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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22235
· 쪽수 : 580쪽
· 출판일 : 2025-07-25
책 소개
목차
<오늘의 한국문학>을 펴내며
일러두기
1. 농촌 점경
2. 돌아온 아들
3. 마을 사람들
4. 춘궁
5. 마름집
6. 새로운 우정
7. 출세담(出世談)
8. 산보
9. 청년회
10. 농번기
11. 달밤
12. 김 선달
13. 이리의 마음
14. 그들의 부처
15. 원두막
16. 중학생
17. 청춘의 꿈
18. 두레
19. 일심사
20. 소유욕
21. 그들의 남매
22. 희비극 일막
23. 누구의 죄
24. 출가
25. 두 쌍의 원앙새
26. 번뇌
27. 위자료 오천 원
28. 풍년
29. 그 뒤의 갑숙이
30. 신생활
31. 비밀의 열쇠
32. 수재(水災)
33. 재봉춘
34. 갈등
35. 희생
36. 고육계(苦肉計)
37. 먼동이 틀 때
용어풀이
작품해설:이기영의 『고향(故鄕)』론_ 김병구
작가연보
작품목록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금부터 삼십여 년 전에는 원터 앞내 양편으로 참나무숲이 무성했다. 원터 뒷산에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서 대낮에도 하늘이 잘 안 보였다. 그 숲 위로 달이 떠오르고 뒷산 송림 속으로 해가 저물었다. 여름에 일꾼들은 녹음에서 땀을 들이고 젊은 남녀들은 달밤에 으슥한 숲 속을 찾아서 청춘의 정열을 하소연하였다. (…중략…)
나뭇갓을 베고 나서 추수를 앞두고, 잠시 일손을 쉴 동안에 젊은이들은 그들을 따라와서 장난치고 농담을 붙였다. 넓은 들 안에 벼이삭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데 그들은 유쾌하게 청추(淸秋)의 하룻날을 보내었다. 남자들은 상수리를 털어주고 누가 많이 줍나 ‘저르미’를 하였다. 그것으로 묵을 쑤고 떡을 해서 그들은 서로 돌려주며 먹었다.
그때는 그들에게도 생활이 있었다. 그들의 생활에는 시(詩)가 있었다.
이태 동안 두레를 내서 이웃 간에 친목이 두터운 마을 사람들은 불의의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전 같으면 앞뒷집에서 굶어도 서로 모르는 체 하고 또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는데 그것은 그들의 처지가 서로 절박하여서 미처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뿐더러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인심은 부지중 그렇게만 만들어놓았던 것인데 지금은 굶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려는 훗훗한 인간의 훈김이 떠돌았다. (…중략…)
만일 이웃 간에서 누가 굶는데 양식 있는 집으로 먹이를 꾸러 갔다가 그 집에서 거절을 하는 지경이면 그 집과는 수화를 불통하고 안팎 없이 발을 끊는다. 지금 학삼이네가 그렇게 온 동리 사람에게 돌려내서 일꾼도 타 동리에서 얻어 와야 할 형편이었다. 이것은 불문율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무서웠다.
“지금 우리가 안승학이라는 철면피와 같은 마름에게서는 완전한 결말을 지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그 결말이라는 것은 한때입니다. 금년에 해결되었다가 명년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승리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이 희준의 말을 경청하였다.
“듣고 보니, 참말 그렇군!”
조금 있다가 그들 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사실이야 이기다니, 우리가 무얼 이기었겠어. 그 마름이 어떤 사람이라구…… 나종에 걸리기만 하면 어데 보자! 하고 단단히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별를 사람인데…….”
누구인지 이렇게 장래를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습니다! 피차에 서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왜 그리고 또, 이번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번 행동을 정정당당한 수단에 의해서 우리의 튼튼한 실력으로 하지 못하고 한 개의 위협 재료를 가지고 굴복 받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