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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

게임 체인저

(과학자의 눈으로 본 무기와 과학의 세계)

김종수 (지은이)
  |  
섬앤섬
2022-12-19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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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

책 정보

· 제목 : 게임 체인저 (과학자의 눈으로 본 무기와 과학의 세계)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97454570
· 쪽수 : 396쪽

책 소개

시대를 막론하고 군사기술은 언제나 당대 최첨단 기술에 기반했다. 전장의 균형을 한순간 무너뜨리고 상대의 저항 의지를 단숨에 꺾어버리거나 흐름을 바꿔놓음으로써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수단 ‘게임체인저’를 손에 넣기 위해서이다.

목차

추천의 글 ・5

프롤로그 —과학기술에 대한 예의와 상식 ・11

1장. 현대 이전의 군사기술과 무기의 역사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27
고대 과학기술의 최고봉 아르키메데스와 ‘유레카’ 에피소드의 진실 / 왕관(Corona)이 아니라 ‘용골(Korone)’이다 / 핵심은 물밑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고대 최강의 군대 로마군단 ・37
로마군단의 본질은 기동성이다 / 역사상 최강의 엔지니어링 집단 / 로마의 발사무기
중세, 과학기술의 암흑시대 ・45
중국 과학기술의 이른 개화와 몰락 / 로마를 멸망시킨 훈족, 그들은 누구인가?
다마스쿠스강은 정말 슈퍼스틸이었을까? ・54
우츠강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애증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60
다빈치의 드로잉 / 무기설계자와 엔지니어로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 다빈치가 몰랐던 비행기가 뜨는 원리
기사의 시대가 끝나고 해군의 시대가 열리다 ・70
대항해 시대 / 영국의 대양 제패는 바이킹의 덕인가? / 동력선의 시대
15세기 군사 강국 조선은 왜 몰락했나? ・82
조선의 치명적 약점 / 몰락의 시작 /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조선

2장. 지옥의 서곡, 현대전의 탄생

총력전의 아버지, 링컨 ・95
총력전의 탄생, 남북전쟁 / 링컨의 유산, 군산복합체 / 링컨의 흑역사, 핑커톤 전미탐정사무소
총기의 나라, 미국 ・107
총기는 미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 미국이 이룩한 총기의 혁신 / 미국의 고질병, 총기의 범람
프랑스의 기술 혁신 ・121
미니에 탄 / 무연화약 / 1897식 75mm 야포 / 르노 FT-17 경전차
프리츠 하버의 등장 ・130
19세기 식량위기의 본질은 질소 격차 / ‘Mad Scientist’의 원형, 프리츠 하버는 누구인가? / 대량살상무기의 등장
정보전 시대의 서막 ・141
컴퓨터 시대의 선구자, 앨런 튜링 / 코드 브레이킹 / 튜링의 우울한 퇴장 / 앨런 튜링의 자살을 어떻게 볼 것인가? / 블렛츨리 파크의 또 다른 정보전의 선구자, 고든 웰치먼
수학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시대 ・155
20세기의 또 다른 설계자, 존 폰 노이만 / 복잡계와 시스템 이론 / 정보부를 위해서 일하는 간판 없는 수재들

3장. 무기의 기본은 화력이다

폭탄의 기초 ・169
폭발의 물리학의 등장 / 고폭약과 저폭약 / 폭탄이 위력을 발휘하는 메커니즘 / 화력의 끝판왕, 핵폭탄 / 페르미는 트리니티 폭발의 위력을 손으로 계산했을까? / 박정희의 핵폭탄개발계획은 얼마나 진행됐을까? / MOAB vs FOAB
화포의 기초 ・201
화포의 물리학 / 곡사포의 사거리를 결정하는 인자들 / 포탄의 사거리와 항력 / 장사정포의 허상 / 제럴드 불과 슈퍼건 / 미국의 화포 말아먹기 신공 / 포병 화력의 미래 / 로켓의 영역 / 로켓의 핵심 성능인자 / 로켓 개발은 누구나 할 수 있나? /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핵잠수함

4장. 테크노로지컬 포르노그라피

전차의 미래 ・251
전차, 전격전 그리고 각성제 / 전차의 완성, T-34 / 전차의 화력, 주포의 미래 / 모순 관계 / 4세대 전차란 무엇인가? / K-2 전차의 미래
스텔스는 만능이 아니다 ・286
비극의 서막 / 단기적 학습 효과 / 잊혀 가는 교훈 / 생태계의 파괴자, F-35 / F-35는 과연 세기의 망작인가? / Less is More, KF-21 보라매 / 6세대 전투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 보잉이 보잉을 하다! / 극초음속 미사일은 과연 실체가 있는 무기체계일까?
화력의 집행자, 전투함 ・345
미 해군 주포 개발의 잔혹사 / 임무가 없는 줌왈트급 구축함 / 화력이 없는 연안전투함 / 이착륙이 어려운 포드급 항공모함 / 대한민국 해군 앞에 놓여 있는 4가지 과제

에필로그 —누구를 위한 군대, 누구를 위한 군사기술인가? ・379

감사의 글 ・393

저자소개

김종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2년서울 출생. 대학입시 본고사의 마지막 해이자 전두환의 광주민중학살이 자행된 198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며,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의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 Diego(UCSD)에서 연소공학과 로켓추진을 전공했다. 1991년 공학물리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약 4년간 UCSD의 전문연구스태프로 근무하면서 미공군에서 수주한 로켓추진분야 연구를 수행했다. 1996년 귀국,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1년 동안 근무하면서, 대기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감축기술 및 기후과학연구를 포함하는 다수의 환경기후분야 대형연구개발사업을 기획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환경기후문제에 대한 근원적 메커니즘을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환경분야 연구와 별도로, 영국물리학회(Institute of Physics)에서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Combustion Theory and Modelling》의 편집위원과 과총(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이 발간하는 월간지 《과학과 기술》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17년 KIST에서 나온 이후 현재까지 에너지환경분야 기술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에너지환경, 군사기술 및 (과학기술자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에 대한 저술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단순하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쓰지는 않는다. 매체에는 이미 너무 많은 양의 지식이 범람하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현상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작동 메커니즘과 현상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해결방안을 도출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군사기술과 무기에 대한 이 글도 그런 목표를 가지고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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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총력전’의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

근대 이전의 전쟁과 비교해서, 현대전의 가장 큰 차별성은 바로 총력전(Total War)이라는 것이다. 총력전은 말 그대로 한 국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과 역량을 투입해서 수행하는 전쟁을 말한다. 총력전은 제일 먼저 동원 가능한 인적 자원과 산업 역량을 모두 동원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기반하는 산업생산력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서 과학기술력도 총력전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으며, 정보력도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전의 맹아는 언제 탄생했을까?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대혁명 같은 공화혁명을 지키려 한 전쟁에서 총력전의 싹을 볼 수 있다. 왕과 귀족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인민들이 권력을 나눠 갖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 도입이 필연적이었으며, 전쟁에서 가용한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총력전이라는 현대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 첫 전쟁은 미국의 남북전쟁이다. 인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산업 생산력과 더불어 기술 혁신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요소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첫 번째 대규모 전쟁인 까닭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총력전이었다는 것은 동원된 엄청난 인적 자원과 사상자 수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총인구는 약 3000만 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당시 인구의 약 20%가 흑인노예였기 때문에 백인 남성의 숫자는 약 1200만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반면 남북전쟁에 동원된 사람은 남북군 모두 합쳐서 300만 명에 달했으니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연령대의 남성은 거의 모두 징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참전자 300만 명의 20%가 넘는 약 65만 명이 전투 중에 사망하거나 부상으로 인한 질병 등으로 사망했으며, 40만 명 이상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또한 민간인과 노예의 사망까지 포함하면 사망자의 총수가 100만을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남북전쟁 기간 중에 동원된 병력 및 사상자의 규모는 20세기에 벌어진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전쟁들인 스페인 내전, 한국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남군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의 전략은 차원 자체가 달랐다. 로버트 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남부군은 남북의 경계지역인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근처에서 산발적인 직선 공격을 하면서 전투에서는 자주 승리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교착상태에 빠진 소모전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백악관에서 전보를 통해 병력과 물자를 전국적으로 재배치하는 2차원적 전략으로 무장한 링컨의 북군(연방군)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었다. 북군은 먼저 남부의 바다를 완전히 봉쇄했다. 덕분에 남부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목화의 수출길이 막혔다. 그리고 서쪽의 미시시피강을 따라서 주요 도시와 요새를 하나씩 점령하는 방법으로 남부군을 두 동강 내고 있었다. 미시시피강을 따라서 벌어진 전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투는 1862년 12월부터 1863년 7월4일까지 장장 7개월 동안 벌어진 빅스버그 포위전(Siege of Vickburg)이다. 빅스버그라는 미시시피강 하류의 가장 중요한 요새 도시가 북군의 손에 넘어감에 따라서 남부군의 병력, 식량 및 말의 핵심적 보급원이었던 텍사스와 아칸소가 남부군과 단절됐다. 그러니 남북전쟁의 결과는 빅스버그 포위전에서 결정되었다고 봐도 결코 틀리지 않다. 빅스버그 함락 이후 북군이 강제하고 있던 소모전에 대해서 남군이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빅스버그 포위전을 승리로 이끈 북군의 서부전역 사령관이었던 그랜트가 1864년 봄 북군의 총사령관에 임명되면서, 그랜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s Tecumseh Sherman)이 서부전역의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셔먼은 링컨과 그랜트의 총력전 개념을 한층 더 발전시켜서 남군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중심으로 바로 쳐들어가 초토화하는 청야작전을 수행해서 결국 남군을 굴복시겼다. 셔먼의 진격을 보자면, 전격전의 창시자는 나치 독일군의 구데리안이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심장부로 파고든 셔먼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정도이다.
후세의 호사가들이 남북전쟁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1차원적 전략으로 무장한 남군이 월등한 인적 물적 자원은 물론이고 2차원적 전략까지 이용할 줄 알았던 북군에 승리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어쨌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은 총력전을 수행해야만 하는 한 국가의 군대 통수권자가 보여줘야 할 모든 덕목을 제대로 보여준 현대전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약 75년 뒤에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재현한 인물이 두 명 더 나왔다. 한 명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이고, 다른 한 명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이다. 스탈린이 비록 잔혹한 독재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독소전쟁에서 그가 보여준 군사전략가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인정을 받고도 남음이 있다. 반면 아돌프 히틀러는 스탈린의 적수가 될 자질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저 잔악하기 그지없는 평면적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첫 대량살상무기의 등장, 기관총

남북전쟁은 미국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던 것처럼 미국 총기 개발의 혁신도 가속시켰다. 총기의 발전은 연발 사격이 가능한 반자동총에 그치지 않고 기관총으로 발전했다.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전쟁의 종식’이라는 다소 모순적이면서 현대적인 개념을 일찍이 생각했던 사람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의사이며 발명가였던 리차드 조던 개틀링(Richard Jordan Gatling)이다. 의사였던 개틀링은 남북전쟁 초기부터 팔과 다리가 잘린 수많은 부상자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 의지 자체를 꺾을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개틀링 기관총을 발명했다. 다수의 총열을 원형으로 붙여놓고 사수가 손잡이를 돌리면 총열이 회전하면서 빠른 속도로 총알을 퍼부을 수 있는 무기가 개틀링 기관총이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아주 강력한 대량살상무기였지만, 전쟁 의지 자체를 꺾을 수준의 대량살상무기는 아니었다. 개틀링은 순진하게도 인간의 폭력성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했다. 거기다 개틀링 기관총은 전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데 실패하기까지 한다. 당시의 화약은 연소될 때 너무 많은 매연이 발생했기 때문에, 몇 발을 쏘지 못하고 총열이 탄매(彈煤)에 막히는 고장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연화약과 때를 맞춰 등장한 무기가 19세기 말에 개발된 맥심 기관총이다. 미국 태생의 발명가인 하이럼 맥심(Hiram Maxim)이 개발한 맥심 기관총은 총탄을 발사할 때 생기는 가스압의 반동력을 이용했기 때문에 탄약의 재장전을 위해서 외부의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방아쇠만 당기고 있으면 기관총이 알아서 계속 총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개틀링 기관총과 달리 하나의 총열만으로도 연발 자동사격이 가능했고, 총열의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서 총열의 외부에는 수냉식 냉각기까지 장착했다. 무연화약과 결합된 맥심 기관총은 진정한 의미의 기관총일 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대량살상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관총의 진정한 위력이 발휘된 첫번째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이다. 독일제국 군대는 교차사격이라는 전술을 개발하여 단 2대의 기관총으로 독일군 진지로 돌격하는 수백 수천의 영국 프랑스 연합군 병사들을 섬멸했다. 더 이상 보병만으로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해안가에서부터 알프스산맥까지 참호와 요새로 아주 복잡하게 연결된 움직이지 않는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장군들은 교착상태의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서 매달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을 상대방의 기관총 진지로 돌진시켜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렇지만 철조망을 넘어 적진으로 돌격하는 것은 병사에게는 자살행위이며, 지휘관에게는 병사를 도살장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였다. 이 죽음의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서 개발한 신무기가 바로 전차(TANK)이다.

-바다 위의 게임체인저 드레드노트의 등장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작열탄의 피격으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해서 배들이 철갑을 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갑으로 무거워진 전함을 구동하기 위해서 증기기관이 돛을 대신해서 배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1860년이 되기 직전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배의 전체를 철갑으로 두른 진정한 의미의 철갑선(Ironclad Warship)인 워리어(Warror)와 라 글루와(La Gloire)를 선보였다. 그러나 철갑선을 동원한 본격적인 해전을 벌인 당사자는 영국과 프랑스가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의 북군과 남군이었다. 1862년 3월, 북군의 모니터함(USS Monitor)과 남군의 버지니아함(CSS Virginia) 사이에서 벌어진 햄튼 수로 전투(Battle of Hampton Roads)가 최초의 철갑선 사이의 해전이다.
철갑선의 등장 이후, 함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철갑을 관통하기 위해서 함포의 구경과 위력이 지속적으로 배가됐으며, 위력적인 주포는 배의 측면이 아닌 회전포탑의 형태로 중앙에 장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현대 전함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인 1906년 영국에서 드디어 HMS 드레드노트(Dreadnought)가 진수됐다.
드레드노트는 해군의 역사에서 혁명과도 같은 전함이다. 측면에 배치된 함포를 전부 없애고 오직 (최대 12인치까지 되는) 대구경의 함포만을 회전포탑에 장착한 최초의 전함이 드레드노트이다. 당연히 방어력을 위해서 두꺼운 강철 강갑으로 선체를 보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드레드노트를 우리가 아는 드레드노트로 만든 1등공신은 증기터빈이라는 혁신적인 동력체계였다. 1884년 영국의 찰스 파슨스(Charles Parsons)가 발명한 증기터빈은 (왕복운동 대신) 회전운동을 하기 때문에, 회전수를 높여서 비교적 작은 크기의 증기터빈에서도 큰 출력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증기터빈을 현대적 발전설비로 발전시킨 덕분에, 7.5kW에 불과했던 파슨스의 첫 증기터빈의 출력은 1911년에는 50MW까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와 같은 증기터빈의 획기적인 성능 향상이 있었기 때문에, 약 17MW(~23,000 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는 2대의 증기터빈이 드레드노트에 처음 장착됐으며, 20,000톤이 넘는 육중한 덩치의 드레드노트가 21노트라는 속도와 더불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동성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함의 증기터빈은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과 일본의 항공모함들은 최고속도 30~35노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최고속도만큼은 현대 전함과 이미 동급에 올라섰다.
드레드노트는 새로운 화력체계와 더불어 새로운 동력체계가 어우러진 완전히 새로운 전함이었으며, 그때까지 건조/운용되던 모든 전함들의 군사적 가치를 완전히 증발시킨 해군력 역사의 진정한 게임체인저(Game Changer)였다. 이후 건조된 모든 전함들은 드레드노트의 개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사거리와 정확성 및 위력에서 더 강력해진 함포를 장착하고 더 빠르게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드레드노트급 또는 초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하기 위한 각국의 해군 군비경쟁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됐다.

-또 다른 대량살상무기의 등장

제1차 세계대전의 전선이 교착됨에 따라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또 다른 대량살상무기가 등장한다. 화학전이다. 화학전은 인류의 전쟁사에서 항상 있어 왔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의 대량살상수단으로서 화학전을 고안하고 개발해서 실전에 적용한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다. 암모니아 합성으로 인류를 식량난이라는 종말의 공포에서 구한 바로 그 프리츠 하버가 화학무기라는 새로운 종말의 무기를 우리에게 선사했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최고, 최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프리츠 하버의 화학전은 그때까지 있었던 화학전보다 훨씬 발전된 과학 지식을 가지고 수행된 현대적 화학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도 화학탄을 사용하는 것은 1899년 맺어진 헤이그 조약 때문에 이미 국제법상 위법이었다. 그러나 1899년의 헤이그 협약은 화학탄의 사용만을 금지한 것이기 때문에, 프리츠 하버는 화학탄이 아닌 실린더의 독가스를 틀어서 확산하는 방법으로 국제법을 우회하면서 화학전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거기에 더해서 그는 독가스 살포의 살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과학적 꼼수까지 고안했다. 상대방이 독가스의 살포를 쉽게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낮은 농도의 독가스를 밤새 확산시켜서 적군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방법이었다. 즉 치사량의 독가스를 한 번에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노출시켜서 상대방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전멸시키는 작전이다.
하버는 그런 화학전 전술을 고안한 데에 그치지 않고, 제1차 세계대전 최초의 화학전 현장이었던 제2차 이프르 전투(2ndYpresBattle,1915년 4월 22일 ~ 5월 25일)에서 직접 전선에 나가 화학전을 현장 지휘하기까지 했다. 이프르 전투에서 사용한 독가스는 염소가스였지만, 하버는 이후 현대적 화학무기의 효시가 되는 머스타드 가스(Mustard Gas)라는 수포작용제도 개발해서 제1차 세계대전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머스타드 가스는 사람을 즉사시키기 보다는 고통에 괴로워하다가 서서히 죽게 만들거나 살아나더라도 실명을 포함한 영구불구를 만들어서 평생 고통 받으면서 살아가게 만드는 아주 잔혹한 무기이다. 그래서 지금도 가난한 자들의 대량살상무기로서 더러운 전쟁의 양민학살도구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하버의 화학전 이후 독일, 프랑스, 영국 할 것 없이 전쟁의 모든 당사자들이 전선에 화학탄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양 진영의 참호지대 사이에 퍼붓는 기관총탄과 포탄과 화학탄이 만들어낸 광란의 살육 현장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참모습이었으며, 링컨이 시작한 총력전의 양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잔혹해지는 과정의 한가운데였다.
 
-진정한 게임체인저, 화력의 끝판 왕 핵폭탄

핵분열 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착수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연구개발사업이자 무기개발사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미국 정부는 유럽과 태평양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에서도 거의 무제한의 인적 물적 자원동원을 감수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 전역에서 전력을 끌어오고, 핵분열물질 농축시설을 건설하고, 수만 명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일하는 연구소들을 설립했다.
미국 재무부 금고의 열쇠를 받아놓고 수행한 프로젝트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핵분열물질인 우라늄-235(U235)를 농축하기 위해서 1만3천 톤 상당의 은으로 만든 전자석이 들어간 핵분열물질의 농축시설을 지었다. 그런데 충분한 농축 효율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가스확산과 열확산을 이용한 새로운 농축시설을 추가로 건설했다. 초대형 농축공장을 새로 지어야만 했던 실패를 경험하고서도, 맨해튼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착수 3년 만에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폭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요즈음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규모의 사업이자 속도전이었다. 전쟁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얼마나 가속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거의 3년이 되는 시점인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가젯(Gadget)이라고 부르던 최초의 핵분열 폭발 장치가 성공적으로 핵폭발을 일으켰다. (이 폭발시험을 트리니티(Trinity) 폭발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8월 6일과 8월 9일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포신형 우라늄 핵폭탄인 리틀보이(Little Boy)와 내폭형 플루토늄 핵폭탄인 팻맨(Fat Man)이 투하됐고, 연합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다. 등장 자체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던 핵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식하겠다는 당초의 목표를 충족하는 데는 성공했다.
핵폭탄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경우 핵폭탄을 처음 만드는 것이라서 어려웠지, 지금은 핵분열물질만 있다면 원자탄을 만드는 기술의 난이도는 아주 높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핵폭탄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물리적 현상들의 많은 부분이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상적 예측성이 떨어지는 액체 추진 고추력 로켓엔진이나 (항공기용을 포함하는) 가스터빈의 개발이 과학기술적으로는 훨씬 더 어렵다. 일단 핵분열물질만 손에 넣으면, 핵폭탄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 오히려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요소의 하나라 하겠다.

-한국군과 한국방위산업(K-방산)의 미래와 과제

120여 전, 우금치 마루에서 일본군 1개 중대 병력 앞에서 추풍낙엽처럽 스러져간 갑오농민군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일본군은 근대식 보병무장을 갖춘 데다 더해 최초의 대량살상무기라고 할 수 있는 개틀링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앞에 군복 대신 솜옷을 입고 죽창과 칼, 낫, 화승총을 들고 달려들던 수천, 수만의 농민군은 그야말로 전투가 아니라 살육을 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6.25 전쟁 때는 미군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사용하던 키보다 큰 M1소총으로 무장했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를 향해 한국산 무기를 수출하고 있고,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다.

한국형 전차, K-2 전차 흑표
K-2 전차는 좋은 전차인가? 당연히 매우 좋은 전차이다.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전차 랭킹사이트의 평가와 무관하게 (물론 랭킹도 상당히 좋지만), K-2 전차는 부여된 임무에 최적화된 전차임에 틀림이 없다. 한반도 유사시 선봉에 서기 위해서 탄생한 전차가 K-2 흑표 전차이며, 당연히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전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임무 수행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먼저 한반도의 험난한 산악 지형에서 충분한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능동 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n-arm Suspension Unit, ISU) 및 동적궤도장력조절기를 장착하고 있어서 세계 정상급의 험지 주행능력과 4~5개의 주요 하천을 신속하게 돌파할 수 있도록 도섭(徒涉) 능력에 공을 들인 것에서 K-2 전차의 태생적 설계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양압 장치와 중성자 차폐 라이너가 있어서 어쩌면 발생할 수 있는 화생방 전장에서 생존성까지 확보했으며, 포탄의 자동장전장치 및 소프트킬 능동방어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하드킬 APS는 개발이 됐지만 채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래의 네트워크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전차간 데이터가 공유될 수 있는 C4I 시스템도 장착하고 있다. 누구는 레오파르트 계열 전차가 어떻다, M1A2 계열 전차가 어떻다 하지만, 한반도의 전장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전차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바로 K-2 흑표 전차이다.

KF-21 보라매
KF-21의 가장 큰 미덕은 중간진입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영악한 개발전략이다. 덕분에 KF-21은 기본적인 성능요구조건이 좋은 균형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공중전술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개발개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투기의 전통적 가치와 미래적 가치를 잘 아우르고 있다. 일단 F-16 보다 우수한 미들급의 전술기로서 만족할만한 성능요구조건을 가지고 있다. KF-21은 비교적 뛰어난 기체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국의 AIM120 AMRAAM 공대공미사일보다 성능이 우수하다는) MBDA의 Meteor 시계외공대공미사일(BVRAAM, Beyond Visual Range Air-to-Air Missile)로 무장했기 때문에 시계 내 또는 시계 외 공중전에서도 F-16과 최소한 호각세 이상을 예측할 수 있다.
KF-21은 현명하게 진화적 개발전략을 채택했다. KF-21은 F-15와 F-22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기체형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F-22와 유사한 기체형상이 스텔스적 관점에서는 최적화된 형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KF-21의 기체 형상은 스텔스적 특성과 전술적 특성의 적절한 타협으로 볼 수 있다. 2026년까지 개발이 완료될 Block-I은 공대공 임무 중심으로, 그리고 2028년에 개발이 완료될 Block-II는 공대지 임무까지 통합할 예정이다. Block-II까지 완성된다면, 아마 4.5세대와 5세대 사이에 있는 5세대-마이너스급 전투기의 입지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해군의 과제와 핵잠수함
대한민국 해군 앞에는 지금 3개의 중대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 첫째는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KAMD)의 한 축을 맡아야 하고, 둘째는 팽창주의적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일본과 중국에 맞서서 우리의 앞바다를 지키기 위한 반접근 지역거부(Anti-Access Area Denial, A2AD) 역량을 조속히 구축해야 하며, 셋째는 경제적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대양에 진출할 수 있는 청해해군(Blue Water Navy)을 건설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 임무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논할 수는 있지만, 10~20년 안에 이들 임무를 수행할 역량의 상당 부분을 완성하는 것이 해군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해군의 핵심 전투력 자산이 KDDX 차기 구축함, 경항모, (원자력 추진일 가능성이 있는) 차세대 잠수함 그리고 합동화력함 등이다. 이들 프로젝트에 대한 개발이 한참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감시의 눈을 부릅뜰 필요는 있지만 왈가왈부하는 것은 프로젝트의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해군이 원자력 추진 핵잠수함을 건조해야만 한다면, KSS-III의 배치3으로 개발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KSS-I, II, III와 완전히 별개인 KSS-N이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개발하는 것이 순리이다. 기존의 재래식 KSS 프로그램은 2차전지 기술의 발전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향으로 KSS-III, KSS-IV로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다. 한편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언제 배치될지 모르는 북의 (핵탄두를 장착했을) SLBM 발사 잠수함을 꼼짝 못하게 만들 진정한 헌터용 공격잠수함으로 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원자력 추진 공격잠수함이 있을 때, 우리의 항모 전단이 (일본과 중국의 견제를 뚫고) 마음껏 대양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해군의 확실한 잠수함 전략이 갖춰져야만, 핵추진 잠수함이 개발되는 도중에 기술적 또는 정치적 문제로 프로그램이 지연되거나 중지되는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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