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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사 일반
· ISBN : 9788996305279
· 쪽수 : 408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_왜倭의 재침은 없는가?
1장. 일본의 한반도 침공 시나리오
일본의 한반도 주기 침략
왜倭의 침구 연결고리: ‘신라 정토征討계획’
왜倭의 이국정벌론: ‘대對고려 침공계획’
지속가능 전쟁의 결정판: ‘임진왜란 7년 전쟁’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재침 시차 예측의 단초
‘시차’의 유사성이 드러내는 것들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아시아 정복을 위한 가장 가까운 나라, 조선
한반도 재침의 징후들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2장. 일본의 흉기, 왜구의 시작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①- 조큐의 난
소강상태가 불러온 더 큰 침구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②- 남북조 시대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③- 료슌의 정치공작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일본 정부의 ‘모르쇠’ 전략
가까운 이웃과 만고불변의 원수
3장. 뿌리 깊은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
고구려의 경우 광개토태왕 대對 백제와 왜구
신라의 경우 집중 침구 대상
공·수의 전환점: 장보고 시대
고려·조선의 경우 왜구는 한반도의 왕권을 두 번이나 바꿨다
4장.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병상신속兵尙神速 치고 빠지는 약탈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침소분용侵消紛用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구사협갈驅使脅喝 위협과 공갈로 광포한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적시장서適時場? 적절한 침구 시점을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일조돌변一朝突變 변신과 약탈로 지속침구의 조건을 상시화한다
부정가복不正假伏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항복으로 본심을 꾸민다
만무근린萬無近隣 철저하게 ‘이웃이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병이사립兵以詐立 사실왜곡으로 끈질기게 목적한 바를 사취한다
위국개동僞國個動 국가적 활동을 개별집단의 준동으로 위장한다
점입대담漸入大膽 초기에 불씨를 끄지 않으면 점점 대담해 진다
우물찬적優物纂敵 상대의 우위요소를 재침구 수단으로 활용한다
폭살왜성暴殺倭性 사무라이와 왜구 근성으로 광포하게 살육한다
만육지락蠻戮至樂 끝없는 노략질과 무자비한 살육만행을 즐긴다
5장. 왜구,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격왜시장擊倭始場 바다의 적은 기필코 바다에서 막아라
막강 조선 수군이 사라진 이유
현장 중심 사고의 필요성
초비응왜招備應倭 국가혁신으로 대왜구전 우위를 갖춰라
전략무기의 등장
선공후비先攻後備 문제의 근원을 초기부터 뿌리째 뽑아라
강공근절의 방책
왜구토벌사의 생생한 교훈
병형상수兵形象水 적의 형세에 맞춘 ‘맞춤형 전략’을 짜라
왜구 퇴치를 위한 다각화 전략
고려, 힘에 의한 ‘절반의 성공’
조선, 다원적 해법을 찾다
회유책을 통한 외교적 해법의 한계
6장. 가해자의 피해자 탈 쓰기
중국의 ‘가짜 왜구들’
‘왜구’ 왜곡과 미화의 극치
왜구 미화의 말 못할 속사정
‘잘 나가는’ 일본의 역사 열등감
우리 역사에 나타난 가왜·부왜들
임진왜란 시기의 가왜·부왜들
7장. 불사왜구不死倭寇 부절왜침不絶倭侵
죽지 않는 왜구의 망령
왜구적 전통과 경험의 근대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왕국
현대의 왜구들
‘독도 문제’를 가져온 두 외부 세력 일본과 미국
한국 측의 대응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해석문제와 일본의 재침 가능성
한일회담 독도를 국제분쟁화하라
독도문제 전개 방식의 비사秘史
1910년 ‘일왕 생일 행사’ 풍경
2010년 ‘일왕 생일 행사’ 풍경
일본의 ‘남왜공정南倭工程’ 공작
왜구 근절을 위한 역사적 해법들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론은 유효한가?
범凡 아시아 영토 분쟁 대책 동맹
맺음말_일본 ‘신新왜구주의’를 경계한다
참고문헌 및 주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2011년 침구’와 함께 일본의 한반도 재침·침구가 예상되는 유력한 시기인 ㉬은 언제쯤일까? 이의 기준은 강화도 조약(1876년)에서 한일합방(1910년)까지 시차인 34년이 적용될 수 있다. 즉 침구 행위가 구체적으로 벌어졌고, 이를 조약 형태로 강제한 강화도 조약과 그 결과로 합방에 이르는 시점을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차를 반영해 보면 일본 ‘재침설’이 가능한 시차표에 ‘( ? )’으로 남아 있는 시점(㉬)은 2045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신新왜구’의 준동이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2011년과 정확히 34년 시차를 보이고 있는 2045년은 한일 양국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우리로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시점이다. 이 시기까지 일본은 우리의 뜻과 상반되게 어떤 식으로든 독도문제를 국제분쟁화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력이 사태의 악화를 가로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임은 의심할 나위 없다. (1장)
조큐承久 원년(1219년) 1월, 3대 쇼군 미나모토 사네토모源?가 조카 구교公曉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막부는 새로운 쇼군으로 마사나리雅成 친왕을 맞이하고 싶다고 고토바後鳥羽 상황上皇에게 요청한다. 이에 대해 고토바 상황은 승인의 전제 조건으로 막부가 자신의 애첩의 소유 영지에 대한 권리를 철회할 것을 내세운다. 호조 요시토키北?는 이것을 막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보고 거부한다. 호조는 친왕을 쇼군으로 세우려 했지만, 고토바 상황의 반대에 부딪치자, 섭관가攝關家의 후지와라 요리츠네九條賴經를 새 쇼군으로 맞이한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로 조정과 막부간 긴장은 날로 높아졌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권력 회복의 의지가 높던 고토바 상황은 조큐 3년(1221년) 가마쿠라 막부에 맞서 토벌군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병란兵亂을 ‘조큐의 난亂’이라고 부른다. 이 난에서 상황上皇의 조정은 패하게 되는데, 이때 공가(公家, 조정) 편에서 싸우다 패한 무사들[武家]은 대다수 서국西國의 무사들이었다.
난의 결과, 패배한 공가 무사들은 토지를 몰수당하게 된다. 그러자 이들은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찾아 세토瀨戶 내해內海에서 해상 무장 약탈 집단인 왜구로 세력으로 극적 변신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왜구 발생에는 일본 내 혼란이 크게 작용한다. 또한 내해의 영주와 토착세력들이 약탈 행위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
(학살자들은) 부인 등을 보면 양편으로 좌우의 다리를 벌려 생식기를 검으로 찔러 일신一身을 사분오열로 자르며 여자는 이렇게 하여 죽이는 것이 묘미가 있다고 웃으면서 담화하였다. 또 우리 동포를 전차가 지나가는 다리에 목을 매달고 양다리를 끈으로 묶어 좌우에서 다수인이 끈을 잡고 신호하고 호응하면서 그네와 같이 흔들어 죽인 일도 있다. 신체를 전신주에 묶고 처음 눈알을 도려내고 코를 찔러 그 애통한 광경을 충분히 구경한 후에 배를 찔러 죽인 일도 있다. 각 기차 중에서는 다수의 왜노 등이 (조선인의) 사지四肢를 잡고 창밖으로 던져 역살轢殺하였고 남녀 수 십 인을 발가벗겨 보행시키고 또는 춤을 추게 하여 수 시간 동안 동물적 희롱을 감행시킨 후 찔러 죽인 일도 있었다. 또한 죽은 사람의 목을 묶어 끌고 다니면서 찌르고 차면서 시체에까지도 능욕을 가했다. 이후에는 한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왜倭정부는 각 경찰서 구내 또는 병영에 이송 집합시키거나 광장, 하변에 끌고 나가 기백 기십인을 일시에 죽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동포의 시체가 퇴적하여 우전천隅田川은 흐름이 막혀 우리 동포의 피가 썩는 그 악취는 통행인의 호흡도 막히게 할 정도였다. (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