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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

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

(노중 정봉화 자서전)

정봉화 (지은이)
예스위캔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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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 (노중 정봉화 자서전)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6191704
· 쪽수 : 287쪽
· 출판일 : 2010-03-31

책 소개

윤필용 장군 전속부관, 비서실장 지냈던 정봉화 예비역 소령의 자서전. '윤필용 장군 모반사건' 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1973년에 터져나온 소위 '윤필용 모반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집필한 책이다. 더불어 군인에서 갑자기 민간인으로, 시련을 딛고 선 기업인으로서의 성공담도 함께 담았다.

목차

글을 쓰면서
프롤로그_격랑의 한 세기, 그 운명적 삶의 기록

1부 장군 윤필용과 나
2부 민간인으로 떠돌다, 멈추다
3부 아, 그리운 어린 날의 추억
4부 슬퍼 아름다웠던 학창시절
5부 벅찬 군인의 꿈 영글다
6부 윤필용 장군과의 운명적 만남

에필로그_우연한 만남, 길고 깊은 인연

저자소개

정봉화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9년생. 진주중, 부산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18기)를 졸업했다. 1962년 육군 소위로 임관, 1973년 윤필용 수경사령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다 소위 ‘윤필용 모반사건’ 소용돌이 와중 소령으로 예편했다. 1975년부터 기업인의 길을 걸어 기계설비제작업의 동양기공(주), 특수윤활유 판매업의 동양특유(주) 대표이사를 거쳐 1985년부터 지금까지 운송업체 영일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1996년부터 늦깎이 학도로 변신해 경남대 북한학과 대학원에서 공부에 몰입, 2000년에 ‘북한의 대남정책 연구, 1948~1998 -지속성과 변화-’ 논문으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관동대, 경남대, 경상대 초빙교수(북한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운영위원, 美 듀크(Duke)대 방문교수 역임. 현재 경남대 대우교수, 경상대 초빙교수로 있다.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해, 본격 글쓰기에 들어섰다. 1973년 갑작스러운 민간인 편입 이후 고통을 받던 중 1974년 가톨릭에 몸과 마음을 의탁, 길을 찾아갔다. 저서로 2000년 <대결에서 공존으로>(한울아카데미), 2005년 <열린마음 열린대화> (청동거울)가 있다. 2010년 봄엔 이 책 <로중 정봉화 자서전-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과 함께 수필집 <석화편지>(글공작소 야독), <한국 천주교회의 시원-천주교 들불로 타오르다>(지식지대 주경)를 동시에 펴냈다.
펼치기

책속에서

하나회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강창성의 빗나간 수사


사건은 1973년 3월 초 윤필용 장군과 주변 측근들을 보안사에 연행하면서 시작하여 4월
28일 전격적으로 종결 처리하였다. 단초는 1972년 11월 5일 한양컨트리클럽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면서 오고간 대화 중에서 나온 신범식 서울신문 사장의 말이 불씨가 된 것이다. 신 사장은 지나가는 말로 “각하께서 연만하시니 더 노쇠하시기 전에 후계자를 키우셔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후계자로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라고 흘렸다.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정황으로 “음모를 위하여 미리 계획된 말이었다. 또는 립서비스용으로 무심코 한 것이다.” 등의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골프 회동은 끝내 중단되고 말았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돌아와 경호실장을 호출하였고, 신범식 사장이 운동 중에 말한 자신의 건강문제를 거론한 사실에 대한 자초지종의 내막을 즉각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바로 당시 경호실장 세력권에 있었던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하명되었으며, 강 보안사령관은 즉각 경위파악에 들어갔다. 강 보안사령관은 육사 8기생으로 현역에 남아있는 8기생 중 윤필용 장군과
함께 선두주자로 일부에서는 출세 지향적인 성향을 결함으로 지적하기도 했지만 총명하고 영리하여 군부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이 되면서 박종규 세력권에 편입되었는데 암암리에 그와 경쟁자적 입장에 있었던 윤필용 장군 주변에 형성된 정규 4년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모임이었던 하나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하나회 반대 세력이었던 육사 12기 모 대령 등 육사 출신 장교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대응 세력화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이를 위하여
보안사령부 내 요직에 이들을 배치하여 본인의 입지를 확실히 굳히기 위한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박종규 경호실장의 또 다른 셈법

윤필용 사건은 1973년 초 극비리에 내사작업이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사건수사는 1973년 3월 초 표면화되었다. 문제가 불거질 즈음 윤 장군은 자신이 발설했다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후계자설과 대통령의 건강에 관한 루머는 사실과 전혀 다르며 자신과는 더욱 무관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하나회 세력과 본인 간의 연관성을 조사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통령과 연관되어 수행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에 이런 분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윤 장군에게 언행에 대해 신경 쓰실 것을 건의드렸다. 그러나 윤 장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대통령 각하에 대하여 불충한 마음을 가진 바도 없거니와 불충스러운 언행을 한 바가 없기 때문에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나의 이런 생각을 대통령은 믿고 계실 것이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나를 안심시켰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정치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무리하게 강화하는
과정에서 회의론이 등장, 권력 주변 세력 간에 여러 이견들이 암암리에 표출되었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대통령의 건강과 후계 구도에 대한 거론이었는데, 이 구도의
핵심적인 인물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거명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그리고 이런 음모를 꾸미는 당사자가 윤필용 장군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바로 박종규 경호실장이었다. 그는 박 대통령의측근 중 측근이 누군가를 두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경쟁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상호견제
하던 당사자였다. 이런 구도 속에서 군 세력의 중추였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은 두 사람의 각축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윤 장군 세력과 제휴를 통하여 양자 팽팽한 구도를 깨고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윤필용 사령관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이후락 정보부장이었다. 그는 윤필용 장군의 측근 중에 울산 출신을 내세워 은밀한 접촉을 시도하였고, 박종규 경호실장 역시 윤필용 사령관의 측근 군 출신들을 통하여 보다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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