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1571041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0-07-10
책 소개
목차
미미상美味傷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 시간쯤 지나자 묻혀 있던 존재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것은 해골이었다. 왜 이런 게 여기 있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물건은 무덤이나 과학 실험실에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내가 아는 한, 해골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 뒷골목 쓰레기 속에 묻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길이는 150센티미터쯤 되었는데 만약 실제 사람의 뼈라면 어린아이나 여자의 유해로 추측되었다. 라이터를 켜서 표면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퀭한 두 눈 구멍은 밖으로 나올 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허공만 쳐다보았다. 이가 정갈하게 배치된 턱은 손가락 하나가 드나들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꼭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한때는 저 둥근 구멍 속에 눈동자가 있어서 하늘을 쳐다보거나 나뭇가지의 존재를 느끼고 바람에 눈을 찡그렸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더운 물로 씻어내니 해골은 더욱더 하얗게 빛났다. 해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나는 혼자만이 온전히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광경 앞에서 다시 한 모금의 연기를 뿜어댔다. 이상한 비유지만 달이 떠난 자리에 해골이 남았다. 마치 임무 교대라도 하듯이 둘은 씩씩하게 자리를 바꾸었다. 떠나는 개체들 가운데 누구도 진심 어린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았다. 교미를 할 때는 제 흥에 겨워 사랑한다고 떠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바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인간은 그냥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라는 확신이 든다. 되는 대로 그날 기분에 따라 떠들어대는 것이다. 감정에 철학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나는 돌아섰다. 나의 해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슬프고도 기쁜 사실이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쁨, 상대는 비록 사람이 아닐지라도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해골은 말을 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퀭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다. 그의 묵언은 끝없이 나를 시험한다. 해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 방 침대에서. 누구도 이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나는 어떤 밤길을 걸어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