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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

주홍 글씨

너새니얼 호손 (지은이), 김수영 (옮긴이)
  |  
푸른사상
2023-04-30
  |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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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

책 정보

· 제목 : 주홍 글씨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30820286
· 쪽수 : 288쪽

책 소개

미국 문학 전통의 초석을 세운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청교도의 사상과 생활 태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주홍 글씨』는 엄격한 청교도 사회의 낡은 정신과 모순을 비판하고, 죄지은 자의 고독과 사랑을 처절하게 그려냈다.

목차

1. 감옥 문 / 2. 장터 / 3. 발견 / 4. 대면 / 5. 바느질하는 헤스터 / 6. 진주(眞珠) / 7. 지사 댁의 객실 / 8. 요동(妖童)과 목사 / 9. 의사(醫師) / 10. 의사와 환자 / 11. 가슴속 / 12. 목사의 철야고행(徹夜苦行) / 13. 헤스터의 다른 견해 / 14. 헤스터와 의사 / 15. 헤스터와 진주 / 16. 숲속의 오솔길 / 17. 목사와 그의 신자 / 18. 쏟아지는 햇볕 / 19. 개울가의 어린애 / 20. 미로(迷路)에 서 있는 목사 / 21. 뉴잉글랜드의 축제일(祝祭日) / 22. 행렬(行列) / 23. 드러난 주홍 글자 / 24. 후일담(後日譚)

■ 작품 해설
■ 작가 연보
■ 재출간 후기

저자소개

너새니얼 호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4년 7월 4일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독실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집안의 성이 호손(Hawthorne)이 아니라 헤이손(Hathorne)이었는데, 1659년 조상인 윌리엄 헤이손이 퀘이커 여신도들을 학대한 것을 수치로 여겨 호손 본인이 ‘w’자를 삽입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 학업에서는 탁월하지 못했으나 벌써 영국의 위대한 문학에 비길 만한 미국 문화 창조라는 야망에 불타서 열심히 집필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12년간 호손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광범위한 독서와 습작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적인 배경과 그 정신적 기질을 탐구해 자신 속에 배어 있는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 정신을 키웠다. 그의 데뷔작은 ≪팬쇼≫란 소설인데, 1828년 익명으로 자비 출판했으나 뒤에 미숙한 작품임을 깨닫고 모두 수거해 파기해 버렸다. 이후 한동안 단편에만 손을 대 초창기에는 주로 익명이나 가명으로 신문, 잡지 등에 기고했다. 1837년에 12년간의 은둔 생활 동안 쓴 단편들을 모은 우화적 단편소설집 ≪두 번 하는 이야기들≫을 친구인 호레이쇼 브리지의 주선으로 출간했다. 이 단편집이 롱펠로가 천재라고 극찬한 논평을 위시해 문학계의 호평을 받게 되어 바깥 세상에 작가로서의 명성을 처음으로 알렸다. 1850년에는 그의 유명한 ≪주홍 글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호손에게 문학적·재정적 성공을 안겨 주었다. 이어서 1851년 ≪일곱 박공의 집≫을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와 ≪눈사람과 다른 두 번 하는 이야기들≫을 선보였다. 1860년에 ≪대리석 목양신≫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이탈리아라는 이국을 배경으로 죄를 통해 지성과 양심의 깨달음을 경험하면서 성숙해 가는 한 인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1857년 호손은 유럽 각지를 여행한 후 1860년에 귀국했다. 이후 1864년까지 웨이사이드에서 집필을 계속하면서 영국의 풍경, 생활 풍습 등을 스케치풍으로 그린 작품들을 발표해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점차 창작력과 건강이 쇠퇴해, 1864년 뉴햄프셔를 여행하던 중 5월 19일 플리머스에서 60세를 일기로 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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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5~1941년 선린상업학교에 재학했다. 성적이 우수했고 특히 주산과 미술에 재질을 보였다. 이후 동경 성북예비학교에 다니며 연극을 공부했다. 1943년 조선 학병 징집을 피해 일본에서 귀국했으며 안영일 등과 연극을 했다. 1945년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 《예술부락》이라는 잡지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했다. 1946 ~1948년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했으며 졸업은 하지 않았다. 1949년 김경린 등과의 친교로 시론과 시를 엮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북한군 후퇴 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다 탈출했으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부산, 대구에서 통역관 및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지냈다. 1957년 12월, 한국시인협회상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1959년, 1948~1959년 사이에 발표했던 시를 모아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춘조사) 을 출간했다. 1960년 4·19 혁명 발발. 이후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등을 잡지와 신문 등에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보였다. 1968년 6월 15일 밤 귀갓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에 치여 머리를 다쳤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수영은 과감하고 전위적인 시작법으로 오늘날 모더니즘 시의 뿌리가 되었고 문학의 정치 참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 또한 보여 주었다. “내일의 시”, “미지의 시”를 향한 그의 실험 정신은 언제까지나 신선한 충격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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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 젊은 여자 ― 이 애기의 어머니 ― 가 군중들 앞에 자태를 나타내자, 그녀의 최초의 충동은 애기를 자기의 가슴속에 꼭 부둥켜안는 일이었던 성싶다. 그것도 어머니로서의 애정의 충동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옷에 꿰매어놓았거나 달아놓은 무슨 표적을 그렇게 해서 감추려고 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이미 하나의 수치의 표적이 있는 이상, 그것으로 또 하나의 표적을 감춰보려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갓난애를 한쪽 팔에다 옮겨 안고, 불에 단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거만한 미소를 띠며 깜짝하지 않는 눈초리로 거리의 사람들과 근처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저고리 가슴에는 새빨간 천에, 금실로 정성스럽고 화려하게 수를 놓아 단을 댄, A라는 글자가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상당히 미술적이고도, 풍부하고 호화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으로, 그녀의 입고 있는 옷의 최후의 가장 적합한 장식의 효과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헤스터 프린은 지금 그 불명예스러운 초기에 우리들이 본 것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은 흘러가고 또 왔다. 진주는 벌써 일곱 살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슴에 이상한 수를 놓은 빛나는 주홍빛 글자를 달고 있는 모습은 이제 거리 사람들에게는 눈 익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사람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현저한 위치에 있고 그와 동시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이해관계를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 흔히 있듯이, 일종의 일반적인 존경이 헤스터 프린에 관해서도 생겨나고 있었다. 사람의 성질 속에서 이기심이 작용하지 않는 한 남을 미워하는 마음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 생기기 쉽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증오심은 조금씩 조용한 순차를 밟아서 차차 애정으로 변해가는 것이고 끊임없이 시초의 적의의 감정이 자극을 받고 그 변화가 방해되지 않는 한 그렇게 되는 것이다. 헤스터 프린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처럼 자극을 하거나 귀찮게 하거나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결코 세상과 싸우지 않았다. 아무런 불평도 말하지 않고 그의 최악의 처사에도 순종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헤스터 프린으로서는 진주가 가정을 갖고 있는 낯선 고장보다도 이 고장에, 뉴잉글랜드에, 한결 더 진정한 생활이 있었다. 여기에는 그녀의 죄가 있었다. 슬픔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또한 회개의 행위가 여기에는 있어야 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돌아왔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의사로 말하자면, 그 당시의 제아무리 가혹하고 엄격한 관리라도 그것을 명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까 ― 여태껏 우리들이 얘기해온 그 표지를 다시 몸에 붙였던 것이다. 그 후, 그것은 그녀의 몸에서 한 번도 떨어진 일이 없었다. 그러나 헤스터의 일생을 누빈 고생스러운 시름에 찬 헌신적인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에 주홍 글자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혐오를 자아내는 낙인이 아니라 그것을 보면 슬픔이 느껴지고 그것을 보면 두려우면서도 존경감이 우러나는 상징으로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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