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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건축 > 건축이론/비평/역사
· ISBN : 9788994997230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2-09-03
목차
서문 대강 철저히 해라 6
chapter. 1/
전통에서 현대로
1. 천문도형과 도면표현 10
2. 풍수지리와 양택론 14
3. 한옥의 구성요소 17
4. 목조건축의 구조 20
chapter. 2/
설계와 시공
1. 의뢰와 과정 27
2. 터고르기와 기초공사 36
3. 목재와 목구조공사 54
4. 물매와 지붕올리기 114
5. 수장들이기와 단열 136
6. 마루와 부대공사 162
chapter. 3/
한옥의 대중화
1. HIM Hanok Information Modeling 184
2. 부재의 CNC 194
3. GDL Geometric Description Language 197
4. 프리젠테이션 205
chapter. 4/
건축도면
1. 건축도면 사례1 212
2. 건축도면 사례2 234
3. 설비도면 240
부록
1. 한옥용어 영문표기 246
2. 한옥의 공동모듈화 254
3. DVD 사용설명서 259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 문
대강 철저히 해라
목수 일을 배울 무렵, 한 선배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얼핏 “대충 대충 하라” “어떻게든 잘 꾸려내라”는 것쯤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나중에야 그게 아니라 ‘대강大綱’를 철저하게 하라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강’에서 ‘강綱’은 원래 벼리를 말합니다. 벼리는 물고기 잡는 그물의 코를 꿰어 놓은 굵은 줄입니다. 어느 한 순간, 이 벼리를 잡아당기면 그물이 삽시간에 오므라들면서 그 안에 있던 물고기들을 확 잡아들이게 됩니다. 그만큼 벼리의 시간이란 서스펜스가 있는 수확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삼강오륜三綱五倫’ 이라고 할 때, 벼리 강을 씁니다. 일을 해나갈 때의 으뜸 되는 줄거리를 ‘강령綱領’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강’이라고 하면 일에 있어서 골간이 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을 뜻합니다. “대강 철저히 해라”라는 충고는 바로 그 골간을 철저하게 하라는 것이니, 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가령, 아무리 보머리 조각을 정성스럽게 한다고 해도 사개 부분이 헐겁게 되면 그 집은 못쓰게 됩니다. 사개란 기둥 끝을 네 갈래로 따내서 도리와 보가 끼워 넣어져 짜임구조가 되는, 인간으로 치면 ‘관절부’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잘못되면 집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개는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대강을 철저히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보의 조각이나 쇠시리는 다소 투박하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들도 완전히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짜임구조가 더 중요한 골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짜임구조가 단단하면 집은 튼튼하게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일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공들여서 제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목수 초기에 그 선배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저 역시 당시 저처럼 젊고 서투른 목수를 만나면 “대강 철저”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로 전하기 힘든 문화적 지식을 식자들은 ‘암묵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암묵지’란 무엇입니까. 수레바퀴 깎는 비결을 묻는 왕에게 그것은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퉁을 놓는 노인의 태도로부터 비롯되는 지식입니다.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암묵적인 지식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체득되어 몸으로는 다 느끼지만 형언하기가 힘든 지식, 하지만 이러한 문화의 지식이야말로 하나의 개인에서 또 다른 개인으로, 하나의 집단 에서 또 다른 집단으로,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든 전달되어야 할 지식입니다.
한옥은 짓는 것도, 그 안에서 사는 것도, 그 밖의 자연과 우주와 만나는 것도 모두 ‘암묵지’의 세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옥이 단순히 사람이 잘 살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웰빙의 풍족을 누리는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혹은 새로운 치부의 수단으로 여기는 풍조도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한옥은 생활하는 터전인 동시에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실천을 통해 시대의 한가운데를 가만히 느꼈던 체험 공간이었습니다. 한옥은 이러한 정신과 체험의 만남이 있는 건축으로서 여전히 우리에게 육박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자연과의 교섭을 통해 인간의 경지를 추구해온 역사의 우뚝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본질적으로 말할 수 없는 ‘암묵지’의 영역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불일듯 일기 이전에 일명 동네목수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동네목수라고 하니, 하나의 작은 동네에서 이 집 저 집을 소박하게 고쳐준다는 의미 하나와 하나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동네 전체를 짓겠다는 의미 둘을 품게 되었습니다. 목수로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집을 짓는 사람들의 삶과 뜻과 마음과 기운이 펼쳐진 장을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목수로서 본다는 것은 한옥을 생각하는 것근경과 마을을 생각하는 것원경이 하나의 시야로 잡히는 것입니다. 제가백가 중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가는 수레와도 같은 이러한 근경과 원경의 동시적인 세계를 꿈꾸었던 이가 바로 묵가墨家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신호를 가장 중시했고, 그러한 신호체계를 보다 열린 마음의 네트워크로 확장할 것을 제안하여 소위 ‘겸애兼愛’를 제창한 사람입니다. 여러 겹의 사랑은 한옥과 마을을 동시에 보는 눈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동네목수가 묵가라는 감당키 어려운 별호를 갖게 된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한옥은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굴곡과 격랑을 따라 요동쳤고, 그 ‘대강’에 해당하는 맥이 소수의 목수들에 의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낙후된 관성과 맹목적인 서구화의 영향 아래 그 맥을 어떻게 다시 잡아내는가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에겐 중국의 영조법식이나 일본의 목할서, 추형본처럼 전해져오는 기본서는 없고 단지 『의궤서』만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와 압축 근대화 시기는 그러한 부족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말초인지 판단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옥에 관한 논의는 우선 근대에 형성된 주관적 억측과 맹목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옥이라는 자명한 관점을 개방하고 보다 확장된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서구 건축의 근대적 방법이 한옥과 불화하는 것을 보다 창조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건축가들이 설계 따로, 건축 따로 라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한옥은 마치 작곡과 편곡과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동양의 음악과도 같아서 생각과 감각과 건축이 일체화되어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한옥에 관심을 갖고 접근할 때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한옥을 설계, 시공하며, 전국의 목조건축, 석조구조물, 궁궐건축을 답사하고 분석해왔습니다. 목수로서 우리의 한옥에 대한 문화적 정신과 비례를 연구해왔던 저의 체험적 지식을 이 책에 펼쳐 놓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한옥 설계와 시공이라는 한옥의 ‘암묵지’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정리해본 것입니다. 현장의 실무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목수님들과 학교에서 관련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한옥에 한걸음 더 다가서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한옥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지평을 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보냅니다.
2011년 6월 30일
경기창작센터에서
묵가 조전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