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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은이)
너머북스
29,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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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88994606446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16-10-31

책 소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선조 8년 ‘동서분당’이 발생한다. 이렇게 시작된 당쟁은 정치적 사건들로 끝없이 변주되다가 선조 23년 기축옥사로 파국을 맞는다. 이 책은 이 과정과 인물들에 밀착하여 생생하게 드러낸다.

목차

프롤로그
전사前史

1부 사림의 분열 _ 사림의 정치화
▄ 리더십
1장 선조 8년~10년 : 분열의 시작
인순왕후 사망
애도의 정치성∣선조, 정치를 시작하다∣“낭천을 폐지하라”
‘동서분당’
미해결 살인사건∣피혐과 처치∣살인사건의 정치적 변주∣이이의 처치∣허봉과 박근원의 결합∣박근원이란 인물∣개성 유수, 경흥 부사∣사건 배후의 구조
2장 선조 11년~13년 : 대립 구도의 성립
이수의 옥사
서인의 짧은 권세∣선조 11년∣같은 사건, 다른 처리∣동인의 새 파트너, 구신
백인걸 상소 대필 사건
시비에서 정사로∣시비와 정사의 여러 거리∣“유자가 도를 행함이 이 정도뿐인가∣이이에 대한 동인의 첫 공격∣김우옹이란 인물

2부 이이의 시간 _ 사림의 이상, 정치의 현실
▄ 프레임
3장 선조 13년 말~15년 : 이이의 분투와 좌절
정치의 한복판에 선 정치적이지 않은 이이
선조가 이이를 부른 이유∣이이가 돌아온 이유∣이이에 대한 동인의 시선∣우성전 탄핵 사건∣이경중 탄핵 사건∣순진한 이이, 저돌적인 정인홍, 배후 조정자 이발
심의겸, 정철 탄핵 사건
수면과 저류∣“이는 이발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이발, 정치를 하다∣정철 문제에 불을 붙인 정인홍의 한마디
윤승훈 사건
정철은 외척인가∣“윤승훈이 무슨 식견을 지녔겠습니까”∣대신의 권위, 언관의 권위
일진일퇴
복상과 처치∣이이, 선조에게 개혁을 호소하다∣“이 일을 이이와 함께 할 수는 없다”∣성혼 눈에 비친 이이
4장 선조 16년 : 계미삼찬
‘이탕개의 난’이 불러온 효과
여진의 성장, 선조의 충격∣이이 개혁안과 선조의 변화∣경안령 이요 사건
공론은 누구에게 있는가
계속되는 북방 상황∣“전천‧만군의 죄”∣이이의 정체성∣이이가 탄핵받은 진짜 이유∣“이이를 공격하는 자가 소인이다”
좌절된 이이의 꿈
성혼의 상소∣송응개의 상소∣송기수라는 인물∣기억의 당파성∣“언관들이 간사한 것은 아닙니다∣동인이 이해한 조제보합론∣김우옹의 뒤늦은 상소∣선조와 동인의 맞대결
대간의 말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공론∣선조와 승정원의 갈등∣“신들 역시 조종조 노신의 후예들입니다”∣“심의겸이라는 함정”

3부 선조의 시간 _ 나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한 적이 없다
▄ 관점의 현재성
5장 선조 17년~22년 : 불안한 평화
계미삼찬 후 조정 풍경
단호한 선조∣“이이를 그르다고 한 것은 온 나라의 공론입니다∣4월 14일? 4월 17일?∣초조한 이이∣이이의 입장은
조정의 재편
이이의 죽음∣현상 유지∣미묘한 변화∣김우옹과 신응시∣영의정 박순, 탄핵을 받다
선조의 정치
“내 뜻을 말하겠으니 사관은 기록하라”∣선조의 이상한 하문∣조정 밖 목소리∣선조 18년 9월 2일 선조의 전교∣이발의 복귀
6장 선조 22년 : 기축옥사 발발
고변에서 체포까지
고변서 접수 직후∣고변서가 올라오기까지∣정여립 체포에 실패하다∣다복, 10월 14일 저녁에서 밤까지∣온 산을 태워서라도 체포하라∣죽음을 부르는 ‘적가문서’∣주륙과 은택
국면의 전환
전주 생원 양천회의 상소∣선조의 구언∣정철의 복귀∣정집의 진술, 김천일의 상소∣낙안 교생 선홍복
공포의 정치
조정을 지배한 공포∣선조, 사건을 일단락 짓다∣이산해, 용 같은 사람∣성혼의 상소

4부 파국
▄ 책임
7장 정개청 옥사
정암수와 배명의 상소
호남의 중심, 나주∣나사침 부자와 그 가문의 내력∣구절의 대 배절의
투옥 과정과 심문의 쟁점들
홍여순이란 인물∣고발 사유는 사라지고∣「절의청담변」을 둘러싼 오해
정개청과 박순
‘배사론’∣저마다의 기억∣진실은?∣향리 가문 출신 서원 원장
8장 최영경 옥사
기축옥사 이전의 최영경
성혼과의 만남∣스승을 빼닮은 제자∣『심경』이라는 책∣최영경이 진주로 간 이유는∣“미움이 규모를 달리하고”∣“박순과 정철을 반드시 효시한 뒤에야”
‘삼봉즉경영설’의 부상
소문∣알리바이
1차 수감, 정철과의 만남
두 가지 쟁점∣정철의 올리지 않은 차자
2차 수감, 이이에 대한 기억
‘하늘 그물’∣“말의 근거를 자세히 아뢰라”∣“신이 한 말이 아닙니다”∣죽음, 그 주변

에필로그
부록_1. 이조 및 삼사三司의 관직|사가독서자 일람표|연표:동서분당에서 기축옥사까지|4. 인물정보
찾아보기

저자소개

이정철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조선시대 조세 개혁 정책인 대동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동법 탄생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선조(宣祖) 대 정치 상황을 연구했다. 그 결과를 정리한 책으로 2019년 지훈국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경북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역사비평사, 2010),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역사비평사, 2013),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너머북스, 2016)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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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조선왕조는 건국 당시부터 공론을 중시했다. 성리학을 국가 운영 원리로 삼아 건국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공론을 중시한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헌법에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을 담았다고 해도 현실에서 법률적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당시 공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는 누가 공론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였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보면 공론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은 한결같지 않았다. 곡초에는 국왕이나 조정 대신들이 공론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18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서 공론이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시기의 중간 즉 16, 17세기에는 공론이 아래 있고, 삼사, 심지어 성균관에 공론이 있다고 생각했다. 16세기는 국초의 공론 소재처에 관한 인식이 바뀌던 시기였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 격렬하게 이어졌던 사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16세기에는 공론이 아래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것이, 사림이 훈척정권을 물리치고 마침내 조정에서 주도권을 확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이다. 사림은 대신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확신했고 자신들의 정치적 주도권을 당당히 주장했다. 문제는 선조 초 구세력이 힘을 잃고, 사림이 조정의 최고위직까지 올라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치세력의 구도가 전처럼 ‘부도덕한 훈척대신’ 대 ‘도덕적인 사림’으로 나뉘어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사림 자체의 구조가 진화하여 ‘사림 대신’ 대 ‘사림 언관’으로 분화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동서분당 이후 상황은 이러한 정치세력의 구조 변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또 그러한 현실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둘러싼 혼란이다. 강경파 동인은 ‘사림 대신’을 ‘부도덕한 훈척’으로 보려 했고, 이이는 ‘사림 대신’과 ‘사림 언관’을 포함한 새로운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 본문 195~196쪽 중에서


이윽고 선조에게서 미묘한 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이 사후 채 두 달도 안 되서, 홍문관 수찬 심희수는 경연 조강朝講에서 선조의 태도 변화를 언급했다. 그는 “상께서 이이를 대우하시는 것이 살았을 때와 죽은 후가 다르니, 필시 그 뜻이 있으신 듯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당초 상께서 중론衆論을 물리치고 (이이를) 등용하셨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선조는 심희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이가 죽은 뒤 자신이 그를 다르게 대우한 일이 없고, 중론을 물리치고 이이를 등용했던 것은 아니며 자신은 다만 간신들의 사설邪說을 물리쳤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자신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원칙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선조의 주장보다는 심희수의 의문이 조정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에 좀 더 가까웠다. 송응개, 박근원, 허봉이 북쪽 변방 오지로 귀양 간 직후, 이조 좌랑 김홍민이 선조의 조치를 비판했었다. 그러자 선조는 “나도 주희의 말을 본받아 이이, 성혼의 당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를 이이, 성혼의 당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라고 말한 바 있다. 불과 반년 만에 선조는 자신의 이전 말과 크게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이와의 거리를 벌리면서 선조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이이를 추가로 포상하는 은전이 필요하다고 박순이 건의했다. 이에 대해 선조는 대신들과 의논하라고 말했다. 당시 좌상은 노수신, 우상은 정유길이었다. 이들은 박순의 건의에 동의했다. 하지만 선조는 약간의 추가적 은전만을 허락했을 뿐, 관직 추증을 포함해서 박순이 요청했던 수준의 은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이 사망 후 채 두 달이 못 되었을 때 일이다.
- 본문 263~26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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