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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칼과 혀](/img_thumb2/9791130622781.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622781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19-07-15
책 소개
목차
1부 … 9
2부 … 183
에필로그 … 328
심사평 … 329
작가의 말 … 345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요리사로 운명이 정해졌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버지는 피가 임리한 통나무 도마 위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횃대에 올라선 수탉처럼 패기가 넘쳤다고 한다. 아기 엄마는 도마 옆에 쪼그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태반조차 완전히 쏟아내지 못한 채였다. 탯줄이 팽팽하게 엄마와 아기를 잇고 있었는데,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제 몸 길이의 세 배가 넘는 통나무 도마 위로 기어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19대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山田乙三).
이것이 나의 정식 직함과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형식으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나는 이 거대한 제국의 허울 좋은 주인이자 공포와 비명을 감춘 천수각의 성주, 그리고 매끼 맛깔나는 음식에 목말라하는 요리애호가이자 예술비평가다. 나는 시멘트 냄새 풍기는 사령부를 벗어나 거리의 이름난 음식점들을 순회하길 좋아한다. 만주가 질 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님에도 말이다. 이런 재미라도 없다면 나는 진즉 신병을 내세워 사령관 직함을 반납했을 것이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만주가 점점 좋아져요. 이곳 특유의 게으름과 거리에 넘치는 붉은 흙, 철로의 붉은 녹과 자동차에 치인 짐승들의 붉은 피, 만족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붉은 치파오까지, 나는 그 속에 내 청진의 푸른 숨을, 푸른 피를 흘려 넣고 싶답니다. 전사가 되고 싶은 오빠와는 다른 의미에서 나는 붉은 색을 좋아해요. 그것만큼 치열하게 생명이 느껴지는 색도 없으니까요. 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당장 오빠가 품고 다니는 그 작은 칼로 손목을 그어보아요. 누구의 소유일 수도 없는 오빠만의 뜨거운 생명, 그 뜨거운 살아 있음의 증거들이 투두둑 옷소매를 적시게 할 거예요. 거짓 황제가 경영하는 이 도시는 지금 바로 그 붉은 피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