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8630287
· 쪽수 : 391쪽
· 출판일 : 2013-08-30
책 소개
목차
Prologue - 5p
01. 난 네가 아프다 - 15p
02. 조우 - 35p
03. 돌이키고 싶은, 돌이킬 수 없는 - 70p
04. 너의 가벼운 웃음소리 - 94p
05. 당신과 함께라면 - 114p
06. 바늘구멍처럼 조그맣던 불안이 - 173p
07. 달이 푸르다 - 211p
08. 이제 그만... - 257p
09. 그대 내 마음에 들어오면 - 270p
10. 우리가 피워내는 꽃들 - 293p
11. 나에게 너는 - 319p
12. 이토록 아름다운 저녁 - 347p
Epilogue - 368p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는 그녀의 메마른 입술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따라 그려본다. 그러다 그것은 어느새 가벼운 입맞춤으로 거기서 다시 그녀의 입술 속으로 스며들어 하얀 치아를 훑고 말랑한 입술을 빨아들이는 농도 짙은 키스로 변해갔다.
“으음…….”
그녀의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소리가 새어나온다. 순간 화들짝 놀라 멈춰버린 그의 입술에 그녀의 치아가 박힌다. 아프진 않다. 외려 가느다란 전기뱀장어가 온몸을 유영하는 것처럼 짜릿하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세차게 빨아 당겼다. 그녀가 다시 낮은 비음을 흘렸다. 고통에 찬 신음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일 때 낼 법한 달콤하고도 유혹적인 바로 그 소리. 그의 내부 어디선가 얇은 얼음이 와사삭 부서져 내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단단히 감싸며 그녀의 입안으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팔이 그의 목에 감겨왔다. 다디단 혀가 뱀처럼 엉켜왔다. 머릿속이 하얗다. 이것이 꿈속의 다른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저 본능적인 신체의 반응인지 따져볼 여유도 없다.
‘뉴질랜드의 마지막 밤에 너와 난 적장을 유혹해 머리를 잘라낸 유디트라는 여인에 관해 이야기했지. 너는 알고 있을까? 언젠가부터 너는 내게 유디트 그 이상이 되었다는 걸. 나는 네가 나를 유혹해주기만 해도 네게 내 목이라도 바칠 것 같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은 내려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손안에 흐뭇하게 차오르는 양감을 지그시 주무르다가 앙증맞게 일어선 정점을 옷과 함께 빨아들였다.
“하아!”
상체를 활처럼 젖히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달아오른 숨을 토해내던 그녀가 갑자기 반짝 눈을 떴다. 그는 그녀를 안아 든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이성은 아예 침묵을 선택했다. 여전히 그의 목에 양팔을 두르고 있는 그녀는 아직 몽롱함이 다 가시지 않은 눈빛을 하고 있다.
“꿈인가요……?”
나른하게 잠겨 있는 목소리마저 감미롭다. 이대로 다시 그녀를 탐하고 싶은 욕망을 애써 내리누르며 그는 고개를 들고 앞으로 쏟아져 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아니야.”
그의 대답에 그녀의 두 눈이 몇 번인가 깜박거리더니 이내 시리게 얼어붙는다. 그의 목을 관능적으로 휘감고 있던 두 팔도 성급히 거두어진다.
그는 터질 듯한 무언가를 가까스로 내리눌렀다. 시야의 한끝에 잡히는 아이가 없었더라면 결국 어찌 되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꿈이 아니라면 당신이 어째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죠? 내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꿈이라면 나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녀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나의 열정적인 꿈속에 다름 아닌 당신이 나왔으리라 착각이라도 했나 보죠? 그렇다 해도 이건 범죄행위예요.”
그녀는 무슨 말로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의 냉소에 찬 목소리조차 그를 안심시켰다.
“이제 좀 살만한가 보지?”
“여울이가 불렀나요?”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질문은 무시한 채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아이와 머리맡에 뒹구는 체온계, 흩어져 있는 수건 등을 보며 되물었다.
“그 애는 나를 좋아하거든. 제 엄마와는 다르게.”
“미안해요.”
그녀는 약간 맥이 풀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엇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면 네 아이가 나를 이곳까지 불러낸 것이?
그는 질문 하나를 생략하는 대신 입가에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사과해주길 바래?”
“필요 없어요.”
말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지금 이 말의 온도는 몇 도쯤으로 측정될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차라리 더 거리감을 자아내는 이 미묘한 온도.
“먹을 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것도 필요 없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 봐요.”
“…….”
“그리고…… 어쨌든 고마웠어요.”
“굳이 ‘어쨌든’ 따위 붙이지 않아도 오해하지 않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또…… 다음에 아이가 같은 전화를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찾아오지 말아요. 여울이가 있는 한 당신이 염려하는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지.”
그는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든 그녀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한 순간 이리될 수도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벗어둔 양복을 걸치고 그 위에 다시 코트를 걸친 뒤 천천히,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그의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곧이어 그것이 완전히 멀어져가는 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시연은 무의식중에 멈추고 있던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방 안에는 여전히 그의 향기가 떠돌고 있었다. 갑자기 참고 있던 구토처럼 욕정이 목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발딱 일어선 젖꼭지가 참을 수 없이 간질거렸다. 배꼽 밑이 심하게 욱신거렸다.
그녀는 욕실로 달려갔다. 차가운 타일에 기대서서 눈을 감은 채 제 가슴을 저 스스로 쓰다듬고 움켜쥐며 작은 유실을 비틀고 어루만졌다. 속옷 밑 다리 사이로 제 손이 파고들었다. 얇은 꽃잎 살 속에 숨은 예민한 부위를 아래서부터 위로 가만히 훑자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손길은 점점 더 강하고 대담해졌다. 마침내 손가락이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가에도 뜨거운 것이 차올라 조금씩 흘러내렸다. 탈진하듯 바닥에 주저앉았을 땐 정말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렇게 꺽꺽거리며 몇 번의 실속 없는 행위를 반복하고 나자 그 뒤엔 느닷없이 사라졌던 허기가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