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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신앙생활
· ISBN : 9788997672189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13-12-16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6
소중함이 머무르는 곳
소중함 13
개인과 일상성 17
꽃 한 송이와 나비 한 마리 23
우주는 춤추는 신 27
서로에게 빛나는 선물 31
향기로운 사람 36
일상에서 피는 봄의 생명 42
카르페 디엠 46
차별은 슬프고 차이는 아름답다
착함과 배려 55
같은 둥지 다른 얼굴 58
평화로운 지혜 63
물처럼 살다 68
내려놓다 74
모시다 79
숨쉬는 것의 미학 84
모른다 91
한 발 뒤로 물러나라
잡으면 잡힌다 101
마음 가는 대로 가라 105
양심은 하느님의 거울 112
멈추고 돌아보라 117
뛰어넘어라 123
신나게 도는 돈 129
세상은 내 얼굴 136
하늘에 살다 142
거룩한 꽃 한 송이 147
콩 세 개 심는 지혜 154
사랑 없이 못 간다 159
모나지 않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눈부신 보석 167
진심 172
행복한 목련꽃 177
행복하다 183
숨겨진 즐거움 187
준비된 사람 194
인생은 목적이다 200
여행을 즐기자 206
나무 그 진실한 아름다움 211
사랑이 사랑을 그린다
사랑에 빚진 자 219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224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기쁨 230
메마른 영혼을 회복시키는 법 235
사랑의 정원 243
찬란한 나의 길 249
울타리가 되어 주는 사람들 255
꽃 같은 내 어린 시절 261
다시 시작하다 266
나의 길을 가다 271
저자소개
책속에서
프롤로그
열고 여미고 묵히면서
세상에 내가 쓴 책을 낸다니 더럭 겁이 난다. 책을 낼 생각이었다면 이 글을 다시 생각해 볼 걸 그랬다. 왠지 맨살을 보이는 듯 부끄럽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란스럽다. ‘글 길’이 꽉 막힌다. 정말 곤혹스럽고 난감하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않았다.
나에게 예전과 다른 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은 구체적 사목 대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대상이 없다. 어떤 눈에 보이는 일이 있었고 지지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와 함께하던 일과 사람들이 없다. 할 일이 없어지고 놀 사람이 없어지니 혼자 놀아야 했고 혼자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혼자 노는 일로 제일 좋은 것은 책 읽기와 글 쓰기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놀이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밖으로 흐르던 관심과 정열을 내부로 바꾸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정말 곤혹스럽고 난감했다.
주어진 현실이니 수용하고 받아들였다. 살지 않을 방법이 없으니 살아야 했다. 그렇게 사는 유사한 인간들이 있는지 보기로 마음을 먹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글 쓰는 세상에는 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엄연함이 나를 또 놀라게 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서도 글 쓰는 일이 하나의 수행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들여다보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를 보고 나를 생각하고 나와 관련된 사람과 일들을 되새김질 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덧없고 부질없다. 사람이 하는 짓들이 하늘 아래 무엇이 유익한가 물어보면 두말없이 불쌍하고 허망하다. 그 가벼운 인생이 어느 날 꽃 한 송이로 거룩하게 피어난 것이다.
거룩한 삶으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나라고 생각하니 쑥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갑자기 축제의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늘 그런 마음으로 숨 쉬고 말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봄에 시작한 글쓰기가 여름을 지나 가을인가 했더니 추워지는 겨울이 왔다. 느닷없이 주어진 시간들을 읽고 쓰고 하면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어서 고맙고 감사하다.
글쓰기가 나 사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현실인데 어찌 하겠는가? 이런 천둥벌거숭이의 투박한 이야기가 정말이지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동안 내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 현수를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앞선다. 그는 농부다. 우리 세대의 농부이자 그가 곧 농촌이요 우리 농업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카카오톡으로 산에서 나무를 지고 오다가 지게를 작대기로 바쳐놓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게으른 놈이 짐 많이 진단다. 쪼개만 지고 다녀라”
바로 답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들어서 짐을 많이 줄였다.”
현장을 보지 않고도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바로 문자를 보냈다.
“오메 잘했다.”
곧바로 답이 왔다.
“고맙다. 친구야”
지금 나의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나는 지금 도서관에서 놀고 있다.”
이렇게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짐을 바쳐놓고 쉬고 있는 중에 쓴 글들이 바로 이 책에 모아 놓은 글들이다.
그동안 사목이라는 이름으로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니 편안하고 시원하다. 산위에서 바라보니 산 아래에서 살았던 내 삶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 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함께 지냈던 이들이 모두가 꽃과 바람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 별처럼 박혀 세상을 빛내고 있으리라.
인생의 축제인 세상에서 인연의 꽃들이 활짝 피어 서로를 아름답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와 만상에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를 꽃 한 송이로 불러주니 나도 꽃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바람이었고 새였다. 내가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새가 되게 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한다.
2013년. 초겨울
본문
소중함
어느 나라에 가난한 농부와 부자가 전쟁을 피해 같이 피난을 가게 되었다. 농부는 쌀 한 가마니를, 부자는 금 한 주머니를 가지고 피난길을 떠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쌀가마니를 지고 피난길에 나선 농부를 보고 부자는 “몇 푼도 안 되는 쌀가마니를 지고 어떻게 피난 갈 생각을 하느냐?”며 비웃었지만 농부는 묵묵히 무거운 짐을 지니고 힘겹게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 깊은 산속에서 며칠을 지내게 되자 농부는 자신이 지고 온 쌀을 아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함께 온 부자는 금붙이 외에 먹을 것을 변변히 준비하지 않아 금세 굶주리게 되었다. 부자는 거만한 목소리로 농부에게 말을 걸었다.
“이 금붙이 하나 줄 테니 지고 있는 쌀을 좀 나누어 다오.” 금붙이는 쌀 다섯 가마니 값은 되었기에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했지만 농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농부가 단번에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한 부자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으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부자는 허기가 져 걸음을 떼기도 어려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기운이 없어 등에 짊어진 금붙이는 돌덩어리처럼 무겁기만 해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쳐 쓰러진 부자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농부를 불렀다.
“제발, 제발 부탁이오. 물 한 모금만 떠다 주시오. 그리고 당신이 먹다 남은 밥 한 숟가락만 주시오.”
농부는 그제서야 물도 떠다 주고 식량도 나누어 주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살아남았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가치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우리 생각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돈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으신 하느님을 등지고 자기가 만들어 낸 것만을 사랑할 때 일만 가지 악이 생겨난다.
물론 돈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느님을 등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도 하느님을 잘 섬겨 존경받는 이들도 있지만 돈과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성경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했듯이 돈은 그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큰 부자도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재산을 사랑하지 않고 다만 자신을 통해 온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그 입에는 숨조차 없으니 그것들을 만드는 자들도 신뢰하는 자들도 모두 그것들과 같다네.”(시편 135,16-18)
이 구절을 거꾸로 읽으면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제가 만든 우상을 의지하는 자들, 그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라는 말이 된다.
우상은 그럴듯하게 보이고 때로는 위대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허깨비일 뿐이다. 그래서 우상에 의지하는 자는 바람결에 흩날릴 풀잎에 몸을 기댄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우상이 책 목록처럼 목록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목록을 보고 우상이 될 만한 것들을 미리미리 피해 헛되게 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상은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어느 순간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 우상으로 얼굴을 바꿀 수도 있다.
우상은 목록이 없다. 다만 우리 마음과 생각에 따라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우상은 갖가지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상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이란 하느님의 가치관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