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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의 공주 2

주신의 공주 2

이도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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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의 공주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주신의 공주 2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14973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17-11-13

책 소개

이도화 장편소설. 천상을 다스리는 천왕 환웅의 딸 서요. 환웅의 뜻에 따라 조선의 신녀로 보내진 그녀는 왕검 자민의 계략에 갖은 고초를 겪는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환웅은 서요를 지킬 신하 셋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데…….

목차

7장 의지가 만들어낸 운명
8장 아사달로 향하다
9장 가슴 떨리는 만남
10장 간절한 손끝, 따뜻한 햇빛
11장 천제를 올리다
12장 어둠을 몰아내다
종장 영원한 행복
외전 그들의 소원
작가 후기

저자소개

이도화 (지은이)    정보 더보기
글을 쓰며 제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습니다. 뜻 깊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간작] 사자애련, 마인드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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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조선(早先) 개국 315년.
천왕신전에 어둑발이 내려오며 깊은 밤이 되었다. 고요한 공간에서, 단 앞에 모인 신관들은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녀 탄생의 순간이었다.
“조선을 도와주소서!”
합창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어서 제사장 노릇을 할 신녀가 태어나 조선을 살피고 신권을 공고히 해야 했다. 조선에는 신녀가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관행이 있었다. 그때부터 신녀의 능력이 발휘되어 하늘의 지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녀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신전에서 생활하며 조선의 삶과 제사를 올리는 법 등에 대해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소리를 높여 한 번 더 합창하자 제를 올리던 그들의 머리 위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오색영롱한 다섯 개의 별들이 달 아래 일렬로 늘어섰다. 별들은 차례대로 깜빡이며 찬란하게 빛났다.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던 진귀한 현상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경탄했다. 그들이 느끼기에 이번 신녀는 전대의 신녀들과는 달리 뭔가 특별한 것 같았다.
그사이, 빛무리를 머금은 황금색 학이 신전 뜰의 소나무에 내려앉았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시, 신녀님을 경배하라!”
대신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단 위에는 우아한 빛에 휩싸인 아이의 형체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동시에 제를 주관하던 그의 귀에 서요라는 이름이 아로새겨졌다. 조선을 구원할 신녀의 탄생이었다.
그런 영광도 잠시, 아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빛이 수그러들 때 즈음 불길한 발소리가 들렸다. 곧 단을 밝히던 촛불이 꺼지고 검은 복면을 쓴 사내들이 신전으로 침입했다. 잘 훈련된 무사들인 듯,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대형이었다.
‘설마…… 자민이?’
대신관은 왕검 자민을 떠올렸다. 철권통치를 꿈꾸는 그에게 신전은 분명 눈엣가시일 터였다. 자민은 오래전부터 제사장의 힘을 두려워한 전대 왕검의 영향을 받아 천왕신전을 천천히 압박해 오고 있었다.
또한,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전을 감히 엄습할 수 있는 자는 이 나라의 왕, 자민밖에 없었다.
대신관은 이 습격의 배후가 왕이라는 판단을 하자마자 단에서 아이를 내려 재빨리 몸을 숨겼다. 자객의 목표는 당연히 신녀 서요일 터였다.
‘이 나라 조선을 위해서…… 절대로 이 아이를 잃을 순 없어…….’
아이는 천왕 환웅이 내려준 신녀였다. 지금껏 단에 나타난 신녀가 그래왔던 것처럼, 대신관은 서요가 이 땅을 풍요롭게 하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여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를 찾아내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병사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신전은 무릇 신을 모시는 곳으로, 무력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신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병사들에게 유린당했다. 신을 모시던 신관들이 자객들을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대신관은 숨을 죽이고 아이를 깊이 그러안았다.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설령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만은 지켜내야 했다.
사방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는 지옥도 잠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대신관은 신관들이 모두 유명을 달리했을 게 불을 보듯 뻔해서 이를 악물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어찌 저리 무자비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속으로 탄식하며 비참함을 곱씹을 때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봐, 봤습니다. 대신관이 신녀를 데리고 도망치는 걸 봤습니다!”
젊은 신관 한 명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그 어떤 자인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어 대신관은 한편으론 이해했지만 그래도 배신감이 들었다.
자객들은 젊은 신관이 가리킨 방향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뗐다. 마치 몰이사냥을 하는 들개처럼, 최대한 발톱을 감추고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들은 숨겨뒀던 발톱을 드러냈다.
챙!
검을 빼든 자객들이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젊은 신관이 가리킨 곳은 텅 비어 있을 뿐, 대신관과 신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감히 거짓말을 한 것이냐! 그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자객의 일격에 젊은 신관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대신관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다. 그 틈을 타서 신전을 빠져나온 대신관은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신전을 빠져나와 산비탈을 내달리는 와중에도 죄책감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대신관은 품에 안은 신녀, 서요를 보며 속삭였다.
“신녀님. 부디 저 젊은 목숨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잊지 마십시오.”
그는 무사히 도망쳤지만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전국 곳곳에 대신관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방이 붙었다. 왕검 자민의 명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대신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산속 깊이, 더 깊이 숨어들었다. 대신관은 언젠가 신녀 서요가 하늘의 지혜를 얻게 될 때까지 참고 인내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햐, 이 누님은 사람이야, 옷걸이야?”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우렁찬 목소리가 시장 바닥을 지배했다. 그 성량은 복작거리는 저잣거리에서 단연 돋보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옷 장수는 지나가던 여자 한 명을 붙잡고 그녀의 몸에 직접 지은 옷을 가져다 댔다.
“가만있어 봐. 캬! 내 낭자가 어디 있나 했더니만. 바로 여기 있었네.”
“어머!”
사내치곤 곱상하게 생긴 옷 장수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자 여자는 금세 얼굴을 붉혔다. 여자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옷장수는 그녀의 차림과 어울리는 옷을 이것저것 대보며 칭찬을 이어갔다. 입에 침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이것 봐, 허리가 어찌 이리 얇은 건지. 이 하늘하늘한 저고리를 입으면 더 돋보일 것 같은데?”
“호호호. 정말요? 그럼 어디 한 번 걸쳐나 볼까?”
“옳지! 내 다음에 그 옷 입고 오면, 원하는 거 하나 공짜로 줄게.”
옷 장수가 은밀한 얘기를 하듯 손님의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장사란 언제나 손님과의 특별한 약속이 중요한 법이었다.
여자 손님이 양손 가득 무거운 옷 짐을 가지고 사라지자, 옷 장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굳혔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자니 온몸이 다 흐늘거릴 지경이었다.
“한점이 저놈 저거, 어수룩해 봬도 장사의 귀재여, 귀재.”
옆 좌판대 옷 장수들이 입을 삐죽였다.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게 말여. 아, 반말은 무슨? 마을 초동한테도 높임말 꼬박꼬박 쓰는 놈이…… 암튼 담번에 저 아낙이 옷 입고 오면 진짜 옷걸이가 될 거 아녀?”
“아, 한두 번이여? 말해 뭐혀. 손님이 호구가 되선 호객을 하니 말 다했지 뭐.”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옷 장수 한점이 머쓱한 얼굴로 쉿! 하며 손가락에 입을 가져다 댔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겁니다.”
한점이 배시시 웃었다.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기까지 하니, 장사할 때완 다르게 순박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때마침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내리쬐자 한점의 흰 피부가 더욱 매끄럽게 빛났다. 흉을 보던 장사치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께 우리도 좀 도와달란 말여.”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겄어?”
옆 점포 주인들이 친근하게 한점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유난히 작고 보드라운 한점의 손이 드러났다. 한점은 난감한 얼굴로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지더니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난데없는 이변에 한점을 잡고 있던 남자들의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 그 틈을 타서 한점은 재빨리 그들의 손을 뿌리쳤고, 당황한 남자는 일부러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왜 이런댜? 누가 보면 겁탈이라도 하는 줄 알겄네!”
평소 곤란한 부탁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던 순한 한점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손을 뿌리치자, 그들은 자신이 못된 짓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놀라서. 이, 이따가 저녁 장사하러 나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수고하십시오!”
한점은 옷가지를 마구잡이로 보자기에 싸서 시장을 빠져나갔다. 허둥지둥 사라지는 한점의 모습에 장사치들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한점은 가끔 저렇게 이상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급히 초가집에 돌아온 한점은 제 머리를 아프게 쥐어박았다.
“왜 그랬지? 뭐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넘겼어야 했는데.”
아담한 체구와 가녀린 몸이야 왜소하다 치고 넘어가면 그뿐이지만, 작고 매끄러운 손은 다른 이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한점은 그 부분이 항상 신경 쓰였다.
깊은 한숨을 내쉰 한점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그리고 길쌈하는 무당 어머니의 어깨에 개구쟁이처럼 매달렸다. 한점은 어머니에게서 나는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가 참으로 좋았다.
“오늘은 웬일로 집에 일찍 왔구나, 서요야.”
무당은 다정스레 한점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그건 오직 집 안에서만 허락된 일이었다. 한점은 얼굴에 붙이고 있던 커다란 점을 떼고 평소의 서요로 돌아왔다.
“배고파서요. 어머니, 밥 좀 주세요.”
서요가 싱그럽게 웃었다. 어머니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서요는 시장에서 있었던 일은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래. 준비하마.”
무당이 답하며 서요의 밥을 챙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서요는 조촐한 밥상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식사하기 전 하늘을 향한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은 대신관과 무당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서요는 집에만 있어 답답할 무당에게 바깥세상 얘기를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한참을 조잘거리던 서요는 잊고 있었던 약속이 문득 떠올랐다.
“아, 맞다! 오늘 갖다 준다고 했지.”
이레 전, 화루의 기녀 홍화에게 잇꽃이 그려진 저고리와 치마를 가져다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내 정신 좀 봐.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래도 참…… 직접 가지러 올 것이지. 매번 종처럼 부리기나 하고.”
서요는 입술을 삐죽이며 금세 투덜거렸지만 단골손님인 홍화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충 식사를 끝낸 서요는 보자기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으며 일어났다.
“한술 더 들지 않고?”
“급해서요, 어머니! 다녀올게요!”
서요는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을 나섰다.

용미촌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기루인 ‘화’.
서요는 그곳의 대문 앞에 섰지만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꽃처럼 아리따운 여인들의 분내가 풍기는 탓일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이젠 기루 일은 받지 말아야지…….”
서요는 다짐을 하며 대문을 가볍게 밀었다. 화려한 색감의 대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기루엔 얼큰하게 취한 사내들이 마당을 휘젓고 있었다. 필시 밤새 내리 마신 작자들임이 분명했다. 심지어 자신의 토사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서요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난잡한 상황 속에서도 기녀들의 몸짓은 나비처럼 사뿐사뿐 가벼웠다. 걸을 때마다 양쪽으로 볼기짝이 실룩였고, 고운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매혹적인 미소를 내비쳤다.
‘여인들이란 저런 모습인 건가?’
서요의 시선이 뭔가에 홀린 듯 기녀들을 좇았다. 사내들만 가득한 시장통이 그녀의 주된 생활 터전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서요는 은연중 기녀의 웃음소리를 따라 해보다가 낯부끄러워져서 괜스레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큼! 큼!”
그 한 번의 흉내로 온몸에 닭살이 돋고,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여자 흉내, 이제 와 내봤자 될 일도 아니었다. 돼서도 곤란했다.
“홍화님 어디 계십니까?”
서요는 지나가던 기녀를 붙잡고 홍화의 행방을 물었다. 기녀는 난감한 얼굴로 홍화가 들어간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진 마세요. 그 방 손님이 아주 유별나거든요.”
“예? 어쩌지……. 아! 그럼 대신 전해주시겠습니까?”
서요가 홍화의 옷가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기녀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아니요! 홍화님 성격 모르세요? 자기 물건에 남 손 닿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 앞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하곤 기녀는 줄행랑을 쳐 버렸다. 늘 이렇게 옷을 가지고 올 때면, 다른 기녀들의 옷은 잘 받아 전해주면서 유독 홍화의 것은 아무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홍화는, 마을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기녀였다.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 지성과 기예 또한 출중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바로 그 예민한 성격이지.”
서요가 숨을 크게 내쉬며 창호지 문 앞에 섰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릴없이 시간이 흘렀다. 저녁 장사를 시작하려면 지금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기라도 한 건지 홍화는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늘 웃는 상이던 서요도 지금만큼은 입술을 쌜쭉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홍화님, 홍화님!”
참다못한 서요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홍화 때문에 서요도 저녁 장사에 차질이 생겼으니 혹여나 그녀가 심통을 부려도 꿀릴 건 없었다.
“기다려!”
예상대로 방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어 뭔가 우당탕 쏟아지는 소리도 들렸다.
‘대체 뭐지? 뭔 작당이지?’
서요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홍화님?”
서요는 뜻밖의 소음에 의아함을 안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혹시 방 안에서 무슨 큰 사달이라도 난 것인가 싶어서였다.
그 순간, 서요는 난데없이 마른하늘에 벼락이 번쩍하는 것처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반쯤 풀어진 저고리,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서 있던 서요는 강렬한 남자의 눈빛에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는 재밌는 일을 방해받기라도 한 듯 매서운 눈빛으로 서요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름다웠다. 아니, 그런 표현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태생부터 고귀한 존재인 듯 남색 눈은 별처럼 빛났고, 그림 장인의 솜씨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뻗어 나간 얼굴선은 섬세했다. 거기다 살짝 올라간 입매는 여자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서요는 선인이라도 본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풍상을 겪어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촌사람과는 너무도 달랐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가슴팍은 매혹적인 얼굴과 달리 남성적인 매력을 부각시켰다.
이상하게 먹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서요는 한참 동안이나 그의 자태를 바라봤다. 아니, 넋을 놓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았다. 그런 서요의 정신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건, 홍화의 앙칼진 음성이었다.
“야!”
“헉!”
홍화의 고함에 서요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뭐야, 너.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아니나 다를까 홍화는 콧김까지 뿜으며 열을 올렸다. 서요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녀에게 옷가지가 든 보자기를 건넸다.
“저, 저도 급합니다. 얼른 돈 주십시오. 저도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서요는 오직 달걀처럼 매끄러운 홍화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남자 쪽을 쳐다보았다가는 또다시 넋을 놓을 게 뻔했기에 조심하는 것이었다.
“잠깐 이리 와봐.”
홍화는 옷을 받자마자 낯빛을 바꾸었다. 그녀는 고운 손으로 서요의 팔을 붙잡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영문을 몰라 두 눈을 깜박이던 서요는 홍화가 가녀린 손끝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자 완전히 당황했다.
“왜 이러십니까.”
서요가 기겁했다. 요염한 여체가 가까이 다가오며 서요를 구석으로 몰고 있었다.
“몰라서 물어? 한 번쯤은 이런 것도 좋잖아?”
“예?”
“스승님,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홍화가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는 마치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턱을 괴더니 본격적으로 그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서요는 황당함에 속이 부글부글했다. 물건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으려는 홍화의 작태가 불쾌했다. 홍화가 분 냄새 가득한 숨결을 내뿜었을 때, 서요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아우, 싫습니다.”
서요가 굳게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뭐라고?”
“당신 같은 여자는 취향이 아니란 말입니다!”
남장을 했다고 해서 같은 여자에게 이런 꼴을 당하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살기 위해 겉모습을 포기했을 뿐, 서요는 분명한 여인이었다.
서요와 홍화가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을 때, 그들에게 짓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나 같은 남자는 어때?”
서요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실로 당혹스러운 말이었다.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서요에게 다가왔다. 홍화는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남자는 헝클어진 옷차림을 수습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서요를 가리고 있는 홍화를 짐짝 치우듯 밀쳤다.
“스, 스승님. 뭐 하시는 거예요?”
홍화는 어이가 없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팔을 벽에 기대며 서요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른하고 유혹적인 눈빛이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부터 정신이 아득하던 서요는 가까스로 생각을 다잡고 물었다.
“누구십니까? 갑자기 왜 제게…….”
“나? 난 미르라고 하는데…… 그보다 물었잖아. 여자가 싫으면 남잔 어떠냐고.”
미르의 말에 서요는 필시 이건 자신을 놀리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남장을 해도 감춰지지 않는 곱상한 얼굴 탓에, 서요는 이미 수없이 많은 추파를 받아왔던 것이다.
“전 남잡니다! 제가 왜 같은 남자를 맘에 들어 하겠습니까?”
서요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았다. 그러나 허옇게 질린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요와 미르,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척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피하려 해도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서요는 당황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애써 시선을 피했다. 미르는 매혹적인 눈매를 의미심장하게 휘며 제 바지 주머니에서 한 움큼의 돈을 꺼냈다.
“그래? 그럼 뭐, 일단 옷값부터 치러야지?”
서요는 자신에게 돈을 쥔 손을 내미는 미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서요는 미르가 왜 홍화의 옷값을 치러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돈 받을 분은 홍화님인데…… 그리고 돈이 너무 많습니다.”
미르가 꺼낸 돈은 그녀가 한 달 내내 장사를 해도 쉽게 벌 수 없는 액수였다.
“내가 대신 내도록 하지. 그런데…….”
돈을 건네려던 미르는 서요를 놀리듯 손을 휙 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많은 돈을 그냥 주긴 그렇고…… 화루의 기녀들이 전부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한 명씩 옷을 지어주고 싶은데.”
“예?”
“이 돈이면 충분하겠지?”
미르의 말을 들은 서요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서요는, 홍화를 비롯한 다른 기녀들이 얼마나 마음에 들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느 귀족 가문의 아들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큰돈을 고작 이런 데에 낭비하는 것을 보면, 그 부모 속도 말이 아닐 것은 분명했다. 기녀들에게 전부 옷을 지어도 많은 돈이 남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 서요에게는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정말이십니까?”
서요는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큰돈을 정당하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미르는 내심 기뻐하는 그녀보다 더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대신 조건이 있어. 기간은 보름 뒤, 진시까지.”
“보름이요?”
“그리고 홍화처럼, 기명을 나타내는 꽃을 반드시 저고리와 치마에 그려 넣을 것.”
서요는 생각보다 날짜가 많이 촉박하자 입술을 오므리고 고민에 빠졌다. 옷은 쉽게 지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일일이 기녀들의 기명이 나타내는 꽃을 그려 넣는 것도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할 거야, 말 거야?”
미르가 고심하는 그녀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서요는 황홀할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미르를 올려다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너무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고생만 하는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또 마침 대신관의 기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잘됐네.”
미르는 씩 웃었다. 그의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미르는 그녀가 이렇게 쉽게 자신의 손에 떨어질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서요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열었다.
“열심히 해서 꼭 어머니께 씨암탉도, 예쁜 꽃신도 사드릴 겁니다!”
“뭐, 그래그래. 근데 말이야…….”
빨려 들어갈 듯 짙은 미르의 눈동자가 서슬 퍼런 기운을 냈다. 그 기운은 밤바다에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거칠게 굽이쳤다. 길고 잘 빠진 미르의 손가락이 어느새 서요의 이마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만약 기한 내에 못하면.”
미르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넌 내 것이야.”
잔인하고도 장난스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드리워졌다. 미르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화살처럼 서요의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내 것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서요는 뜬금없는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미르의 말에선 제대로 된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또한 그의 손가락이 닿았다가 떨어진 이마에는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맴돌았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을…….”
서요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재차 물었다.
“해내지 못하면, 넌 내 거라고. 쉽게 말하자면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단 거지. 남은 돈도 고스란히 돌려줘야 하고.”
“그러니까 지금 이건 남은 돈뿐만 아니라, 저를 걸고 내기하라는?”
“그래. 물론 내기할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요는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었고, 미르는 오만한 눈빛으로 순진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에 서요는 욱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마음을 다독이며 다짐하듯 말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해내지 못한다면, 당신의 일꾼이 되어도 좋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해봐야 아는 것이니 딱 기다리십시오!”
그의 내기를 받아들인 이상, 한시가 급했다. 서요는 제 할 말을 끝마치고 바로 방을 나섰다.
“절대 해내지 못할 텐데.”
작은 몸집의 서요가 호기롭게 방을 떠나자, 미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후일을 위해 그녀를 붙잡아두고자 했던 미르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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