼는 신하들이 싫었소. 죽은 당신을 잊지 못하는 백성들이 싫었소. 고구려를 이기지 못하는 장수와 병사가 싫었소. 마치 내가 모자란 것 같아 싫었소. 모두가 싫었소. 내 삶은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싫은 것투성이였소.”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묵묵히 모용외의 봉분을 바라보다 박힌 돌덩이 하나를 뽑아내며 말을 이었다.
“좋은 것이 갖고 싶었소. 당신의 소원대로 고구려를 부수고 천하를 얻고 싶었소. 그리하면 당신도, 신하도, 백성도 모두가 나를 좋아할 것이라, 그 싫은 모든 것이 좋은 것이 되리라 믿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