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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18054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1-07-07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문턱에 서서
제1부
별들의 언덕
세컨드 라인
라 팔로마
제2부
시인의 강
하늘이 울어 땅도 춤추고
일어나 걸어가라
제3부
해어록(蟹語錄)
권하산문초(勸下山文草)
발문
이 세계 너머 다른 세계로, 소설가의 여정을 따라 걷기 - 오윤주
허구적 상상으로 복원해내는 시적 진실 - 복효근
작중인물 이언적과 나덕장에게 듣는 소설창작 강의 - 송준호
저자소개
책속에서
― 공공적 주체로 나를 세워나가지 못하는 주제에, 그런 제목으로 무슨 발표를 하고 어쩌구 한다는 게 우습지 않아? 현장원은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진성금이 현장원의 물잔을 다가주면서 말했다. 아직 주문을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 공공적 주체는 자연스럽게, 아니 저절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 일종의 전리품으로 얻게 되는 건지도 몰라요. 문정선처럼 시대를 포착하는 작업 그게 일종의 투쟁일 거고. 소설 쓰기 그건 설명 필요 없는 투쟁이야. 현장원은 작가 혹은 소설가라는 게 공적 존재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다. 진성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실이 그렇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군중의 소음 속에서 뚜렷이 울리는 목소리를 건져내어 빛 가운데 드러내는 일이 소설 쓰기였다. 소설적으로 공공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책무를 진다는 뜻이었다. 자신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라 팔로마」)
인간이 지구에게 바이러스라면, 인간의 언어 또한 바이러스? 언어로 된 시 역시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는 일. 언어의 바이러스인 시. 시에만 전염되는 바이러스는 따로 있는가? 있을 듯했다. 우선 떠오르는 게 관념이었다. 관념은 과장법의 외양을 하고 나타났다. 과장은 미화되어 사실을 감추었다. 미언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어색한 용어를 용인하기로 작정했다. 거리 두기를 허용하지 않는 시, 그것은 바이러스 감염원이었다. 그런 점에서 COVID-19는 그 나름의 미학을 수립하고 있었다. 고독해야 할 일이었다. 타라스 셰브첸코는 고독에 지질려 50을 넘기기 전에 생을 마감했다. 슬픈 일이었다. 체제가 사람을 죽인 셈이었다. 그 체제는 역병이었다. 역병은 생산을 차단했다. 타라스 셰브첸코는 열세 살 어떤 소녀의 키스를 받은 후 여자를 모르고 살았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는 여자마다 그를 전염병을 옮기는 벌레로 취급했다. 혼자 살아서, 그래서 죽었다. 혹시 어떤 갸륵한 여인이 있어 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었다면, 아마도 그는 더 오래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쓸 수 있었을 터였다. 정시호 시인에게 다가가 옆에서 지팡이 노릇을 해준다면, 그가 세계를 놀라게 할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었지만, 현실이었다. (「시인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