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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17101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0-10-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간병 살인
사라지지 않는 통증의 늪
죽어만 가던 뱀
외면
임종 체험
100병동에 입원
첫 콜을 받다
아내의 심부름
아내의 죽음
아내의 편지
버거운 비밀
병동 풍경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기
두 번째 이별
김 노인의 떠남
차마 죽지는 않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삶의 축소판 100병동
굴레
저물녘
소망의 기도
작가 후기
추천의 글 : 죽음에서 다시 삶을 배운다_ 조해진
이별하는 과정이 짐이 되지 않기를_ 조수경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시로 병원 응급실을 외쳐대는 아내에게 나는 조금만 더 참아보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무시무시한 통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아내는 툭하면 죽어버리겠다며 날선 협박을 했다. 평소의 아내는 사분사분하고 상냥한 성격이었다. 친구들에게 아내를 소개하면 정말 여성스럽다고 감탄을 연발하며 나를 얼마나 치켜세워주었던가. 그런 다소곳한 아내의 모습이 좋아서 나는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 아내와 더불어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한 마리의 사나운 짐승이 되어 밤낮없이 죽여달라고 자신을 살해해줄 것만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잠도 잘 수 없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고 표현할 수 없는 아내는 죽음만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 여기는 듯했다. 정작 아내는 스스로 죽을 형편이 되지도 못했다. 난간에 올라서려면 주먹이라도 꼭 쥘 힘이 있어야 하는데 아내는 작고 가벼운 물건 하나도 움켜쥘 힘이 없다. 주먹을 쥐는 순간 자신이 준 압력에 아내는 또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러야 했다. 나의 도움 없이는 죽음조차도 꿈꿀 수 없는 아내가 가엾기보다 자꾸 짐스럽게 여겨진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알콩달콩 살자던 사랑의 달콤한 약속은 아내의 질병 앞에서 힘없이 소멸해버렸다.
요즘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눈 딱 감고 죽고 싶다. 내 생활이라고는 누릴 수 없는 감옥 같은 집에서 조금의 차도도 없는 아내의 병수발을 들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음을 요청하는 아내 곁을 내가 죽어서 떠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톡톡 유리병을 두드리면 자신의 생존을 알리듯 생기 없는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던 어린 살모사가 생각났다. 녀석은 나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두었다가 이렇듯 하늘에서 나를 벌하고 있는가. 짐짓 차분한 음성으로 딸아이에게 답했다. 아빠 죽으면 네가 너무 서럽게 울 것 같아서 안 죽고 싶은걸~ 딸아이는 나를 향해 베시시 웃어주었다. 부녀 사이에 죽음이란 단어가 너무도 익숙해져버렸다. 우리는 프로그램의 순서대로 각자 조용한 방에 들어가 작은 초에 불을 켰다. 자신을 불태워 환한 빛을 남긴 양초는 고요하게 타들어 갔고 나는 언젠가 아내와 함께했던 캠프파이어가 떠올라 마음이 씁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