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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이슬람/중동/이스라엘 > 근현대사
· ISBN : 9788994361383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16-03-20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자료에 관한 일러두기
개인적인 일러두기
서문
‘점령’에 관한 일러두기
지도
1부 | 첫 10년, 1967~1977
1장 아브라함의 땅, 서안 지구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변화 | 다얀의 ‘보이지 않는 점령’ 방침 | 일방통행 다리 | 난민 작전 | 교과서 싸움 | 점령지 관리 지침 | 게릴라 축출 | 유대인 정착 | 알론 계획 대 다얀 계획 | 토지 수탈의 합법화 | 헤브론 사태 | 국왕을 설득하라 | 식민지화 | PLO, 약하게나마 살아 있는 불씨 | 점령의 맨얼굴
2장 가시투성이 장미, 가자 지구
군정과 추방 | 가자 반란 분쇄 | 가자 지구의 식민지화
3장 착한 가난뱅이의 나라, 골란고원
인종 청소, 남겨진 드루즈파 | 지리・사회적 변형 | 저항과 전쟁
4장 이집트에 반환되어야 할 땅, 시나이반도
식민 정책 | 전쟁과 타협
2부 | 두 번째 10년, 1977~1987
5장 평화협상의 첫발을 뗀 리쿠드당 집권기
빗장을 푼 라바트 회담 | 캠프데이비드 회담 | 캠프데이비드협정 이행 과정 | 봄의 봉기 | 골란 주민의 시민권 거부 투쟁 | 레바논 침공과 마을연맹의 종말
6장 1987년 검은 12월
봉기에 나선 사람들 264 | 이스라엘의 검은 12월
3부 | 전쟁과 외교, 1987~2007
7장 인티파다
UNLU(전국봉기지도자연합) | 이스라엘군의 반격— 구속, 고문, 통행금지, 마을 봉쇄, 가옥 파괴 | 아부 지하드 암살 | 요르단 국왕의 정치적 결별 선언 |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 | 골절 정책과 샤미르의 평화 계획
8장 걸프 전 마드리드 오슬로, 1991~1995
마드리드 평화회의 | 협상 테이블 복귀 | 역사적인 악수 | 제2단계 오슬로협정—실행 방안 | 평화의 노래
9장 잃어버린 기회, 1995~1999
터널 폭동 | 헤브론 분할 | 하르 호마 | 분쟁의 격화 | 이스라엘 야당과 팔레스타인의 공모
10장 골란 먼저, 1999~2000
다시 시작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대화 | 알아사드의 호의 | 참담한 결말
11장 2차 캠프데이비드 협상, 2000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 | 불길한 전조
12장 알아크사 인티파다, 2000~2001
빌 클린턴의 최후 시도 | 잃어버린 기회
13장 샤론과 아라파트, 2001~2004
끊이지 않는 유혈 사태 | 방호벽 작전 | 가자 지구의 전쟁범죄? | 로드맵 | 아리엘 샤론의 장벽 | 폭력의 악순환으로 돌아가다
14장 일방적 철수의 대가, 2004~2007
샤론의 보상 요구 | 아라파트 독살설? | 일방적인 철수,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점령 | 다섯 번째 10년에 들어선 점령 체제
지은이 후기―다섯 번째 10년의 한복판에서
가자 봉쇄 | 화약고 폭발 | 미래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아랍-이스라엘 분쟁 연표
참고문헌
후주
리뷰
책속에서
1967년까지 그곳 팔레스타인 마을의 삶은 얄루 출신 80세 노인 아이셰가 회상하듯이 소박하면서도 평범했다.
마을 사람들은 사이좋게 살았지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마을 한가운데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그곳에 모여 설탕 넣은 커피를 마시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나그네가 광장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가서 식사를 대접했죠. 이따금 점심때 양을 잡아서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대접하는 이도 있었어요.
1967년 얄루와 같은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이스라엘 군인으로 복무했다가 뒷날 유명한 작가가 된 아모스 케난은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소대장은 이 살인자들의 소굴을 단죄하고 …… 장래에 침투 근거지로 이용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 이 마을들을 날려버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안 지구 농업에 무엇보다도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상수도를 군정 당국이 관리하도록 한 1967년 8월의 조치였다(이 조치는 1968년 3월 골란고원에, 1974년 12월에는 가자 지구에도 적용되었다). 이 조치로 새로 우물을 파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졌다. 허가 제도가 적용되었고, 지루하고 복잡한 요식 절차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풍부한 물을 간절히 원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신청은 대부분 거부되었다. 가정 용수만 소수에게 허락되었을 뿐이다.
1975년 이스라엘의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기존 우물에서 퍼낼 물에 할당량을 정하고, 이 할당량을 준수하도록 미터기까지 설치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농업은 심각한 물 부족을 겪으며 활기를 잃어갔다.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주민들이 이스라엘 경제를 보완하는 업종에 주로 종사하도록 유도했다. 이를테면 의류 산업에서 이스라엘 업체들은 직물과 디자인 등 원료를 제공하고, 재봉틀 앞에서 하는 노동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저임금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 넘겼다. 서안 지구 산업 구조를 이스라엘의 필요에 따라 재편하고 이스라엘 산업과 경쟁하지 못하게 하는 데도 역시 허가 제도가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