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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97870431
· 쪽수 : 216쪽
책 소개
목차
떡
만무방
봄.봄
아내
동백꽃
생의 반려
따라지
땡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떡
여기에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역시 떡이 나오는데 본즉 이것은 팥떡이 아니라 밤 대추가 여기저기 삐져나온 백설기. 한번 덥썩 물어 떼이면 입안에서 그대로 스르르 녹을 듯싶다. 너 이것도 싫으냐 하니까 옥이는 좋다는 뜻으로 얼른 손을 내밀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먹었을까. 그 공기만한 떡 덩어리를. 물론 용감히 먹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빨리 먹었다. 중간에는 천천히 먹었다. 그러다 이내 다 먹지 못하고 반쯤 남겨서는 작은아씨에게 도로 내주고 모로 고개를 돌렸다. 옥이가 그 배에다 백설기를 먹은 것도 기적이려니와 또한 먹다 내놓는 이것이 기적이라 안 할 수 없다. 하기는 가슴속에서 떡이 목구멍으로 바짝 치뻗치는 바람에 못 먹기도 한 거지만. 여기다가 더 넣을 수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입 안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다음 꿀 바른 주왁 두 개는 어떻게 먹었을까. 상식으로는 좀 판단키 어려운 일이다.
아내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든지 뭐 이쁘다고는 안 할 것이다. 바로 계집에 환장된 놈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나도 일상 같이 지내긴 하나 아무리 잘 고쳐 보아도 요만치도 이쁘지 않다. 허지만 계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할 황소 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쳐놓으면 고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 죽을밖에 별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 써 일 못 하여, 이걸 누가 열쳤다고 그냥 먹여줄 테냐. 하니까 내 말이 이왕 젊어서 되는 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아두자 하는 것이지.
그리고 에미가 낯짝 글렀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으렷다. 아 바로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겠지만 즈 에미 년은 쥐었다 논 개떡 같아도 좀 똑똑하고 낄끗이 생겼느냐. 비록 먹고도 대구 또 달라고 불아귀처럼 덤비기는 할망정. 참 이놈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버지보담도 할아버지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년이 나에게 되지 않은 큰 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생의 반려
그에게는 형님이 한 분 있었다. 주색에 잠기어 밤낮을 모르는 난봉꾼이었다. 그리고 자기 일신을 위하여 열 사람의 가족이 희생을 하라는 무지한 폭군이었다.
그는 아무 교양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다. 다만 그의 앞에는 수십만의 철량이 있어 그 폭행을 조장할 뿐이었다.
부모가 물려주는 거만의 유산은 무릇 불행을 낳기 쉽다. 더욱이 이십 오륙의 아무 의지도 신념도 없는 청년에 있어서는 더 이를 말 없을 것이다. 그도 이 예에 벗어지지 않았다.
그는 한 달씩 두 달씩 곡기도 끊고 주야로 술을 마시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기생들을 훌 몰아들여 가족 앞에 드러내놓고 음탕한 장난을 하였다. 한 집으로 첩을 두셋씩 끌어들여 풍파도 일으키었다. 물론 그럴 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치가를 하고 어쩌고하기가 성가신 까닭이었다. 그는 오로지 술을 마시고 계집과 같이 누웠다.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귀찮았다. 몸을 조금 움직이려고도 않았을뿐더러 머리는 쓰지 않았다. 하물며 가정사에 이르러서야, 가족이 앓아 드러누워도 약 한 첩 없고 아이들이 신이 없다 하여도 신 한 켤레 순순히 사주지 않는 그런 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