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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8853266
· 쪽수 : 576쪽
· 출판일 : 2016-04-15
책 소개
목차
1. 망향의 겨울
2. 야마모토라는 꽃
3. 조선 소와 일본 소녀
4. 이국의 향기
5. 암울한 시대의 사랑
6. 해당화는 피고 지고
7. 현해탄을 건너온 사랑
8. 붉은 세월 속에서
9. 남행
10. 이어도는 없다
11. 울지 않는 소
12. 사랑은 현해탄을 건너가고
13. 그리움이라는 병
14. 사람한테 미안해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보거라. 저것이 조선의 산이고 강이고 들의 모습이다. 어디, 마음껏들 한번 그려보거라. 애정을 가지고 혼을 불어넣어 조선을 그려보거라.”
임용련이 야외 데생을 시키면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조선이라는 말이 찡한 감동을 가지고 이중섭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날 이후 임용련은 이중섭의 우상이었다. 한글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항거하여 한글 자모를 가지고 콤포지션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졸업 앨범에서 일본에서 한반도 쪽으로 날아오는 불덩이를 그려넣어 일제의 침략을 상징해 보기도 했지만, 자신이 앞으로 그려야할 조선의 혼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했다.
조선의 산, 조선의 강, 조선의 나무, 조선의 소를 그리는데도 조선의 혼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일본 유학은 이중섭에게 조선의 혼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걸 권해 온 것도 임용련이었다.
한묵이 쓰게 웃었다. 그즈음 이중섭은 찾아오는 사람마다 미안하다면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구상한테는 너무 신세를 져서 미안하고, 김병기한테는 처제를 아내로 삼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춘자한테는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조카 영진이한테는 학비를 대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약을 먹을 때는 다른 사람이 먹어야 할 약을 자신이 먹는 것 같아 미안하고, 주사를 맞을 때는 다른 사람이 맞아야 할 주사를 자신이 맞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는 의사에게도 미안했고, 간호사한테도 미안했다. 자신을 치료하고 간호하느라 다른 사람을 치료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간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미안한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오지 마, 묵이 형. 나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미안해서 못 견디겠어.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얘기했어.”
그런 말을 하는 이중섭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노란 호박덩이였다. 얼굴이며 눈이 치자물을 들여놓은 것처럼 노란색이었다.
“이젠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는 모양이군. 친구가 친구한테 문병을 오는 것이 다 미안한 것을 보니까.”
“친구는 친구고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야. 앞으로는 절대로 오지 마.”
화가 난 투로 그렇게 쏘아붙인 이중섭이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