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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20514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3-05-30
책 소개
목차
제1부 골목 위에서
주차 금지 / 과거형 간판 / 팥시루떡 / 골목 수집가 / 못 / 잔뿌리 / 동해 해물탕 / 몽당골목 / 금은 어디로 가나 / 담담 살롱 / 정 약국의 정 약사 / 방앗간과 우체통 / 어떤 옵션 / 열린 결말 / 소문났어, 소파 / 새벽을 걷다
제2부 골목 안에서
배꼽 / 무릎 소리 / 세탁기 / 일일천하 / 초침 / 유리주의 / 제자리 걷기 / 이름이 뭐였더라 / 젖은 우산 / 등굽잇길 / 개나리 벽화 / 모과나무 / 싸리비 / 벚 단풍 감 단풍 / 열무 꽃밭
제3부 골목 곁에서
봉숭아 물들이기 / 우리 동네 F4를 소개합니다 / 햇살 놀이 / 꽃보다 할매 / 외상 / 오버핏 / 꽃무늬 한 벌 / 파꽃 / 단골 골목 / 무더위 / 해피 엔딩 / 골목 벽화 / 등을 기대고 / 목격자를 찾습니다 / 옷이란 무엇인가 / 정지된 화면
제4부 골목 밖에서
나는 바람개비입니다 / 대소쿠리 / 작약 / 8월, 올레길 / 11월, 해파랑길 / 추자도의 수레국화 / 십리대밭 / 가파도 / 그녀라는 꽃말 / 수양벚꽃 / 벚나무는 까맸다 / 나무 삽니다 / 씨앗 / 돌양지꽃 / 늦 꽃
작품 해설 : 골목에서 골목으로 길을 열다 - 이병국
저자소개
책속에서
추필숙 시인의 『골목 수집가』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분명하고 시집의 마지막 장에 이른 독자의 지점은 명확하다. 마주한 골목은 정감이 어려 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가난할지언정 비루하지 않다. 또한 골목 위의 존재는 연대의 가능성으로 충만하고 골목 곁을 지키는 마음은 따뜻하다. 물론 골목 안의 ‘나’는 조금은 위태로울지라도 골목을 살아간 시간만큼 골목 밖에서도 새로운 삶을 추인하는 강한 의지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골목은 우리가 가 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자리이자 시가 현존하는 장소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집에 담긴 시편을 읽기 전에 골목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한다. 골목을 상상하는 우리는 추필숙 시인이 형상화한 바에 어떠한 의문도 제기할 수 없다. 예컨대, 「주차 금지」에서 드러나듯 “늙은 타이어 하나” 앞에서 “젊은 타이어 넷”이 “꼼짝 못 하고 물러간다”는 표현이 구현하는 아이러니한 유쾌함처럼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장소의 정동으로 전환하여 골목이 지닌 내밀한 삶의 어떤 양태를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끔 한다. 이는 우리가 경험한 삶의 과정에서 골목이 환기하는 기억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구획된 공간이 주는 삭막함과는 달리 골목은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일종의 어우러짐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한다. (중략)
골목을 떠나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 역시 또 다른 삶의 골목을 마련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삶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알기 위해 씨앗을 “묻고/햇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씨앗」). 길을 열어 새로운 골목을 맞이하는, 마중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하늘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 위해서는 “삶은 언제나 끝에서 시작”(「늦 꽃」)한다는 말처럼 골목 끝을 골목의 시작으로 전유할 수 있어야 한다. 골목에의 정주(定住)가 골목에의 안주(安住)가 되지 않도록, 존재의 내밀함이 꽃 피어나도록 “엎어지고 포개지고 다시 물러나고 흩어”(「11월, 해파랑길」)짐의 세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열린 장 속에서 어떤 골목이 새로 마련될지 알 수 없기에 그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골목을 경험해본 존재라면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추필숙 시인의 시는 말하고 있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골목 수집가
오늘은 민무늬 골목에 다녀왔어요
골바람이
앙상한 몰골로 골목을 지나가네요
사족이 덕지덕지 붙었으나
끊어낼 수 없는 잔소리 같은 모습으로요
한때는 잡초를 사족이라 생각했어요
더러 쉼표처럼 싹을 틔운다고 반긴 적도 없지는 않았지요
오후엔 꼬리가 아홉이라는 가로등이
주인공으로 나올 막장 드라마가
이 골목을 배경으로 찍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무명이 길어 공백을 견디기 힘들다는 바로 옆 골목은
내일 가보려고 해요
조금 전 모퉁이에서 만난 유모차 한 대
백미러도 없는데 자꾸 곁눈질하며 아직도 지나가요
빈 상가 앞에서
골목의 주인처럼 앉아 있던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생선 꼬리에 대해 캐물어요
신발가게 여자가 끄는 신발엔 자꾸 돌이 들어가나 봐요
한 발로 서서 다른 한 발을 탈탈 털어내네요
그러고 보니
민무늬도 무늬라는 걸
조금씩 옮겨 다니는 골목의 무늬라는 걸
골바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봐요
어떤 옵션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으쓱할수록 방값이 싼 줄 알고
당당하게 월세를 깎아달라고 했다
주인이 손끝으로 가로등을 가리킨다
으스스하다니, 내 속내를 눈치챈 주인이
저건 옵션이야 대신 방값은 무조건 삼십삼만
기분 탓인지 약간 삐딱해 보이는
가로등을 사이에 두고
북향이면 어떠냐고
밤낮으로 훤하기만 하다는 주인의 눈길을 피해
방 대신 가로등만 살피고 있으려니
쓰레기 버리지 마시라는 경고와
접시꽃이 내놓은 흰 접시 분홍 접시가 수북하다
주인은 내가 원한다면
저 접시도 옵션으로 주겠다고 했다
옵션은 많을수록 좋지만
골목 끝 집임을 들먹이며 끝에 붙은 삼만을 떼달라고 했더니
주인은 무슨 소리냐고
돌아서면 여기가 첫 집이라고 했다
마침 가로등이 불을 켠다
매일 불 켜진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