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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5348847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4-02-02
책 소개
목차
1. 하얀 문
2. 박은신
3. 벽돌 공장과 기와 공장
4. 태봉
5. 전쟁
6. 변화
7. 옆구리 세월
8. 인생
9. 박스
10. 배웅
11. 염습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사람아, 정말 좋다니깐. 당신 몸 닦아 주는 동안 서로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참 좋단 거요. 어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이잖소. 당신도 좋지 않소?”
그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짐짓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어서 하기나 하라구? 헛허허, 어련히 내 알아서 하겠소? 보채지는 마시구려. 내가 닦아 낸 자리가 시원치 않다면 언제든 말해 주시구. 당신답지 않게 맘껏 성질부려도 좋소.”
거즈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아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무쪼록 내가 성심을 다할 터이니 좋게 봐 주시구려. 그래 요, 은신이……. 당신은 이름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당신은 참 오랜 세월 이름 없는 듯 살아왔지만 난 당신 그 이름이 참 좋소. 지금 난 은신이, 박은신을 맘껏 부를 수 있어 좋은데 듣는 당신은 어떠하오?”
아내 맨몸을 가린 흰 천을 가슴 위까지 끌어내렸다. 그리고 천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왼손을 조금 들어 올렸다.
“아아…….”
이내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너무나 작았다.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웠다.
죽음은 원래 안에서 바깥을 최대한 힘껏 잡아당기는 것인가. 그래서 피돌기가 멎은 공간 안까지만큼 신체가 축소되는 것일까. 원래 이렇게까지 조그맣게 느껴지던 손이 아니었다.
처음 잡아 보는, 만져 보는 손 같았다. 그 감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그가 죽은 아내 손을 만져 보는 첫 느낌은 그렇게 한없이 작고 가벼웠다.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은 이처럼 왜소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던가. 그래서 사라지고 없어질 만큼 덜어 내고 끝끝내 비우는 과정이던가. 승민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아내의 손을 다시 한번 요모조모 애틋한 눈으로 살폈다. 다시는 못 보고 못 만질 손을 최대한 기억 속에 저장해 두겠다는 듯이. 살아오는 동안 그 손이 거머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 버려서 그런지 너무나 가벼웠다.
아내 은신의 얼굴은 조그맣고 갸름했다.
차게 식은 이마며 희다 못해 연한 잿빛으로 가라앉은 듯한 감겨진 두 눈, 오뚝한 콧날, 보랏빛 입술이 얼굴 안에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