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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교리/강론
· ISBN : 9788997672158
· 쪽수 : 430쪽
· 출판일 : 2013-11-1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대림 시기
대림 제 1 주일
대림 제 2 주일
대림 제 3 주일
대림 제 4 주일
성탄 시기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예수 성탄 대축일 (새벽 미사)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 가정 축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탄 후 제2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주님 세례 축일
사순 시기
사순 제 1 주일
사순 제 2 주일
사순 제 3 주일
사순 제 4 주일
사순 제 5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성 삼 일
성 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예수 부활 대축일 (부활 성야)
예수 부활 대축일
부활 시기
부활 제 2 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부활 제 3 주일
부활 제 4 주일
부활 제 5 주일
부활 제 6 주일
주님 승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저녁 미사)
성령 강림 대축일
연중 시기의 주님 대축일
삼위 일체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예수 성심 대축일
연중 시기
연중 제 2 주일
연중 제 3 주일
연중 제 4 주일
연중 제 5 주일
연중 제 6 주일
연중 제 7 주일
연중 제 8 주일
연중 제 9 주일
연중 제10 주일
연중 제11 주일
연중 제12 주일
연중 제13 주일
연중 제14 주일
연중 제15 주일
연중 제16 주일
연중 제17 주일
연중 제18 주일
연중 제19 주일
연중 제20 주일
연중 제21 주일
연중 제22 주일
연중 제23 주일
연중 제24 주일
연중 제25 주일
연중 제26 주일
연중 제27 주일
연중 제28 주일
연중 제29 주일
연중 제30 주일
연중 제31 주일
연중 제32 주일
연중 제33 주일
연중 제34 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인 고유 축일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전야 저녁 미사)(6월 23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야 저녁 미사)(6월 28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 저녁 미사)(8월 14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위령의 날 (첫미사)(11월 2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책속에서
대림 제1주일
이사 2,1-5; 로마 13,11-14ㄱ; 마태 24,37-44
대림 첫 주일 전례는 제1독서에서 ‘세월이 흐른 뒤’를 바라보는 이사야 예언자의 환시를 제시한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향한 일치와 평화와 열정에 대한 예언자의 환시는 우리가 삶의 어려움은 물론 재난과 전쟁, 인간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끔찍한 사건을 거쳐 가는 동안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사야는 “세월이 흐른 뒤에???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며,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드는” 것을 본다. 모든 민족이 한데 몰려드는 그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모여 든다. 그들은 말한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참으로 놀라운 환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정의에 굶주리고 목말라하지만 정의는 주님의 길에 있다. 이 땅의 악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이기주의로 선택한 길은 세상에 일치와 평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반드시 갈등과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사람들이 하느님에게서 선한 길을 찾는다면 모든 사람이 일치를 이룰 것이다.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회개하면 전쟁 대신에 평화와 행복과 번영을 갈망한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현세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평화의 열망과 함께 갈등도 있다. 바로 이런 갈등이 행복을 쫓아내고 비애와 불행과 함께 슬픔을 가져온다.
하느님의 참된 성전은 예수님께서 예고하신대로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우리는 특히 대림 시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가 우리 모두 용기 있는 열의로 평화를 추구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대림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오심을 기꺼이 맞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은 화해자로 또한 평화의 증여자로 오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시기 위해 오신다. 거기에는 구원과 평화와 정의와 사랑이라는 대단히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약속이나 다름없는 이사야의 이 환시를 깊이 묵상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함을 경계하게 하시며 당신 재림을 준비하라고 요구하신다.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시대의 징표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진실로 깨달아 실행하려는 태도도 전혀 갖추지 않은 채 오로지 먹고 마시고 결혼했다고 하시며 말씀하신다. “그들은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권고하신다. “깨어 있어라!” 우리는 잠들어서는 안 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눈길을 올바른 방향에 집중해야 하고 우리의 참된 선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선익도 추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잠든다는 것’은 우리의 심판관이 오시어 우리에게 정의로운 엄한 심판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본능과 악한 성향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을 지향하는 것이다. 진정 깨어있다는 것은 육신의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세상의 일치와 사랑과 평화를 가져오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깨어 있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의 재림에 놀랄 필요가 없다. 그분은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그분을 지나쳐 가시게 하기 때문에 그분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
사람의 아들은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오실 것이다. 그때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놀라움과 후회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그분을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우리에게 유사한 가르침을 준다. 그는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육체적 잠이 아니라 영적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기에 언제나 절박한 일이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교회는 우리에게 영적 잠에서 깨어날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자신을 물질적인 염려에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하며 더 높은 것을 염려해야 한다. 물론 물질적인 것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주된 삶의 방향, 곧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그분 은총으로 그분 사업을 성취시키는 일에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
바오로는 단호히 말한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라고 했는데, 이와 비슷하게 바오로는 우리에게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한다. 이 말은 주 예수님으로 갈아입고, 육신과 그 욕망을 따르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다음에 바오로 사도는 밤과 낮의 비유를 사용한다. 어둠의 행실들은 은밀히 이루어지며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 없는 것으로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와 같은 온갖 형태의 지나친 행위들이다. 이 모든 행실에는 어떤 풍요로움도 없으며 나쁜 해악만을 가져온다.
반면에 우리가 빛의 갑옷을 입고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항상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향해 가도록 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입는다는 것은 그분의 은총으로 이 좋은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좋은 것들을 겸손하게 해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그것들을 행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헛되이 지나쳐 단죄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은총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일치시켜야 한다.
바오로의 말은 계속된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다.” 대림 시기는 예수님을 열렬히 기다리는 시기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활기찬 열망으로 그분을 기다리겠지만 우리 자신만을 사랑한다면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황폐해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삶이 될 것이다.
주님께 당신 재림을 열렬히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도하자. 주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오신다. 그분은 매 순간 당신 은총을 가지고 오시지만, 어떤 때는 더 분명하게 당신을 드러내시어 아름답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것들을 우리에게 권하신다. 주님이 오실 때 기꺼이 맞아들이자. 우리가 열린 마음과 사랑으로 주님을 영접하면 큰 기쁨을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