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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0032870
· 쪽수 : 600쪽
· 출판일 : 2018-10-18
책 소개
목차
1
2
3
4
5
6
7
8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후, 펠릭스와 글로리아는 간단히 정원을 산책했다. 말이 정원이지 말을 타고도 한참을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글로리아는 펠릭스를 따라가는 내내 발바닥이 4등분되는 통증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펠릭스와 마주 앉아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보단 발바닥이 쪼개지는 통증이 낫기 때문에 걷는 중이었다.
약혼녀 후보인 영애를 만나도 30분 안에 모든 만남을 끝내는 그답지 않게 벌써 두 시간째 그녀를 만나는 중이었다.
휘청.
“우웃.”
결국 우둘투둘한 돌을 밟아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마땅히 잡을 것도 없어서 이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치겠다 싶을 때였다. 어깨를 감싸 쥐는 힘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펠릭스가 그녀의 어깨를 거머쥐고 있었다. 시야에 그의 얼굴이 꽉 들어찰 정도로 가까웠다.
“감사합니다.”
글로리아는 인사를 하고는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공작님?”
그녀가 자그맣게 불렀으나,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펠릭스는 고요한 눈으로 글로리아를 바라보았다. 처음 정원에서 글로리아를 보았을 때 실망했다. 지나치게 꾸몄고, 향수 냄새는 정원의 은은한 향기마저 몰아낼 정도로 강했다.
자신이 잘못 본 거라 생각했다. 오늘 만남을 끝으로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능숙하게 꾸며진 화려함 뒤로 서투름이 보였다. 식사 예절이나 인사법은 완벽했지만, 눈빛 처리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도도한 척 야하게 유혹하려 굴던 이전의 눈빛과 달리, 한없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오히려 자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 또, 에단과 비슷했다.
펠릭스는 에단과 전혀 닮지 않은 새까만 글로리아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눈빛이 흔들릴지도.
그 생각을 하자마자, 글로리아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는 눈빛이었다.
입술을 앙다물겠지.
글로리아가 조용히 입안의 살을 깨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펠릭스의 눈이 부드럽게 접혔다. 눈앞의 여자가 에단과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건 안다. 알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에게 에단을 떠올리게만 해주면 된다.
“글로리아 영애.”
그의 부름에 그녀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가 이름을 직접 부른 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한두 번 불러본 말투가 아니었다.
“그쪽이 한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가 말을 놓은 것 또한.
“제안이라면……?”
그 제안을 알 리 없는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결혼만 해달라고 빌었던 그 제안 말이야.”
글로리아의 몸이 굳었다. 둘 사이에 그런 말이 오간 건 처음 알았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라고 고민했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펠릭스가 지나치게 가까이 서 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입김이 입술에 닿을 것 같았다. 그의 까만 눈은 온순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언제든 돌변해 자신을 삼킬 것 같았다.
펠릭스의 손끝이 글로리아의 이마를 덮은 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리고 영애가 쓸 수 있는 1년치 예산도 더 올려주도록 하지.”
“…….”
“설마, 이제 와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가 상냥하게 웃으며 낮게 물었다.
그러나 글로리아는 그 웃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상냥함으로 가장한 경고였다.
뱉은 말을 얼른 기억하라는 경고.
"에단 님!"
화려하진 않지만 고급스럽게 꾸민 복도를 달려오며 조슈아가 한 남자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