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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현대철학 일반
· ISBN : 9788994228938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4-05-20
책 소개
목차
머리글 5
사용설명서 16
1. 포장하기 2. 우주 여행하기 3. 낯선 사람 초대하기 4. 남에게 장보기 부탁하기 5. 카망베르 치즈 사기 6. 신분 사칭 하기 7. 소리 되찾기 8. 하찮은 것들 수집하기 9. 먼지 생각하기 10. 정돈하기 11. 더러운 짓 하기 12. 거짓 소문 퍼트리기 13. 코칭 받기 14. 바보처럼 여행하기 15. 치즈 냄새 맡기 16. 이별의 순간 포착하기 17. 집의 정령 추적하기 18. 영원 경험하기 19. 모르면서 아는 것 찾기 20. 자기 이름 잊기 21. 남의 생각 읽기 22. 영(靈) 만들기 23. 자기 이름 고르기 24. 크루아상 한 개로 여러 개 만들기 25. 무한 상상하기 26. 거짓말 믿기 27. 역순으로 식사하기 28. 의식 만들기 29. 전생 꿈꾸기 30. 가짜 행사 개최하기 31. 공기 속에 잠기기 32. 모국어 잊기 33. 나라 세우기 34. 속담 섞기 35. 여럿이 침묵하기 36. 동물 되기 37. 접시 시간 여행 보내기 38. 질문의 정원 가꾸기 39. 언어 사이 넘나들기 40. 금지어 목록 만들기 41. 책으로 책 만들기 42. 흔적 없애기 43. 죽을 운명끼리 포옹하기 44. 운명 선택하기 45. 뉴스의 난(欄) 없애기 46. 목록의 힘 발견하기 47. 소음 아래 숨기 48. 머릿속에서 인간이 만든 것들 지우기 49. 교통 체증 바라보기 50. 소음 목록 만들기 51. 깜짝 선물 선발 대회 열기 52. 시간표 바꾸기 53. 접속 끊기 54. 공항에서 사과 찾기 55. 이념 창안하기 56. 말의 함정 찾아내기 57. 가짜 자연법칙 만들기 58. 엉뚱한 질문 찾기 59. 우주 생각하기 60. 말의 육성 듣기 61. 말장난하기 62. 약호 만들기 63. 빛 맛보기 64. 새로운 체험 고안하기
책속에서
1, 포장하기
동전 하나와 종이 한 장을 준비한다.
그리고 종이로 동전을 대충 싸보자. 그런 다음, 눈에 보이는 대로 볼펜, 셔츠, 접시, 책, 신발, 통조림 등 여러 사물을 하나씩 종이로 싸보자. 물론 사물에 따라 종이의 크기나 포장 방법, 포장의 난이도가 각기 다를 것이다. 포장된 사물의 모양 역시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고, 엉뚱하고, 모양도 각기 다른 포장을 계속 만들다 보면,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당신이 포장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이유 없이 종이로 운동화를 싸다 보면, 평소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어떤 낯선 감정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드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물을 포장하는 목적은 그 사물을 충격이나, 먼지나, 타인의 시선 등에서 보호하자는 데 있다. 우리는 사물을 포장함으로써 위험을 방지하고, 정돈하고, 때가 타거나 닳지 않게 한다. 이런 실용적인 결과들은 포장이 존재의 핵심에 일으키는 기이한 동요를 감추고 있다. 포장된 사물은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동시에 없기도 하다. 사물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직접 접근할 수 없게 됐다. 포장된 사물은 분명히 저기 있지만, 추상적으로 변했고, 자취를 감추었고, 뒤로 물러났다. 색깔도, 정확한 윤곽도, 세부적인 특징도 알아볼 수 없다. 단지 포장에 가려져 막연하고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 지각하기보다는 짐작하고 추정해야 할 대상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익숙한 사물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종이만 벗기면 볼펜이든, 운동화든, 접시든 변함없이 안정적이고 익숙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이 익숙한 사물은 단지 시선에서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평소의 통상적인 가치를 상실한다.
이 간단한 체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을 흔들어놓고, 낯설게 보이게 하고,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는 데에는 그리 큰 것이 필요하지 않다. 종이 한 장, 얇은 포장지, 간단한 감추기, 가리기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확고하다고 믿는 증거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신념에 달렸을 뿐이다. 같은 일도 때와 기분에 따라 불안한 것이 될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1. 포장하기」
2. 우주 여행하기
화성인들의 실종은 인간에게 큰 불행이다.
이들은 한때 미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 장엄한 신비의 세계, ‘완벽하게 다른 어떤 것’을 꿈꾸고 싶을 때 화성인들만 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전혀 다른 세상이 아찔할 정도로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는 달콤한 믿음을 심어줬다. 그런 세상에서는 인간의 지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존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와 신비스러운 힘이 지배하리라고 믿으며 우리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그런 상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외계인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막강한 기능을 자랑하는 수신 장치를 아무리 작동해도 우주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침묵뿐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정적이 바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월등하게 우월한 외계의 존재들은 저열한 지구인들과 교류하기를 원치 않기에 기침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우주는 침울하기만 하다. 누가 아무런 놀라움도 없는 우주를 탐험하고 싶겠는가? 꿈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진 우주는 썰렁하고 서글프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책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달할 수 없는 은하계나 까마득히 먼 항성들은 이제 귀찮게 하지 말고 내버려두자.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완벽하게 다른 우주를 체험하고 싶다면 더 좋고 강력한 방법이 있다. 게다가 엄청나게 쉽기까지 하다.
거리로 나서라. 당신이 사지가 멀쩡하다면 전신이 마비된 사람을 찾아가라. 당신에게 집이 있다면 노숙자를 찾아가라. 당신이 건강하다면 환자를 찾아가라. 당신이 한 번도 부유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부자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면 소위 ‘슈퍼 리치’라고 불리는 사람을 찾아가 보라. 당신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다면,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거리에서 추위를 견디며, 남이 버린 옷을 주워 입고, 자기 몸을 돌보지도 못하는 사람을 찾아가라.
물론,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고 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처음 나선 거리에서 대상을 찾지 못했다면, 그다음 거리로 가라. 거기서도 찾지 못했다면, 그다음 거리로 가라. 그러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렇다. ‘다른 세계’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과 환희의 축배를 드는 사람이,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 사람과 배가 터지도록 먹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과 버려진 사람이, 남을 생각하는 사람과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채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세계’가 엄연하게 존재한다.
이 ‘평형 세계’에서는 나이, 육체, 재산 상태, 교육 정도, 사는 지역, 그리고 무수히 많은 기준에 따라 냄새에서부터 신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르다. 입는 옷도, 하는 행동도, 다니는 장소도, 사용하는 언어도, 욕망하는 대상도, 심지어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마저도 전혀 다르다.
따라서 다른 세상을 보고자 허망하게 저 하늘의 은하계를 탐색하기보다는 거리에서 이처럼 전혀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우주여행을 시도해보라. 그리고 지금 자신이 사는 우주를 바꾸는 일이 아파트 건물의 층을 바꾸기보다 얼마나 수월한지를(그리고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해보라. 또한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도 체험해보라. 당신의 이웃을 잘 관찰해보면 화성인들보다 더 황당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우주선을 만드는 일 역시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1. 우주 여행하기」
3. 낯선 사람 초대하기
페이스북에서는 십억 명의 잠재적인 친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페북에서 당신은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상적으로는 인간이 모두 동등하고, 어떤 점에서든 각자가 똑같이 흥미로운 존재라고 믿지만, 실제로 당신은 불과 몇 명의 가족이나 친구, 동료만을 알고 지낼 뿐이다. 왜?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낯선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보자. 간단하고 구체적인 체험이다. 대단한 잔치를 벌일 일도 아니니,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여섯에서 여덟 명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서너 명이라도 괜찮다. 메뉴는 예산이나 취향 등을 고려해서 그저 소박하게 구성하면 된다. 스파게티에 과일 정도면 괜찮지 싶다.
그런데 저녁에 초대할 낯선 사람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런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전문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당신 스스로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인맥을 활용하든, 지역 무가지에 광고를 내든, 자주 가는 가게에 종이쪽지를 붙이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체험에서 첫 번째 발견은 낯선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작위로 선택한 사람을 ‘낯선 사람’이라고 부를 것인가? 낯선 사람을 초대한다는 것은 ‘아무나’ 초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면 당신은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거부할 테니까. 따라서 어떤 기준을 따를 것이냐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만약 당신이 다소 익숙한 부류의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낯선 사람을 초대하려던 의도에서 벗어나 진부한 저녁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진짜 낯선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이 질문은 당신이 아직 모르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어쨌든, 이 체험은 이전에는 몰랐던 엉뚱한 것을 발견하는 데 의의가 있다.
결국, 당신이 이 엉뚱한 저녁 식사 체험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사실이다. 실제로 당신이 그 낯선 사람과 식사하면서 그에 대해 알아내게 되는 것은 그의 직업이나 취미, 생활 방식 등 대수롭지 않은 것들뿐이다.이 체험의 흥미는 낯선 사람과 있을 때 당신이 느끼는 불안, 환상, 어리석은 기대, 이유 없는 두려움 같은 감정에 있다. ‘낯선 사람’이라는 대상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곤 한다.
당신이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에 가장 적합한 낯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체험의 교훈이다. 「3. 낯선 사람 초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