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4081243
· 쪽수 : 252쪽
책 소개
목차
사라지는 사람들
사포, 꽃밭을 살피는 별감
통정(通情)의 대가
살인의 서막
나그네 꿈
인평대군
대궐의 굴뚝
항장(項莊)의 춤
채잡이와 멍에막이
궁귀(宮鬼)
금기(禁忌)
궁녀들의 암호
왕의 정사(情事)
반정의 추억
미궁, 그 수수께끼의 궁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궁은 아름답지만 얼마나 적막한 곳인가? 해가 지면 국왕과 왕위를 계승할 세자를 제외한 어떤 성년 남자도 머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금원(禁苑)이다. 그러니 궁에서의 세월은 어떤 이에게는 일각이 일촌처럼 빨리 흘러갈 것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백리를 걸어야 하는 나그네처럼 지루하고 힘들게 흘러갈 것이다. 또한 사십이 되면 사그라지고 오십 줄에 들어서면 오그라져가며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 바로 궁의 여인들이 아닌가? 내 그 여인네들 중 하나에게 조그만 위안이 되어주었거늘, 무슨 대역죄를 지었다고 이리 매달리기까지 해야 하는가? 억울하고 또 억울하구나!
전조라는 것이 있다. 어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보이는 조짐이 그것이다. 그날 아침 수라간 윤상궁의 사가에서 온 소식으로 인해 수라간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고, 잠깐의 불찰로 맥적을 태운 오숙수가 홀로 수라간에 남게 되었고, 행방이 묘연한 제조상궁을 대신해 부제조상궁이 대신 기미를 하러 대전에 들었고, 수라간을 지키던 오숙수가 문득 맛이 궁금해져 남은 맥적을 입에 넣었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것이 전조라면 전조였다. 곧이어 전령 하나가 전해온 엄청난 소식과 비교했을 때, 앞서의 사건들은 마치 예행연습과 같은 것이었다.
광해군은 인조의 예상보다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 일국의 국왕이었던 이가 자그마치 십구 년간이나 겪은 수모는 참담한 것이었다. 감시로 붙여진 별장이 광해군을 아래채로 내몰고 자신은 안방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수발을 위해 딸려 온 나인은 그를 영감이라 부르며 대놓고 멸시했다.
그러나 광해군은 입을 꾹 다문 채 그 모든 수모를 견뎌냈다. 자신의 혈육인 아들과 며느리, 부인 모두를 잃고도 꿋꿋하게 명을 이어갔을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그가 스스로 화와 울분으로 세상을 한하는 일도 없어 보였다고 했다. 최후까지 그저 무언가 때를 기다리는 듯 담담하게 생을 이어갔다고 했다. 과연 무엇이 광해군을 그리 버티게 했을까? 무려 십구 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