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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삼대

염상섭 (지은이)
  |  
지만지한국문학
2023-03-20
  |  
4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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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책 정보

· 제목 : 삼대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28837883
· 쪽수 : 1366쪽

책 소개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염상섭의 장편 소설. 전승주 교수가 그간의 각종 판본을 대조해 오류를 수정하고 정본을 확립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한 지식인 가정 삼대의 모순을 통해 묘사한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목차

지만지 ≪삼대≫ 길라잡이

<삼대>
두 친구
홍경애
이튿날
하숙집
너만 괴로우냐
새 누이동생
추억
제일 충돌
제이 충돌
제삼 충돌
재회
봉욕
새 번민
순진? 야심
외투
밀담
편지
바깥애
김의경
가는 이
활동
답장
전보

입원
새 출발
상점
진창
취조
부모
고식
소문
용의자의 떼
젊은이 망령
피 묻은 입술
석방

<≪삼대≫ 깊이 읽기>
작품 이해의 첫걸음을 디딘다
염상섭은 이런 작가다
서사는 얽히고 등장인물은 갈등한다
동정자 조덕기를 설명한다
식민지 경성의 지도를 따라간다
식민지 조선 사회가 바뀐다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를 깊이 읽는다
주요 연구자들은 ≪삼대≫를 이렇게 연구했다
염상섭 연보
삽화가 석영 안석주

<해설과 판본 해설>
해설 : 거짓말하는 인간 혹은 삶의 진실
판본 해설 : 원본 비평을 통해 본 ≪삼대≫ 정본

주석 모음

저자소개

염상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7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난다. 중인 계층의 서울 토박이라는 계층적 특징은 염상섭 문학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그의 소설에서는 풍부한 서울말의 흔적과 근대적 삶에 대한 예민한 현실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 관립 사범 학교를 중퇴하고 보성학교 중학 과정을 수학하던 중 1912년 염상섭은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도움으로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마치고 이후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예과 1학기를 다니다 자퇴한다. 그러던 중 조선에서 발생한 3·1 운동의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3월 19일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공원에서 단독적으로 독립 선언을 주재했으나 거사 직전 검거된다. 약 3개월간의 수감 후에는 요코하마의 복음(福音)인쇄소에 취직해 직공 노릇을 한다. 이 시기 경험한 양가적 경험, 즉 ‘근대 그 자체로서의 일본(문학)에 대한 의식’과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문제’는 이후 염상섭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구체화된다. 1920년 1월 ≪동아일보≫ 기자로 임명된 염상섭은 귀국해서 정경부 기자로서 활동하다 1920년 7월 사직한다. 염상섭은 ≪폐허≫ 창간호 동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1920년 하반기부터 1921년 봄까지 오산학교에서 교직 생활에 몸담기도 한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24년 ≪시대일보≫에 발표된 ≪만세전≫은 염상섭 문학의 전환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는 1926년에서 1928년 사이에 이뤄진 두 번째 일본 유학과 결부되어 보다 심화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다. 일본 유학 중에도 염상섭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혈통, 혼혈)를 밀도 있게 다룬다. 1928년 2월 귀국해서 ≪이심≫, ≪광분≫ 등을 연재하는 것에 이어 마침내 1931년 ≪삼대≫를 발표한다. 1920∼1930년대 발표된 염상섭의 작품들은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탐구하며, 식민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이를 깊이 있는 문제의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 성격을 나타낸다. ≪삼대≫ 이후 염상섭은 ≪백구≫, ≪모란꽃 필 때≫, ≪불연속선≫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지만, 이들 작품은 앞선 시기의 작품들에 비해 통속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30년대 중반 염상섭은 돌연 만주행을 선택한다. 진학문의 권유로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며, 1939년 만주 안동 대동항 건설 사업 선전에 종사한다. 이 기간 중 염상섭은 장편 소설 ≪개동≫을 집필하고, 안수길·박영준 등의 창작집 ≪싹트는 대지≫와 안수길의 창작집 ≪북원(北原)≫ 등의 서문을 쓴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창작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약 10여 년의 기간 동안 그는 일종의 ‘문학적 단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해방된 서울로 돌아온 염상섭은 <해방의 아들>을 발표하며 다시금 문학 활동을 이어 가고, ≪경향신문≫ 창간 당시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해방의 감격과 함께 곧이어 마주하게 된 ‘해방 이후’ 식민지의 모순, 미소 분할과 신탁 통치, 남북 분단 등의 혼란한 사회 현실의 모습을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삼팔선>, ≪효풍≫ 등의 작품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 낸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만 염상섭은 피난을 떠나지 못한다. 9·28 서울 수복, 10·25 중공군 개입, 1951년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 염상섭은 윤백남, 이무영 등과 함께 해군에 입대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부산과 서울 정훈감실에서 해군 소령으로 복무한 뒤, 1954년 5월 임시 중령으로 전역한다. 전쟁의 발발과 폐허가 된 전후(戰後)의 현실 등과 같은 역사적 비극 앞에서, 염상섭의 소설은 일상적 삶의 감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발표되는 일련의 후기 작품들은 주로 남녀 연애담에 기반한 결혼과 가족의 문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염상섭은 1963년 3월 14일 서울 성북동에서 타계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의 삶은 서울에서 마무리된다. ‘작가’ 염상섭이 남긴 빛나는 작품들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다. 염상섭은 평생에 걸쳐 작품 창작에 임하고,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가 보여 주는 치열한 소설 쓰기의 모습은 시대를 헤쳐 나가는 염상섭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물줄기로서 정립되어 가는 한국 문학사 그 자체의 역사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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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 꼴 하고… 친구를 잘 사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따위뿐이냐”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하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아범이 꾸리는 이불로 시선을 돌리며 놀란 듯이
“얘, 얘, 그게 뭬냐? 그게 무슨 이불이냐”
하며 가서 만져 보다가,
“당치 않은! 삼동주 이불이 다 뭐냐? 주속(紬屬)이란 내 낫세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可畏)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고 나가서 더럽혀 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쪽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
덕기는 조부의 꾸지람이 다른 데로 옮아간 틈을 타서 사랑으로 빠져나왔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꼴이 말이 아니라는 조부의 말눈치로 보아서 김병화가 온 것이 짐작되었다.
“야- 그러지 않아도 저녁 먹고 내가 가려 하였었네.”
덕기는 이틀 만에 만나는 이 친구를 더욱이 내일이면 작별하고 말 터이니만치 반갑게 맞았다.
“자네 같은 부르주아가 내게까지! 자네가 작별하러 다닐 데는 적어도 조선은행 총재나….”
병화는 부옇게 먼지가 앉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
른 채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비꼬는 수작을 하고서는 껄껄 웃어 버린다.
“만나는 족족 그렇게도 짓궂이 한마디씩 비꼬아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나? 그 성미를 좀 버리게.”
덕기는 병화에게 ‘부르주아, 부르주아’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먹을 게 있는 것은 다행하다고 속으로 생각지 않는 게 아니나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그런 소리가-더구나 비꼬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조 의관에게는 평생의 오입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을사조약 전 한참 통에 그때 돈 이만 냥, 지금 돈으로 사백 원을 내놓고 사십여 세에 옥관자를 붙인 것이니 차함은 차함이로되 오늘날의 조 의관이란 택호(宅號)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요, 또 하나는 육 년 전에 상배하고 수원집을 들여앉힌 것이니 돈은 여간 이만 냥으로 언론이 아니나 그 대신 귀순이를 낳고 또 여든다섯에 죽을 때는 열다섯 먹은 아들을 두게 될지 모르는 터인즉 그다지 비싼 오입이 아니나, 맨 나중으로 하는 오입이 이번 이 대동보소를 맡은 것인데 이번에는 좀 단단히 걸려서 이만 냥의 열 곱 이십만 냥이나 쓴 것이다. 그것도 어엿이 자기 집 자기 종파의 족보를 꾸민다면야 설혹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덮어놓고 오입이라고 하여서는 말이 아니요 인사가 아니겠지만 상훈이로 보아서는 대동보소라는 것부터 굳이 반대는 안 한다 하여도 그리 긴할 것이 없는데 게다가 ×× 씨의 족보에 한몫 비집고 끼려고-덤붙이가 되려고 사천 원 템이나 생돈을 내놓는다는 것은 적어도 오입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돈 주고 양반을 사!’-이것이 상훈이에게는 일종의 굴욕이었다.


“그것만 한숨에 켠다면 내 십 원 한 장만 ‘포티’를 주지.”
경애의 옆에 앉았는 손은 고뿌 술을 먹이지 못해서 애를 쓴다.
“십 원? 그럼 먹지!”
경애의 이런 목소리가 나자 그 상에서는 잠잠하여졌다. 상훈이가 힐끈 돌려다 보니 경애는 유리컵을 입에다 대고 턱을 차차차차 쳐들어 간다. 컵의 노랑 물은 반이나 기울어져 들어간다. 병화도 돌려다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상훈이에게 눈을 준다. 상훈이는 얼굴이 검어지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았다.
한 컵이 그뜩한 것은 아니나 한숨에 쭉 마시고 나니까 옹위를 하고 앉았던 일본 손들은,
“에라이 에라이(용하다, 용하다)!”
하고 또 한 번 환성이 일어났다. 경애는 얼굴이 발개지며 생글생글 웃기만 하고 맥이 빠진 듯이 앉았다가 안주로 담배를 붙인다.
“아이 상, 그런 화풀이 술을 먹으면 안 되어요.”
이편에서 병화가 일본말로 소리를 쳤으나 경애는 못 들은 척하고 한눈을 팔고 있다.
병화는 머쓱해서 다시 바로 앉으며 술잔을 들다가,
“어서 잡숫지요.”
하고 상훈이에게 말을 걸었으나 상훈이는 손에 든 담뱃불만 들여다보고 무슨 생각에 팔려 앉았다.
화풀이 술을 먹지 말라는 병화의 말이 상훈이에게는 또 무심코 들리지 않았다. 암만해도 자기네들의 내용을 알고 비꼬는 것 같았다. 그는 고사하고 대관절 경애가 왜 저렇게 술을 먹는 것인가? 나 때문에 그야말로 화풀이 술을 먹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돈 십 원에…’
하는 생각을 하니 상훈이는 앞이 캄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정말 화풀이 술이라면 고마웠다. 너는 너요 나는 나라는 길에 지나가는 사람같이 생각하면야 저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상훈이는 도리어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미심쩍은 것은 병화와 둘의 사이가 퍽 가까운 모양인 것이다.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은 자기 때문일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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