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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88997032167
· 쪽수 : 600쪽
· 출판일 : 2013-04-10
책 소개
목차
해제·5
서문 | 후한서 인물 이야기·14
유수_ 한나라 황실을 중흥한 자·19
유분자_ 목동 출신의 천자·55
외효_ 결단성 없는 북서쪽의 왕·73
공손술_ 마지막 적수·91
팽총_ 모반을 꾀한 공신·109
마원_ 전쟁터에서 전사한 군인·123
내흡_ 떳떳하지 못한 곳에서 죽다·145
등우_ 공신들 중 으뜸·159
오한_ 위엄 있는 자·179
구순_ 유수의‘소하’·195
풍이_ 큰 나무와 같은 장군·213
가복_ 호랑이처럼 용맹한 자·229
마 황후_ 모범이 되는 황후·239
종리의_ 백성들에게 인애를 베푼 관리·253
경공 _ 전쟁의 신·265
두헌_ 연연산에 비문을 남기다·279
반고_ 역사계의 거목·293
반초_ 서역을 다스리다·305
등 황후_ 평생 섭정하다·321
양진_ 청백리·341
우후 _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자·357
장형_ 백과사전형 인물·375
마융_ 고귀한 인품을 가지지 못한 대유학자·397
정현_ 경학의 집대성자·411
이고_ 목숨을 버리고 의를 택한 자·427
양기_ 발호장군·443
진식_ 좋은 사람·459
진번_ 천하를 휩쓸 뜻을 품은 자·473
이응_ 천하의 모범·489
곽태_ 청담의 시조·501
범방_ 어머니를 영예롭게 만든 자식·515
두밀·하복·장검·가표외_ 참혹한 당고의 옥·527
이업·온서·조포 외_ 지조를 지킨 자·545
봉맹·주당·엄자릉 외_ 품행이 고상한 은둔자·565
환소군·맹광·왕패의 처 외_ 열녀전·583
책속에서
중국의 5천 년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영웅들과 여걸들이 등장했었다. 또 수많은 문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무리들이 생겨났으며 수차례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25사史 속에는 그들의 업적과 중국의 지나간 세월들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것은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있으나 우리들의 기억과 그리움 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며, 소란스럽고 번잡한 현실 속에서 우연히 책을 펼치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온몸을 감싸는 감흥과 꿈결 같은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다.
- 서문 중에서
유수가 적진에서 홀로 말을 타고 도망쳐오다가 셋째 누이를 만나 구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세 딸과 함께 도망치는 둘째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유수는 그들을 불러 말에 타라고 했다. 그러나 한 필의 말에 어떻게 여섯 명이나 탈 수 있겠는가! 둘째 누나는 유수의 짐이 되기 싫어 동생에게 얼른 먼저 가라고 했다. 적병이 뒤쫓아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피해가 더 적은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수는 가슴 아프지만 먼저 도망쳤다. 결국 둘째 누나 모녀는 모두 해를 당했다. 이 일화는 유방의 이야기와 비교가 된다. 한 고조 유방의 경우, 도망가다가 자식들 때문에 마차가 빨리 달릴 수 없을 때마다 몇 번이나 그들을 마차에서 밀어버리려고 하였다.
지식인 출신이었던 광무제 유수는 문화적 소양이 풍부했다. ‘유학자는 나라의 보배’라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태학을 순시하며 공묘에 제사를 올렸다. 유수가 유학자를 중시하고 격려했기 때문에 후한시대 군신들은 유학자다운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백정, 도적, 무뢰배 출신으로 이뤄진 전한시대의 개국공신들과 비교하자면 천양지차였다. 문신을 장려하고 발탁하는 문치의 풍조 때문에 후한시대에는 강직하고 절개 있는 문인 대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 이 때문에 후한이 위기 상황이나 힘들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거나 멸망하지 않고 20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다.
― 한나라 황실을 중흥한 자, 유수 중에서(28, 29, 46쪽)
부부의 인연으로 18년을 함께 한 명제는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마 황후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7세의 장제가 즉위하면서 마 황후는 태후 자리에 올랐다. 명제의 비와 귀인들은 모두 거처를 남궁으로 옮겼고, 사별에 슬퍼하는 마 태후에게는 여러 차례 하사품이 내려졌다. 이런 일은 지금 보기에는 인지상정 같지만, 총애를 받기 위해 독약과 사술, 모함이 난무하던 후일의 후한 후궁들과 비교한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마 태후는 후일 『명제기거주』를 저술하였는데, 저서에서 자신의 오라비인 마방 등이 중병에 걸린 명제를 치료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실은 빼버렸다. 남들은 공이 없어도 봉록을 바라는데 마 태후는 공을 세우고도 봉록을 사양한 셈이었다. 장제는 그렇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
“외숙부들께서 아침저녁으로 1년이 넘도록 곁을 지켰는데 표창은커녕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니 너무 합니다.”
마 태후는 다른 의중을 내비쳤다.
“저는 후세 사람들이 선대 황제께서 외척과 가까이 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건초 원년(76년), 장제는 외숙부들께 작위를 봉하고자 하였지만 태후가 따르지 않았다.
― 모범이 되는 황, 마 황후 중에서(245, 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