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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964837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4-07-21
책 소개
목차
신파 블루스 1 - 지옥문 노크소리(Knockin’ on Hell’s Door)
생각하는 사람 1 - 분서갱유(焚書坑you)
신파 블루스 2 - 병맛 본좌
생각하는 사람 2 - 존재와 무식
신파 블루스 3 - 잉여류 게임
생각하는 사람 3 - 인생이 아름답냐
신파 블루스 4 - 오랜 축하
생각하는 사람 4 -밀명(密命)과 흉기
신파 블루스 5 -돈키호테 간뎅이
생각하는 사람 5 -철권(鐵拳) 햄릿
옛날 소품 1 - 야전병원의 1, 2, 3번
생각하는 사람 & 신파 블루스 - 일심이체(一心二體)의 독백과 기묘한 대화
옛날 소품 2 - 기시감
신파 블루스 6 - 당근과 롤빵, 그리고 하여가(何如歌)
생각하는 사람 6 - “임무 완수했습니다!”
옛날 소품 3 - 파운데이션K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 이제 마시면서 얘기를 좀 하지.”
이렇게 그는 ‘얘기를 좀’ 시작했다.
내게 설희 말고 자길 욕하라며 제 가슴을 탁탁 치기도 했고 (반창고를 두 개나 붙인 주먹으로) 아나운서가 되려는 그녀를 ‘우리 아빠’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지네 아빠가 어느 종편 방송의 보도국장이라나.
공중파도 아니네, 뭐. 나는 차분히 내 앞의 생맥주잔을 비워갔다.
미꾸라지는 그 외에도 뭐라뭐라 얘기를 무지 많이 했는데 정확히 기억나는 건 없다. 삼포 세대가 어떻고, 너희들의 고충과 고민이 가슴 아프네, 했는데…, 나나 설희보다 적어도 스무 살은 많은 국회의원이나 교수인 양 했다. 제일 황당한 건 나더러 웬만하면 알바 때려치우라는 것이었다. 피 같은 청춘 한 시간이 어떻게 돈 5천 원하고 등가일 수 있느냐, 착취 안 당할 자유와 시간을 확보하라나? 그 와중에 난데없이 니체와 마르크스가 나와서 개고생을 하다 절룩거리며 들어가기도 했고…….
그 타이핑비-A4 한 장 빽빽이 쳐주고 받는 1천 원 남짓의 돈을 맞춤법 까탈을 부려 떼먹는 놈들이 다 있었다. 그렇게 제 노력과 시간과 돈을 떼이고 나면 그녀는 한동안 삽질과 뻘짓에 빠져들었다. 스타크나 리니지, 혹은 실물은 감히 흘겨볼 수도 없는 명품가방 검색 따위로 또 밤을 새우는 것인데, 그런 어느 날인가 설희는 ‘피눈물이란 게 실제로 있는 거더라’고 말하며 뻘건 눈으로 웃었다.
그 비슷한 일들이 몇 번 되풀이되고 나자 설희는 치사한 먹물판에 안 들어간다고, 나도 폼 내며 살겠다고 선언했다. 아나운서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세상에 대한 시각도 바꾼 것 같았다.
“까짓거, 어떤 인간 말마따나 ‘다 줄 각오’ 하지, 뭐. 개새끼들, 그럼 될 거 아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 그녀에게 홧술을 받아주면서도 머릿속에선 안주 값과 주머니 사정의 밀당을 벌이던 내가. 그런 주제에 설희 같은 퀸카를 끝내 탐냈던 내 죄가 컸다.
“명문대는 인마, 고대가 명문대냐?”
“아주 배가 불렀네. 그럼 나 같은 건 대학생도, 아니 인간도 아니겠다.”
“야, 솔직히 우리 학교 애들도 우울해.”
“왜?”
“설대 못 가서. 설대 다니는 사촌이나 동창한테 괜히 꿀려서. 물론 뭐 애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비위장이 틀렸다. 나는 노골적으로 반말을 했다.
“너도 그러냐?”
곽은 입술을 비틀어 픽 웃었다.
“난 꼭 설대 때문은 아니고…… 인마, 요즘은 고시 같은 거 붙어도 입에 금 숟가락 안 물고 태어났으면 다 마찬가지 아니냐. 잉여 잉여거리면서 사는 건 마찬가지라고.”
“함부로 잉여 잉여 하지 마라. 진짜 잉여한테 죽는 수가 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