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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28837883
· 쪽수 : 1366쪽
책 소개
목차
지만지 ≪삼대≫ 길라잡이
<삼대>
두 친구
홍경애
이튿날
하숙집
너만 괴로우냐
새 누이동생
추억
제일 충돌
제이 충돌
제삼 충돌
재회
봉욕
새 번민
순진? 야심
외투
밀담
편지
바깥애
김의경
가는 이
활동
답장
전보
집
입원
새 출발
상점
진창
취조
부모
고식
소문
용의자의 떼
젊은이 망령
피 묻은 입술
석방
<≪삼대≫ 깊이 읽기>
작품 이해의 첫걸음을 디딘다
염상섭은 이런 작가다
서사는 얽히고 등장인물은 갈등한다
동정자 조덕기를 설명한다
식민지 경성의 지도를 따라간다
식민지 조선 사회가 바뀐다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를 깊이 읽는다
주요 연구자들은 ≪삼대≫를 이렇게 연구했다
염상섭 연보
삽화가 석영 안석주
<해설과 판본 해설>
해설 : 거짓말하는 인간 혹은 삶의 진실
판본 해설 : 원본 비평을 통해 본 ≪삼대≫ 정본
주석 모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 꼴 하고… 친구를 잘 사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따위뿐이냐”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하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아범이 꾸리는 이불로 시선을 돌리며 놀란 듯이
“얘, 얘, 그게 뭬냐? 그게 무슨 이불이냐”
하며 가서 만져 보다가,
“당치 않은! 삼동주 이불이 다 뭐냐? 주속(紬屬)이란 내 낫세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可畏)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고 나가서 더럽혀 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쪽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
덕기는 조부의 꾸지람이 다른 데로 옮아간 틈을 타서 사랑으로 빠져나왔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꼴이 말이 아니라는 조부의 말눈치로 보아서 김병화가 온 것이 짐작되었다.
“야- 그러지 않아도 저녁 먹고 내가 가려 하였었네.”
덕기는 이틀 만에 만나는 이 친구를 더욱이 내일이면 작별하고 말 터이니만치 반갑게 맞았다.
“자네 같은 부르주아가 내게까지! 자네가 작별하러 다닐 데는 적어도 조선은행 총재나….”
병화는 부옇게 먼지가 앉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
른 채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비꼬는 수작을 하고서는 껄껄 웃어 버린다.
“만나는 족족 그렇게도 짓궂이 한마디씩 비꼬아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나? 그 성미를 좀 버리게.”
덕기는 병화에게 ‘부르주아, 부르주아’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먹을 게 있는 것은 다행하다고 속으로 생각지 않는 게 아니나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그런 소리가-더구나 비꼬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조 의관에게는 평생의 오입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을사조약 전 한참 통에 그때 돈 이만 냥, 지금 돈으로 사백 원을 내놓고 사십여 세에 옥관자를 붙인 것이니 차함은 차함이로되 오늘날의 조 의관이란 택호(宅號)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요, 또 하나는 육 년 전에 상배하고 수원집을 들여앉힌 것이니 돈은 여간 이만 냥으로 언론이 아니나 그 대신 귀순이를 낳고 또 여든다섯에 죽을 때는 열다섯 먹은 아들을 두게 될지 모르는 터인즉 그다지 비싼 오입이 아니나, 맨 나중으로 하는 오입이 이번 이 대동보소를 맡은 것인데 이번에는 좀 단단히 걸려서 이만 냥의 열 곱 이십만 냥이나 쓴 것이다. 그것도 어엿이 자기 집 자기 종파의 족보를 꾸민다면야 설혹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덮어놓고 오입이라고 하여서는 말이 아니요 인사가 아니겠지만 상훈이로 보아서는 대동보소라는 것부터 굳이 반대는 안 한다 하여도 그리 긴할 것이 없는데 게다가 ×× 씨의 족보에 한몫 비집고 끼려고-덤붙이가 되려고 사천 원 템이나 생돈을 내놓는다는 것은 적어도 오입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돈 주고 양반을 사!’-이것이 상훈이에게는 일종의 굴욕이었다.
“그것만 한숨에 켠다면 내 십 원 한 장만 ‘포티’를 주지.”
경애의 옆에 앉았는 손은 고뿌 술을 먹이지 못해서 애를 쓴다.
“십 원? 그럼 먹지!”
경애의 이런 목소리가 나자 그 상에서는 잠잠하여졌다. 상훈이가 힐끈 돌려다 보니 경애는 유리컵을 입에다 대고 턱을 차차차차 쳐들어 간다. 컵의 노랑 물은 반이나 기울어져 들어간다. 병화도 돌려다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상훈이에게 눈을 준다. 상훈이는 얼굴이 검어지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았다.
한 컵이 그뜩한 것은 아니나 한숨에 쭉 마시고 나니까 옹위를 하고 앉았던 일본 손들은,
“에라이 에라이(용하다, 용하다)!”
하고 또 한 번 환성이 일어났다. 경애는 얼굴이 발개지며 생글생글 웃기만 하고 맥이 빠진 듯이 앉았다가 안주로 담배를 붙인다.
“아이 상, 그런 화풀이 술을 먹으면 안 되어요.”
이편에서 병화가 일본말로 소리를 쳤으나 경애는 못 들은 척하고 한눈을 팔고 있다.
병화는 머쓱해서 다시 바로 앉으며 술잔을 들다가,
“어서 잡숫지요.”
하고 상훈이에게 말을 걸었으나 상훈이는 손에 든 담뱃불만 들여다보고 무슨 생각에 팔려 앉았다.
화풀이 술을 먹지 말라는 병화의 말이 상훈이에게는 또 무심코 들리지 않았다. 암만해도 자기네들의 내용을 알고 비꼬는 것 같았다. 그는 고사하고 대관절 경애가 왜 저렇게 술을 먹는 것인가? 나 때문에 그야말로 화풀이 술을 먹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돈 십 원에…’
하는 생각을 하니 상훈이는 앞이 캄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정말 화풀이 술이라면 고마웠다. 너는 너요 나는 나라는 길에 지나가는 사람같이 생각하면야 저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상훈이는 도리어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미심쩍은 것은 병화와 둘의 사이가 퍽 가까운 모양인 것이다.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은 자기 때문일 것이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