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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682493
· 쪽수 : 32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딸보다 어린 아빠
2. 지키지 못한 약속
3. 쓰레기통에서 본 풍경
4. S4 수용자의 비밀
5. 이상한 아저씨들
6. 7번 방에서의 두 시간
7. 학부모 면담
8. 금방 올게요
9.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
10. 전직 범죄자들의 추리
11. 아빠를 위해 마련한 자리
12. 느린 듯 빠르게
13. 12월 23일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그 순간, 용구가 크게 입을 벌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듯, 떠듬떠듬 입을 열었지만 말이 되어 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그저 아, 소리만을 반복하다 힘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헤벌쭉, 평소보다 더 천진한 미소로 웃었다. 그러더니 뒤에 서 있던 민환과 김 교도관을 번갈아 바라보며 자랑스레 소리쳤다.
“예승이가 정의의 이름으로 나 용서해줬습니다! 으하하하!”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세차게 끄덕였다.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소리쳐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그만 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기에, 용구는 예승이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 예승이도, 용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던 어린 예승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똑똑하던 예승이도, 천사처럼 노래하던 예승이도, 용구는 모두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예승아! 잘 갈 수 있지? 아아아…… 아빠가 가가…… 같이 못 가도 씩씩하게…… 가, 갈 수 있지?”
떨리는 목소리로 용구가 묻자 예승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승이 잘 갈 수 있어.”
“예승이…….”
잠시 서글픈 눈으로 예승이를 바라보던 용구가 쾌활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 말이 왠지 너무나 마음이 아파 그러지 말라는 듯, 예승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아빠! 메리 크리스마스!”
용구도 따라서 중얼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힘차게 돌아섰다.
용구는 행진이라도 하는 것처럼 팔다리를 세게 흔들며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예승이는 철창을 붙들고 용구의 뒷모습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입술이 떨리고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용구가 뒤돌아 손을 마구 흔들 때마다 예승이도 활짝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점점 둘 사이의 거리는 멀어져갔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는데 벌써부터 예승이의 얼굴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용구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려 했다. 그러나 어느덧 뺨 과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차마 우는 얼굴을 예승이에게 보일 수 없어 억지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용구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제 모퉁이가 코앞이었다. 이 모퉁이를 돌고 나면 용구는 이제 예승이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용구는 돌아보지 않았다.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나중에 예승이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그리고 모퉁이 저편으로 들어서자마자 생살을 찢는 것 같은 아픔에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수그러진 어깨 위로 오열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