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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88996752752
· 쪽수 : 30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인간은 신을 표절하였다 5
1부 표절에 대하여
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 글쓰기 12
표절의 역사와 글을 쓰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33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에 대하여 71
소설과 영화 사이에 끼어든 표절의 윤리성 84
2부 인간에 대하여
젊은 날의 방랑이 어떻게 소설이 되었는가-이광수의『 유정』 98
한국 소설 속에 나타난 인민재판의 양상 120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으면서 소설을 쓰다-권도옥론 148
영원한 청춘에 대한 어리석은 갈망-오스카 와일드 165
3부 신에 대하여
내 사랑을 만인이 기억케 하리라-단테 178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니코스 카잔차키스 194
고통을 승화시켜야 불멸의 문학이 되는가-유진 오닐 211
신에게 다가간 두 작가의 창작방법론-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225
4부 한국문학에 대하여
한국 현대시의 문제점을 진단해본다 244
한국 소설문학의 내일을 위하여 254
새로운 독자의 탄생을 걱정해야 하나 환영해야 하나 265
동심의 세계를 일깨우는 동시의 스토리텔링 274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별을 볼 때마다 놀란다. 몇 광년을 달려와 내 시야에 들어온 저 빛이 지
닌 시간의 폭은 얼마나 넓은가. 나란 생명체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으므로
영원을, 우주를, 신을 생각하며 그 신비감에 몸을 떤다. 어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생각은 문학적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하고 무한 확장
시키기도 한다. 우리 문학의 깊이와 넓이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과 견주
어 그렇게 얕지도 좁지도 않은데 제대로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구의 문학은 3천 년 동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밀고 당기면서 깊
이와 넓이를 담보해 왔다. 서구의 문학인이 어릴 때부터 접한 신·구약 성
경과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들의 상상력을 키워준 보물창고였다. 단테의
『신곡』과『 신생』, 카잔차키스의『 수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
설을 읽으면서, 유진 오닐의 희곡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
던지. 그들은 신에게 따져 묻기도 했고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아무개 작가의 작품을 누가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나왔다. 어느 유명작가는‘, 나는 내 책을 사재는 일에
일조하지 않았다’고 기자회견을 했고, 어느 작가는 여성을 희롱했다는 추문
이 일자 사과의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 출판사에서는 20억 원 정도 되는 돈
을 일본의 한 소설가에게 선인세로 주고 판권을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 해
하반기 6개월 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책의 순위를 매겨봤더니 일본의 만화
책 시리즈 중 1권이 장르를 망라한 전체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문학인
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표절에 대한 논란이 아주 뜨거웠을 때, 중국과 한국의 한시를 놓고 전개
된 옛 논의들을 살펴보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표절 논란에 대
한 글들을 들춰보면서 온고이지신의 정신에 입각해 지금 이 땅에서 글을
쓰고 있는 우리 모두의 반성을 촉구한 글이 4편이나 되어 한 자리에 묶어
보았다.
신을 향한 질문은 곧 인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늘 아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면서 남의 작품을 표절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절대자를 표절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 모티브, 신화 모티브. 그리고
텍스트 상호간의 표절.
표절도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리라. 내게 없는
것을 남이 갖고 있다는 결핍감과 충족욕구가 인간 내면의 속성이기에 표
절행위는 당사자를 단죄하기에 앞서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
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에서 표절은 절도 행위라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언론은‘ 이제 우리도’ 하면서 가능성을 내
비친다. 하지만 우리 문학은 이웃 일본과만 견주어도 역조현상이 너무 심
하다.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에 열광하지만 일본
은 윤동주를 제외하고는 우리 문학에 별 관심이 없다. 이제는 고은 시인을
대신할 다른 문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매스컴은 말하는데 그런 일에 관심
을 기울이기보다는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젊은 문학
도들은 외국의 고전 혹은 명작을 읽으며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야 할 것이
고, 문학평론가들은 문학단체나 거대 출판사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입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인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건전한 논쟁도 회피
한다면 한국문학의 앞날은 밝을 수 없다.
소설평을 쓰지 않던 필자가 소설에 대해 군소리를 늘어놓아 부끄럽다.
소설은 결국 인간 연구이며, 인간에 대한 연구는 신에 대한 연구에 가 닿
는다. 신 혹은 신성을 외면한 것이 우리 문학의 약점이 아니었을까. 한용
운과 김현승이 큰 시인이었던 이유가 있다. 그들은 불성과 신성이 실현되
지 않는 이 세상에 절망했기에 시를 썼던 것이다. 이 땅의 소설가 가운데
이승우와 정찬은 바로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판매될 책이 아닌데 흔쾌히 출간을 허락해준‘ 세상읽기’ 동인 윤승천 시
인에게 감사의 악수를 청한다. 이 책에서 행한 비판과 질책이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어색한 사랑법이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2018년 새봄에
이 승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