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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29597267
· 쪽수 : 426쪽
· 출판일 : 2016-01-26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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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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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06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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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클럽 앞은 여전히 문전성시라 줄을 지은 사람들 앞에 차를 세웠다. 키를 받으러 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밖으로 나서는데 입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업종의 특성상 이런 일이야 종종 있어왔으니 큰 신경 쓰지 않고 입구로 걸어갔다. 문을 열기 직전에야 뒤늦게 그들을 발견한 가드 몇이 우르르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분명히 말했죠? 10분도 안 걸린다고!”
정문 한쪽에서 옥신각신 목소리를 높이던 여자가 사장이라는 말에 뒤돌아보았다. 체크 셔츠에 허름하고 낡은 점퍼가 아무리 봐도 클럽에 온 손님은 아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단아하고 여성스러웠지만 다시 뜯어봐도 이 클럽에 꼭 들어가야 할 만한 사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저, 사장님. 별일은 아닌데 돌아가라고 해도 저렇게 버텨서.”
“무슨 일인데?”
“안에 누구를 찾으러 왔답니다.”
“누구?”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는데.”
“여기 직원?”
“그게 잘…….”
가드가 얼버무리며 강재에게서 차 키를 건네받았다. 뒤따라 내린 경원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강재의 옆에 섰다.
“이봐, 아가씨.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입구에서 아무리 버텨도 꿈쩍도 않던 사람들이 사장이라는 소리 한 마디에 저리 굽실대는 것을 보며 은서는 다시 씁쓸함을 삼켰다. 세상물정 거기서 거긴지 모르고 산 것도 아닌데 사람에 따라 저렇게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구나, 잠시 차가운 입김을 내뿜던 그녀가 사장이라는 남자에게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여기 사장님이시죠? 사람 찾으러 왔어요. 제 동생인데 여기 취직했대요. 소란 피우거나 그런 거 아니니 한 번만 들여보내줘요.”
부탁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당당하고 또박또박한 말투에 경원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녀가 사장으로 착각하는 인물이 강재라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앞에서 저렇게 기죽지 않는 인물도 드물다. 강재가 어찌 나오나 싶어 즐거이 바라보며 슬며시 여자를 거들었다.
“사장님, 한번 들여보내주시죠. 저렇게 딱하게 구는데.”
난데없는 경원의 발언에 강재가 홱 그를 노려봤다. 뚫어보듯 사나운 친구의 기세에 움찔했지만 역시 재미있는 광경은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김경원, 너.”
“두 분 싸움은 나중에 하시구요. 일단 제 사정이 급해요.”
강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은서가 먼저 나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검은 슈트에 타고난 것이 분명한 고압적인 태도, 선을 긋는 듯 어두운 기운이 일렁이는 눈매까지. 과연 이런 데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잠시 찬탄이 일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겁을 먹을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왜?”
“……왜라니요. 말씀드렸잖아요. 소란 피우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내가 왜 그쪽을 안에 보내줘야 하는데?”
결코 작지 않은 키에도 한참이나 큰 장신의 그를 올려다보는 여자는 망설임이 없었다. 또렷하고 맑은 눈이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기같이 하얀 뺨에 붉은 기가 돌아 손을 내밀어 문질러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충동이라면, 그의 인생에 좀처럼 연이 없던 말이다.
“이런 데 오려면 그에 걸맞은 차림으로 왔어야지. 이렇게 모르는 사람 잡고 매달릴 게 아니라.”
“……걸맞은 차림?”
은서가 자조적인 웃음을 보이자 그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런 차림? 저렇게 헐벗고 들어오면 된다는 건가요? 이런 날씨에?”
하! 크게 코웃음을 치던 은서가 줄을 선 여자들을 가리키며 점퍼를 벗자 가드 몇이 돌아보았다. 허름한 점퍼 아래로 헐렁한 스웨터와 셔츠는 여전히 적당한 차림이 되지 못했다.
“당신네들이 사람 구분하는 기준이 어찌 되는지는 몰라도, 사정 한번 듣지 않고 사람부터 내쫓을 생각만 한다면.”
스웨터를 올려 벗은 그녀가 정전기에 슬쩍 눈을 찌푸리더니 이내 체크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나 역시 이딴 데는 돈 받고도 오고픈 마음 없어요.”
한겨울에 셔츠까지 벗어버리자 검은 캐미솔 사이로 하얀 살결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무슨 일인가 쳐다보던 남자 몇이 휘파람을 불고 몇몇은 고개까지 내밀며 속닥거렸다. 하지만 볼륨 있는 가슴선이나 여성스러운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눈 달린 남자라면 안 보는 것도 말이 안 됐다. 경원과 강재의 눈치를 보며 뒤에 서 있던 가드들이 뒤늦게 나서 은서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강재가 단호히 고개를 저어 그들을 물렸다.
“이 정도도 부족해요?”
강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경원이 먼저 나서 입구의 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가보라는 듯.
몸을 돌려 옷가지와 가방을 챙긴 은서가 차가운 입김을 삼키며 걸음을 뗐다. 그러다 우뚝 그 자리에 멈춰 기어이 강재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여자들 벗겨서 얼마를 버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웃을 날만 있을지 한번 두고 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