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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스페인/중남미소설
· ISBN : 9788994207407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방금 도착한 이의 기록
계속되는 무(분명한 후반부)
부록
의식 절제 수술
우주가 된 호박(성장에 관한 이야기)
해설
옮긴이의 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연보
책속에서
나는 그다지 장엄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은 '무'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물론 수많은 이야기와 갖가지 "기억"으로 종이 위에 가득 채워진 거대한 '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숲처럼 울창한 '무' 속으로 독자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어떤 면에서는 유일무이한―예술이라고 분명하게 예고하는데도 독자가 '현존하는 것'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면, 그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러니 '무'여, 어서 시작하라. 크기를 줄이려 애쓰지 말고 어서 시작하라. '무'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이 책에 담겨 있는 만큼의 '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책 속에서 완결된다고 생각하진 마시기를.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말고는 내 삶에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바야흐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도 이제 작가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하던 '변호사직'을 그만두고, 최근 '문학'에 입문했다. 그런데 내 법률 의뢰인 중 누구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내 작품을 읽어줄 독자가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누구든 [내 작품을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작가의 최초의 독자가 되기만 하면, 후세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영원히 인정해줄 것이다. (…) 그러니 독자들이여,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그대들이 최초의 독자가 될 수 있는 이는 이 마세도니오밖에 없다는 점을 부디 잊지 마시라.
나는 어려운 것이 좋다. 사실 게으름을 피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유로운 게 더 좋다. 하지만 내가 뭔가 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여태껏 꾸물거리면서 연습한 게으름을 부리려고 애쓰는 건 아닌지, 가끔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게으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적어도 그런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