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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냥꾼 1

빛의 사냥꾼 1

장소영 (지은이)
  |  
로담
2011-10-20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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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냥꾼 1

책 정보

· 제목 : 빛의 사냥꾼 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7253074
· 쪽수 : 415쪽

책 소개

<자유를 향한 비상구>, <단 하나의 표적>의 작가 장소영의 로맨스 소설. <자유를 향한 비상구>의 정지혁과 유정현, <단 하나의 표적>의 최강욱과 서준희. 그들의 2세가 목숨을 건 치열한 사랑을 펼친다. 정의롭고 열정적인 초짜 외교관, 최현진. 치밀하고 냉소적인 비밀정보부 요원, 정준우. 사건 속에 피어나는 불꽃로맨스.

저자소개

장소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매순간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열광한다. 글을 읽는 즐거움을 알고, 글을 쓰는 기쁨을 배우며, 긴 시간 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출간작] <어느 전투조종사의 사랑>,<단 하나의 표적 >,<자유를 향한 비상구>,<아이스월드의 은빛유혹 >,<클럽 빌리어드 >,<위기십결 >,<러닝타임>,<모델Model >,<겨울연인 >,<천강(엇갈린 운명) >,<블루가드 >,<야생화>,<레드오션 >,<와일드캣 >,<구인광고 >,<닥터의 순정 >,<빛의 사냥꾼>,<리멤버 >,<수상한 건달 >,<가면의 덫 >,<뮤직퀸>,<그랑프리 (grand prix) >,<빛나는 유산 >,<달콤한 우정 >,<해리 >,<레이디 앤 젠틀맨 >,<서툰 고백 >,<귀여운 요부 >,<거미숲 >,<검의 승리 >,<어화둥둥, 마이 프린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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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현진은 ‘휴이’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을 올려다보며 그의 옆에 멈춰 섰다. 건물은 전면이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제법 있어 보이는 외관이었다. 벽돌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큰 ‘휴이’라는 술집이름이 영어와 베트남어로 새겨져 있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영어 바로 아래에 한국어로 ‘부킹, 뜨거운 밤을 책임집니다.’라고 씌어져 있었다. 하긴, 아시아는 현재 넘쳐나는 한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이쯤은 특이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건물을 살펴보고 있던 현진은 문득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니 그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현진은 뭉툭하게 물었다. 왜 자꾸 이 남자에게 시비가 걸고 싶은지 모르겠다.
“거기, 단추 세 개 풀어.”
“단추?”
그녀는 그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다 순간 확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말한 단추가 목 끝까지 채워진 블라우스 단추라는 것을 깨닫고 사납게 고개를 쳐들었다.
“지금 그게 무슨…….”
“아니면 차에 가서 기다리든지.”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녀가 반항하듯 대들자 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곳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여자기숙사 사감 같은 모습으로 들어가면 저들의 반감만 살 거야.”
사감? 현진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얌전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이게 무슨 사감이야? 소매부분에 얌전하고 러블리한 러플이 달린 블라우스는 올해 유행하는 세련된 스타일이었고, 바지는 그런 블라우스를 받쳐주도록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었다. 무난하면서도 튀지 않고 우아한 패션이라고 그녀는 자부했다.
현진은 턱을 치켜들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옷이 어때서요? 이건 저번 달에 월급의 반을 주고 산 신상이라고요.”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상’을 감히 모욕해? 당신이 패션을 알아? 하는 얼굴로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의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어렸다.
“회의석상이나 맞선 자리에나 입고 나갈 만한 옷이지.”
그게 어때서? 어디서든 예의를 차려 입는 건 외교관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이지. 외교관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서요? 지금 말하고 싶은 게 뭐예요? 왜 하필 지금 내 옷 가지고 트집이에요?”
나도 트집 잡을 거 많거든? 현진은 뒷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왜 키스 했느냐에서부터 사람 흔들어대고 답답하게 하는 것까지, 트집 잡으려면 그녀가 훨씬 많았다.
“그럼 예의 갖춰서 저 안에 들어가 보시지. 네가 나타나는 순간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긴장할 걸?”
“왜요?”
“이런 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으로 나타난 여자가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건 기본일 테고, 더 나아가서 뭔가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이런 술집을 운영하면서 비리 없고 법 지키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현진은 다시 시선을 내려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하긴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블라우스 단추를 두 개 풀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더 풀어.”
현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단추 하나를 더 풀었다. 그러자 가슴골이 조금 드러났다. 하얀색 브래지어의 레이스 부분도 삐죽 튀어나왔다. 그녀는 슬며시 한 손을 올려 가슴께를 가리며 물었다.
“됐어요?”
“아니.”
놀란 그녀가 어쩔 새도 없이 그가 성큼 다가서더니 그녀의 손을 홱 치워버리고 단추 하나를 더 풀었다. 그리고 바지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블라우스 자락을 끌어내더니 휙 치켜 올려 가슴 바로 아래에서 묶어버렸다. 배꼽과 허리가 완전히 드러나고 명품 블라우스는 졸지에 탱크톱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얌전하게 반만 묶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단숨에 풀어헤쳤다. 단발머리는 그녀의 귀 언저리에서 스르르 웨이브 지며 물결쳤다.
현진은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작품을 훑어보는 그를 보며 이죽거렸다.
“이제 됐어요?”
“그럭저럭.”
저놈의 ‘그럭저럭’, 저 표현이 이렇게 듣기 싫은 단어였던가? 아니, 저 남자가 해서 더 기분 나쁜 거다. 얄밉고 짜증나면서도 왠지 싫지 않은 남자. 아니, 화가 날 정도로 눈길이 가는 남자…… 제길, 내가 정말 제대로 미쳤나 보다. 바람에 흐트러진 그의 머리칼만 봐도 가슴이 뛰는 걸 보면.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그가 나직하게 속삭일 때도 현진은 앞으로 자신이 무슨 일에 휘말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하계단을 내려가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입구가 나타났다.
‘INFORMATION’이라고 크게 적힌 데스크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유리문 옆 벽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문이 열리도록 전자키가 달려 있었다.
현진은 유리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을 눈으로 더듬어보았다. 불투명 유리창에 가로막혀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무척이나 화려할 듯했다. 밖에서 보는 안은 굉장히 넓어 보였고 천장에 달린 조명이나 바닥과 내부 인테리어도 예사로워 보이진 않았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환영회랍시고 한인협회에서 열어준 회식자리가 생각났다. 식사를 하고 2차로 간 술집은 ‘하노이의 아방궁’이라는 별칭처럼 그 규모가 무척이나 컸다. 문득 그 때의 호화로운 술자리가 떠오르자 현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과히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커다란 룸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비싼 술을 마시고 밴드를 부르고 거의 벗다시피 한 여자들의 춤을 구경하고…… 상관들이 줄줄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남긴 했지만 그 밤 내내, 또 그 후 며칠간도 계속 불쾌한 잔상이 남았었다. 그리고 그 후로 그런 유흥문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는 지금의 한인협회장에 대한 감정도 그다지 좋아질 수가 없었다.
삐-. 갑자기 문이 열렸다. 누군가 안에서 두 사람이 온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자동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건장하고 험악한 남자였다.
“영업은 다섯 시부텁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말투는 예의발랐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위협적이었다. 상대에 대한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 정체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
“저기 죄송한데…….”
현진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남자의 험악한 외모와 분위기에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이곳까지 온 목적을 달성하려면 별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얼어버렸다. 놀라서 숨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허리를 감싼 남자의 큰손을 강하게 의식하며 현진은 그의 품으로 와락 당겨져 있었다.
현진이 시선을 돌려 레이를 보았을 때 그 또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에 현진은 또다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간절하고 뜨거운 눈빛.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키스라도 하려는 것처럼.
여기서?
현진은 뇌리 속으로 스쳐가는 의문을 멍하게 의식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이라 미처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질문이 가동을 멈춘 뇌 속을 떠도는 것 같았다.
그가 갑자기 시선을 돌려 문 앞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현진은 자동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그를 따라 험악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우린 급한데…….”
급해? 뭐가?
레이가 그렇게 말하자 남자가 알만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여긴 모텔이 아니오. 나가서 오른쪽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모텔이 많으니까 그리로 가시죠.”
경계하던 목소리가 조금은 사그라진 것 같았다. 그러자 레이가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품 안으로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현진은 ‘헉’ 숨을 들이켜며 그의 품에 밀착되었다. 가슴이 그의 단단한 몸에 부딪쳐 짓눌릴 것만 같았다. 거기다가 심장은 갈비뼈를 뚫고 나오기라도 할 듯 쿵쾅거리고 미칠 듯 휘몰아치는 혈관은 하얗고 약한 피부 위로 선명한 푸른색을 드러냈다.
“모텔이야 많지. 그런데 우린 술 마시고 음악이 있는 곳이 필요하거든. 또…….”
현진은 레이가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지폐를 흔들며 나지막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필요하고.”
돈이 문지기처럼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남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비웃음을 짓더니 되물었다.
“그거? 그거라니?”
하지만 남자는 돈을 다시 돌려주지는 않았다. 왠지 서로가 짐작하는 ‘그거’에 대한 것을 맞춰보기라도 하는 듯 견주는 듯했다. 현진은 레이가 말하는 ‘그거’에 대해 생각했다.
“이거 왜 이러시나? 내가 그렇게 샌님처럼 보이시나?”
그러더니 레이가 입술을 내려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훅 불어넣었다. 현진은 돌조각처럼 얼어 숨을 들이켰다.
“자기, 다른 곳으로 갈까? 여긴 우리가 원하는 걸 못 들어줄 것 같은데…….”
다, 다른 곳? 여기가 그 문신한 남자의 최종도착지인데 가긴 어딜 가?
현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가 ‘오케이, 자기가 원한다면.’하고 중얼거리더니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침을 꼴깍 삼키고 간신히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그가 남자에게 하는 말이 윙윙거리지 못하도록 정신을 붙잡으려고 기를 썼다.
“우리 아가씨가 다른 덴 가기 싫다는데. 룸 하나 내와.”
그러더니 그가 또 지폐 몇 개를 남자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남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이런, 한시가 급하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단 몸수색은 좀 해야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두 팔을 활짝 펼쳐 보이더니 말했다.
“그러시든지. 단, 내 아가씨한테 그 우락부락한 손을 대는 건 안 돼.”
껄렁한 왈패 같았다. 현진은 이런 술집 따위 수도 없이 드나든 것처럼 행동하는 레이를 보며 감탄했다. 말투도 저급했고 하는 행동도 놀고먹는 일이 몸에 배인 사람처럼 불량스러웠다. 도저히 조금 전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레이의 주장대로 문지기는 인터폰으로 여자 하나를 불러냈고 그 여자가 현진의 몸수색을 했다. 가방은 없었다. 아까 차에서 내리기 전 레이가 가방은 두고 내리라고 해서 현진은 몸만 왔다. 그래서 그녀의 몸수색은 단숨에 끝이 났다. 현진은 문지기가 레이의 몸을 샅샅이 더듬고 지갑까지 살피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손님. 들어가시면 저희 직원이 룸으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오케이. 자기, 이리 와.”
그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아 당겼다. 현진은 또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해서 자동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들이 안내된 곳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화려한 룸이었다.
누가 봐도 목적이 분명한 공간이었다. 붉은색 조명이 방 전체를 은근하게 감싸고 발이 푹푹 묻힐 만큼 폭신한 카펫과 아방궁의 진시황제가 와도 울고 갈 부드러운 소파와 쿠션들.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낯부끄러운 조각상들까지. 현진은 너무나 적나라한 공간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술부터 가져오겠습니다.”
그들을 안내한 웨이터가 나가자 현진은 입 안이 바짝 말라오는 것을 느꼈다. 괜한 헛기침을 하며 그에게 툴툴거린 것도 이 기묘한 분위기를 깨보려는 절대적인 노력이었다.
“그냥 문신한 남자에 대해 물어보기만 하면 되지, 왜 이런 연극까지 해요?”
“낯선 사람이 무작정 찾아와서 누굴 찾아왔다고 하면 순순히 대답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리석군. 이런 곳은 체질적으로 낯선 사람을 경계해. 특히, 만약 우리가 찾는 사람이 이 업계에서 힘 좀 쓰는 사람이라면 더 하겠지.”
말하면서 그가 소파로 다가는 것을 본 현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그럼 어쩔 셈인데요? 이러고 연인 흉내만 낸다고 그 남자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가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에 앉으니 몸이 쑥 가라앉으며 앉았다기보다는 누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놈들의 경계심을 좀 풀어놓고 상황을 지켜볼 거야. 그런 후에 어수룩한 놈 하나 잡아서 족치든지. 이리 와서 앉아.”
헉. 현진은 자신에게 와서 앉으라며 눈짓을 하는 그를 보며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게 또 어색해져버렸다. 입 꼬리가 슬쩍 떨리기까지 한다.
“난 그냥 여기 앉을게요.”
그리고 그와 가장 멀리 떨어진 동그란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우리가 연인이 아닌 걸 저들이 알면 수상하게 여길 거야.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아내려고 어딘가로 끌고 갈 수도 있고.”
“그럼 솔직하게 말하죠, 뭐.”
그가 쯧쯧, 혀를 찼다. 현진은 그런 그에게 인상을 썼다.
“저들이 과연 네 말을 믿을지 모르겠군.”
어…… 하긴 안 믿을 것 같다. 입구에서는 그렇게 뜨거운 연인인 척 해놓고 이제 와서 누굴 찾으러 왔다고 하면 나라도 안 믿겠다. 문득 입구에서 문을 지키던 험악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락부락한 얼굴도 얼굴이지만 그 큰 덩치의 주먹에 한 번만 맞아도 최소 사망이지 싶었다.
현진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주춤주춤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엉덩이를 붙였지만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며 조금 더 다가가 앉았다. 그 순간 그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쑥 잡아당겼다. 얼떨결에 몸을 젖힌 그녀가 쿠션에 털썩 쓰러지듯 눕자 그가 덮치듯 몸을 겹쳐왔다.
현진은 발버둥을 치며 잇새로 내뱉었다.
“지금 뭐하는…….”
“쉿.”
그가 입술을 내려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경고하듯 말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현진은 그의 어깨너머로 웨이터가 술이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데 웨이터의 눈이 그녀와 마주쳤다. 다 안다는 듯 은근하게 웃는 얼굴이 음흉했다. 현진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하지만 이내 눈을 다시 떠야 했다. 그가 쟁반을 놓고 나가려는 웨이터에게 은밀하게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다른 건?”
“예? 다른 거요?”
웨이터가 다시 물었지만 그는 오직 그녀에게만 집중하는 척 했다. 하는 척? 확신할 수 없었다. 현진은 눈을 뜬 채 그 상태로 얼어버렸다. 뜨겁고 집요한 눈빛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다운 굵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느낌에 현진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에 닿는 시선에 입술이 마르고 호흡이 뜨거워졌다. 겹쳐진 단단한 몸이 갑자기 강하게 의식되고 종이 한 장 차이로 떨어져 있는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숨결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공기인 양 느껴졌다.
“우린 좀 더 강한 게 필요해.”
웨이터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 그가 갑자기 그녀에게 키스했다. 순간 현진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손길이 그녀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거칠게 다가온 입술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머금었다가 살짝 깨물더니 놀라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사납게 파고들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입 안을 적시는 낯선 이물감에 뇌는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사고를 멈춰버린 뇌는 충격과 짜릿한 쾌락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가 입술을 떼고 웨이터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현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허벅지에 아직도 그의 손이 남아있고 두 사람의 숨결이 여전히 뒤섞일 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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