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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775768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인천공항
가장의 마음
아는 게 힘이 되는 사람과 모르는 게 약이 되는 사람
Hodie mihi, cras tibi
고향 친구
도시 속 유령
선전포고
2010년 11월 21일
초등학교 동창생들
어머니
마음
부칠 수 없는 세 통의 편지
몽매난망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는 게 이토록 급습이더냐. 삶이 이토록 허술한 것이더냐! 마치 길 가다가 누군가와 어깨가 툭 스쳤는데 그것도 인연이라고 당신이 이번에 죽을 차례군, 하고 생짜를 부리는 거와 뭐가 다르냐. 복불복인데 뭐 어쩌겠냐고? 좋다. 그렇담 사람을 수십 명 죽인 흉악무도한 연쇄살인범조차 최소 몇 년은 살다가 형이 집행된다. 근데 뭐라? 삼 개월? 육 개월?
에라이 이 개 같은 눈도 못 뜬 저승사자 놈들아! 난 아버지다. 두 아이의 아빠다. 너거들은 애 한번 안 키워본 고자고 내시들이냐!
그는 발버둥질 치면서 고래고래 울분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거칠게 울음을 사방의 벽에 뿌렸다. 하지만…… 이게 어디 싫다고 해서 뿌리칠 수 있는 것이며 감춘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것인가. 삶에 이미 죽음의 얼룩이 선연하게 묻어버렸다.
사람 사는 게 뭐 이러냐? 나는 사람이 아니고 유령 같다. 내가 이렇게 좀비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게 될 줄…… 난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 그동안 많이 지난 과거를 되짚어보고 생각해봤다. (……) 근데 말야. 우리나라 사회가 진짜 너무너무 야박하지 않냐. 누군가 한번 무너지면, 스러지면…… 절대 다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일패도지(一敗塗地)야. 다신 못 일어나! 난 그게 너무나 서럽고 원망스럽다. 그 어디에도 패자부활전이란 게 없어. 생각해봐라. 넌 무섭지 않냐?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판단을 잘못 내릴 때도 있고 실수도 하잖아. 실패할 수 있어. 사람이니까…… 그래…… 모두가 실수를 저지른 내 탓이라고 해서 당연히 나도 그렇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무섭습니다. 아버지…… 그 생각만으로도 전 숨 쉬기조차 힘듭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께 자랑할 마땅한 게 하나도 없는 못난 자식일 뿐인데…… 그것도 모자라 숭악하기 그지없는 놈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처자식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홀어머니를 세상 아닌 지옥에 남겨두고서 제가 무슨 면목이 있어…… 그 세상으로 건너가 아버지를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이런 운명이 제게 주어진 게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어떻게…… 아버지, 아버지께서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너무나 염치없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로선 아버지께 하소연을 올리고 간청 드리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다면…… 네, 절 좀 구해주시고 제발 살려주십시오. 도둑처럼 들이닥칠 제 운명이 비켜나게, 저로부터 비켜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