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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명상/수행
· ISBN : 9788997188451
· 쪽수 : 218쪽
· 출판일 : 2014-01-0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경허대사 편
_경허대사 행장
_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_경전으로 벽을 도배해도 됩니까?
_술이나 파전을 먹고 싶을 때
_아직도 쌀 자루가 무거운가?
_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
_사람마다 본래 구족하고 있는 자리
_뱀이 실컷 놀다 가게 가만히 두어라
_콧구멍 없는 소
2. 수월 선사 편
_수월 선사 행장
_무엇이 숭늉그릇인가?
_나는 그런 사람 모르오
_저 돌멩이가 무엇인가?
_남쪽에서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라
3. 만공 선사 편
_만공 선사 행장
_불법은 네 눈앞에 있다
_적멸궁은 내 콧구멍 속에 있느니라
_매미 소리로 안목을 가리다
_그물 뚫고 나온 물고기
_원상 법문
_미나미 총독에게 내린 사자후
_풀 한 줄기로 지은 절
_법기보살의 깊은 풀밭
_일 마친 사람의 경계
_벽초 수좌의 할
4. 혜월 선사 편
_혜월 선사 행장
_어느 물건이 설법하고 청법하느냐?
_산 꼭대기에 바람이 지나간다
_이상한 돈 계산
_귀신 방귀에 털난 소식
_누가 내 소를 가져갔느냐?
_천진불을 깨뜨린 수좌
_미꾸라지를 산 스님
5. 한암 선사 편
_한암 선사 행장
_남산에 구름 이니 북산에 비가 온다
_적멸보궁에 참배나 다녀오너라
_가난뱅이가 묵은 빚을 생각한다
_방문을 활짝 열고 청산을 보여주다
6. 용성 선사 편
_용성 선사 행장
_화과원에 도리가 만발하니 화장세계로다
_어떤 것이 깨달음의 한 마디인가?
_칼날 위의 길을 갈뿐
_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_앉으면 일어서는 게 인과의 이치
저자소개
책속에서
… 경허 스님이 천장사에 계실 때, 어느 여름 밤이었다. 만공 스님이 큰방에 볼 일이 있어 경허 스님이 누워 계시는 그 앞으로 호롱불을 들고 지나가다 얼떨결에 보니, 스님의 배 위에 길고 시꺼먼 뱀이 척 걸쳐져 있었다.
만공 스님이 깜짝 놀라,
“스님, 이게 무엇입니까?”
하니, 경허 스님이
“가만히 두어라. 실컷 놀다 가게.”
하고는 놀라지도 않고, 쫓지도 않은 채 태연히 누워계실 뿐이었다.
얼마 후 뱀이 유유히 숲속으로 돌아간 뒤, 선사의 법문이 이어졌다.
“이런 데에 마음이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자기 공부에 정진해 가야 하느니라.”
확실히 깨달음을 얻어 생사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한 대장부의 대무심(大無心) 경계를 엿볼 수 있는 선화(禪話)이다. 어떠한 경계에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깊고 깊은 무심의 경지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와 같겠는가.
… 혜월 스님이 61세 때 부산 선암사 조실로 계셨는데, 몇 해를 두고 개간한 땅이 2천평이나 됐다. 이것을 욕심내는 절 밑의 속인들이 스님의 천진(天眞)한 마음을 이용해 싸게 샀다.
이에 상좌스님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스님, 그 돈은 두 마지기 값밖에 안됩니다.”
하고 원망하듯 말했다. 스님은 상좌들의 말을 무심히 듣고 난후 이렇게 꾸집었다.
“이 녀석들아! 논 닷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여기 두 마지기 값이 있으니 번 것이 아니냐? 사문은 욕심이 없어야 해!”
“스님, 하지만 손해가 너무 많습니다.”
“허! 허! 인간의 마음 속에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지 않느냐.”
혜월 스님의 법문을 들은 제자들은 2천 평의 땅, 재물이란 상(相)에 걸려 무소유의 천진불(天眞佛)인 조실스님의 경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자신들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이 선화는 우리가 어떻게 보시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예이기도 하다. 보시의 핵심은 미묘하게 숨겨진 소유욕과 끝없는 욕심으로부터 수행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것’이란 생각이 없어서 늘 무소유의 삶을 살아서 ‘무심도인’이란 별명을 들었던 혜월 스님의 면목이 대게 이러했다. 스님 개인의 사생활은 아주 검소하고 순박해서 소지품이라곤 발우 한 벌에 작은 이불 하나, 삼베옷 몇 벌 뿐이며 밤에 잘 적에는 결코 요를 까는 일이 없이 맨바닥에 잠깐 눈을 붙일 뿐이었다. 그리고 정진 시간 이외에는 늘 부지런히 일하고 개간했으며, 비오는 날이면 머슴들과 한 방에서 세끼를 꼬고 짚신을 삼으면서도 동중(動中)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일제강점기 일본 조동종 관장(종정)을 지낸 경성제국대학 사토 타이준(佐藤泰舞) 교수와 한암 스님간의 또 다른 법거량이다.
어느 날, 월정사에서 전갈이 오길, 사토 교수가 면회를 요청하니 곧 내려오시라는 것이었다. 그 때 상원사에서는 한암 조실의 지휘 아래 가을 김장 준비로 밭갈이 중이어서 한암 스님은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자 얼마 후 사토 교수 일행이 직접 상원사로 올라오자, 통역이 작업을 중지하고 귀빈을 맞으라고 성화였다.
통역이 다시 조르자 한암 스님이 말했다.
“가서 물어보게. 나를 찾아보러 왔는지, 절 받으러 왔는지.”
이윽고 조실방으로 들어온 사토 교수는 공손히 예배하고 법문답을 청했다.
“본연청정(本然淸淨)한테 어찌 산하대지(山河大地)입니까?”
한암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문을 활짝 열고 청산(靑山)을 보여주었다.
“본연청정(本然淸淨)한테 어찌 산하대지(山河大地)입니까?”하는 질문은 장수 선사와 낭야 선사간의 문답으로도 전해질 만큼 유명한 공안이다.
장수 선사가 낭야 선사에게 가서 묻되, 『능엄경』 가운데 부루나 존자가 부처님께 묻기를 “청정본연커늘 어찌하여 문득 산하대지가 생겼습니까?” 한 질문을 인용하여, 다시 “청정본연커니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생겼습니까[淸淨本然 云何忽生 山河大地]?”
하였다. 그러자 낭야 선사가 반문하되,
“청정본연커늘 어찌하여 문득 산하대지가 생겼는고?”
하고 되물었더니, 장수 선사가 그 말끝에 깨쳤다.
그것은 장수 선사가 물을 것도 없는 것에 한 생각을 공연히 일으켜서 ‘묻는 그 자체가 산하대지를 나타나게 한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장수 선사와 사토 교수의 질문은 동일했지만, 한암 스님은 ‘만목청산(滿目靑山: 보이는 그대로가 깨달음의 세계이다) 즉, 산하대지를 직접 보여주는 말없는 지혜작용으로 오히려 낭야 선사 보다 더욱 명쾌한 대답을 하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