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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97980161
· 쪽수 : 344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태양이 창문을 뚫고 수냐 머리 위 스카프에 부딪혔다. 그리고 천 분의 1초 동안 나는 천사, 후광, 예수님 그리고 케이크를 덮은 하얀색 크림처럼 순수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문득 아빠 얼굴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더니 다른 모든 생각을 쫓아내 버렸다. “모슬렘은 전염병처럼 이 나라를 전염시키고 있어.”라고 말할 때의 아빠의 얇은 입술과 가는눈이 떠올랐다. 솔직히 그건 사실이 아니다. 모슬렘은 전염병을 일으키지도, 수두처럼 붉은 반점을 생기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모슬렘은 고열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9월 9일에 희생된 모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 쏠리는 것 같았다. 런던에서도 나는 9월 9일을 싫어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다들 1년 내내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바로 그날만 내 친구가 되려고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분명 로즈가 그리울 거야.” 또는 “로즈 보고 싶겠구나.”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는 슬픈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거짓으로 꾸밀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폭탄 테러로 희생된 어떤 남자는 원래 런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남자가 타기로 되어 있던, 유스턴 역에서 맨체스터 피카디리로 가는 기차가 신호 고장으로 운행이 취소되었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대신, 그 남자는 코벤트 가든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그 남자는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를 샀고,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죽었다. 만약 신호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아니 그 남자가 샌드위치를 사지 않았다면, 아니 샌드위치를 조금 늦게 또는 조금 일찍 먹었다면, 그 남자는 폭탄이 터진 바로 그 순간에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넣지 않았을 거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고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만약 우리가 트래펄가 광장에 가지 않았다면, 아니 만약 비둘기들이 없었다면, 아니 만약 로즈 누나가 장난꾸러기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소녀였다면, 그렇다면 로즈 누나는 여전히 살아 있을 거고, 우리 가족은 행복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