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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7253906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3-07-31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훈데. 그쪽 오늘 별로 바쁘진 않은가 봐요?”
“바쁩니다. 그것도 눈코 뜰 새 없이 많이요.”
“나 때문에 선약을 취소한 건 아닐 테고, 정말 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바람 맞은 거 아니라면서.”
마리의 물음에 승재는 그저 슬그머니 웃었다.
“굳이 바람을 맞았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면, 난 바람을 맞힌 쪽에 속하죠. 꼭 그래야 했던 건 아닌데, 더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요.”
“대체 어떤 중요한 약속이기에…… 사람을 바람까지 맞춰요? 혹시 그쪽도 선보려고 했어요? 만약 그랬다면 상대가 꽤나 마음에 안 들었나 보죠? 내가 그럴 입장은 안 되지만 그 상대, 참 안 됐네요.”
마리는 진심으로 그 상대가 동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요. 상대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왜요? 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바람 맞췄는데요?”
“아까도 말했죠. 더 중요한 약속이 생겨버렸다고.”
그는 스테이크를 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중요한 약속이 생겼다면서 왜 내 앞에서 이러고 있는 건데요?
“내 사생활에 이제야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러는 나도 주마리 씨에게 한 가지 묻고 싶군요. 주마리 씨는 여자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란 것도 없습니까? 남자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것도 나온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약속을 파토 냈다면 그게 진정 뭘 의미하는지 모른단 말입니다?”
“나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라고는 왜 생각하지 못하나?”
“그 남자한테 차였으니까 내가 1초라도 먼저 당연히 여길 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상대가 신승재 씨 같은 남자였다면 아마도 그랬을 지도 모르죠. 모든 남자를 다 신승재 씨 편견에 몰아넣지 말아주시죠! 세상 모든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를 바람 맞추고, 버젓이 다른 여자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지는 않아요. 그는 내게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서 반드시 다시 연락이 올 거라고 믿고 있거든요.”
마리가 ‘꼭 올 것’이란 말에 무게를 싣자, 승재는 피식 웃어넘기더니 그녀의 주위를 눈으로만 훑었다. 마치 그녀를 점수 매기는 듯한 예민한 눈길로. 이어서 그는 말했다.
“인사치례로 한 말이겠죠. 바람 맞춘 남자가 하는 말을 믿습니까?”
“그건 그쪽이 상관할 일이 아니죠! 맹세 컨데, 난 꼭 연락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 남자한테 단단히 콩깍지라도 쓰인 모양입니다. 만난 지 채 5분도 안된 남자한테 그 정도로 콩깍지가 쓰인 이유가 뭔지 참 궁금합니다만. 혹시 그 사람이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재벌 2세정도 되는 겁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아무리 주마리 씨를 매몰차게 바람 맞추고 가도 연락하겠다는 인사치레 한마디에 그런 미련한 기대까지 하게 된 겁니까?”
“상대할 가치도 없는 말만 하시네요.”
마리는 반박했지만 승재는 그에도 단호히 말했다.
“주마리 씨, 내가 하나 충고해도 되겠습니까? 맹세는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 같은 순간에 그 말은 적절하지 않다는 걸 왜 모릅니까?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소린데, 남자들 겉만 보고 다 믿지 마세요. 겉으로 드러난 친절함에 속아 당신이 상처 받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상처…… 꼭 받아본 사람처럼 말하시네요. 근데 진짜 상처가 뭔지는 모르시는 것 같아요. 진짜 상처는 이미 알고 있는 아픔까지 헤집어 놓는 거죠. 신승재 씨야말로 장담하지 말아야 할 것 같네요! 세상사 일, 다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한 게 아니니까, 당신생각으로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지 말란 소리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그쪽한테 충고 하나 하죠.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안면 조금 있다고 참견하는 오지랖, 참아주기 참 힘드네요. 다른 사람 일에 아무 때나 참견하는 거, 그게 때론 실례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그럼 이만 실례하죠. 밥맛이 떨어져서, 그쪽하고는 한상에 밥 못 먹겠네요. 나는 상관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 그쪽은 남은 음식 천천히 먹고 일어나요!”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일어선 마리는 유유히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떠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승재는 마치 그 자리에서 실연당한 사람처럼 씁쓸히 웃으며 이미 사라진 그녀의 빈자리만 그저 바라보았다. 왠지 지금 가는 이 여자를 잡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