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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98441067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5-02-05
책 소개
목차
머리말을 대신하여
사랑은 우리를 훈련시킨다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
2센티미터의 진보
그리움의 재료
이곳에서 저곳으로
고정관념에 대하여
안테나를 올리는 시인들
꽃 지는 누이
원미동, 그 이후
달에서의 30억년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예술가’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내게 감동을 준 두 명의 예술가들에 관해 말하려고 여태까지 긴 서두를 펼치고 있었던 셈이었다. 이 두 명의 예술가들이 만드는 작품은 어떤 것이고, 또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말해줄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미리 말해 두는 바이지만, 이 두 사람의 예술가들을 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우리 동네에 오면 된다. 그들은 이 동네의 한가운데에서 매일같이 성실하고 끈질기게 자신의 진지한 ‘예술’에 몰두해 있으니까.
제아무리 이야기 가닥이 많고 기둥 줄거리가 탄탄한 소설이라 해도 그것의 시작은 미미한 징후, 한 순간의 분위기에서부터 일구어진다. 현실의 그 미미한 징후와 찰나의 느낌은 마음속으로 들어와 오래도록 기척을 내며 꿈틀거린다.
나는 가만히 기다린다. 마음속에 터를 잡은 그것들이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반죽이 되고 이스트 넣은 밀가루처럼 부풀어 오르기를, 그리하여 나를 충동질하기를.
여기 모인 이야기들은 말하자면 미미한 징후에서 하나의 소설로 가는 중간에 놓여 있다. 나는 이 몇 개의 삽화들에서 이 시대의 가슴 저린 풍경을 읽어냈다. 삶과 욕망과 역사, 그리고 사람의 그림자들을.
서울로 이사 와서 한동안은 대화마다 “원미동에서는……”이라고 서두를 붙이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었다. 아니, 꼭 소리가 되어 나오는 말을 할 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인식하는 순간마다 내 마음속의 자동 녹음테이프는 저절로 돌아갔다. 원미동에서는 안 그랬었는데…….
어떻게 보면 나는 원미동에 살 때보다 더 원미동에 집착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곳에서 품었던 사랑, 그곳에서 간직했던 소망, 그곳에서 가꾸었던 꿈들이 훨씬 더 아름답고 간절했다고 내게는 여겨졌다. 나는 무심한 호미 자루에 뽑혀져 나온 마른 풀 한 포기처럼 외롭고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