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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30817170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0-11-12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눈길
우문현답 / 장날 / 순흥 청다리 / 고기 먹어 / 위득이 / 대학을 갈쳈불라 / 꼬치영감 / 눈길
제2부 코스모스는 언제 피는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 빛바랜 미소 / 파란 손가락 / 코스모스는 언제 피는가 / 성지순례 / 장발 수호기 / 덕출이 / 낭만 선생전 / 건곡사 폐경 스님
제3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명랑 쾌활한 봄날 / 조껄떡전 / 더 바보 / 흰 장갑 / 농민 / 칼국시 /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요조숙녀
제4부 더할 나위 없이 보잘것없는
더할 나위 없이 보잘것없는 / 해봉약전 / 침묵의 소리 / 아무도 할배를 말릴 수 없다 / 장사의 기술 / 대장장이 성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부치지 못한 편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올해는 송이 좀 땄수?”
“가, 가방을 보면 몰라? 태어나서 올해 가장 큰돈을 벌었어. 내 크게 한잔 살게.”
빛바랜 콧수염 사이로 흰 이를 드러내며 형은 밝게 웃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큰돈과 형의 큰돈은 단위가 다르다. 몇십만 원도 형에게는 큰돈이다. 짐작건대 보통 사람들의 한 달 월급 정도 벌었으리라. 형은 돈이 없을 때는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 오직 돈이 있을 때만 돈이라는 단어를 쓴다.
젊어서 들어온 소백산에서 그의 청춘도 빛이 바래어 거의 할배가 되었다. 어느 날 무심히 텔레비전을 켜니 형이 화면에 나왔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리포터가 형의 집을 찾아 산중 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리포터가 송이를 따러 산에 오른 형을 따라 함께 산에 올랐다. 드론이 공중에서 아름다운 계곡을 조망한다. 장면이 바뀌어 산 중턱에 나란히 앉은 형과 리포터를 카메라가 잡는다. 나란히 앉아 쉬면서 리포터가 형에게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형이 대답했다.
“아, 아, 아무 생각이 없지 뭐.”
참으로 우문현답이다. (「우문현답」)
윤 초시의 담뱃대가 대길이 머리에 딱 소리를 내었다. 틀릴 때마다 담뱃대로 대길이 머리통을 골프 치듯 했다. 또 한 구절 가르치고 묻고 모르면 때리고를 반복했다. 대길이 머리에서 혹부리가 나려고 했다.
“됐니더, 고마하소. 논 갈게요.”
하는 수 없이 대길이는 논에 들어 쟁기를 잡았다. 윤 초시에 당한 것이 억울했다. 화가 나서 일을 하니 더 힘이 들었다. 오늘따라 수렁이 더 깊어 깊이 빠진 발을 빼내기 힘겨웠다. 거머리도 달라붙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소가 또 멈춰 섰다.
“이랴! 가자! 이누무 소!”
소가 움직이지 않았고 오줌만 솰솰 갈겼다. 오늘따라 소까지 대길이 마음을 몰라주었다. 소도 심술을 부렸다.
“대길아, 더 못 갈겠다. 이제부터 내가 쟁기 잡을 테니 니가 앞에서 끌어라!”
저도 나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인데 마냥 소에게 욕만 할 수 없었다. 대길이는 쟁기를 잡고 한참을 서 있더니 소에게 말했다.
“이랴! 이누무 소, 고마 대학을 갈쳈불라!”
‘갈쳈불라’는 ‘가르칠까 보다’의 변방 말이다. 소도 대길이가 『대학』 배우다가 당하는 걸 보았기에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나갔다. 중천의 해가 빙긋 웃고 있었다.
(「대학을 갈쳈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