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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84375178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6-03-04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심장이 자주 멈춰 마치 숙명처럼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아이로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 나온 날은 두 번이나 연이어 죽음 가까이 갔던 날이기도 하다. 나는 태내에서 거꾸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의사는 난산이 예상되자 황망한 얼굴로 아빠에게 산모와 태아 중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는 잠시 망설이다가 산모를 택했다.
조산사는 아기가 나오자마자 살아있길 바라는 희박한 기대감을 안고 내 등을 토닥였고, 내가 숨을 터뜨리는 순간 병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정작 엄마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딸은 이미 둘이나 있었으니까.
1975년은 지금처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 병원에서도 내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사는 출산 직후 내 푸르스름한 피부색을 보고도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고, 그저 난산 탓이려니 했다.
엄마는 우리 세 자매 이름을 꽃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 첫째인 로즈는 아름다웠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고, 나보다 네 살 위인 둘째 릴리는 백합처럼 희고 고왔지만 독살스러웠다. 엄마는 한동안 내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뭉그적대다가 세례를 받을 무렵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데이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더 예쁘고 뜻깊은 꽃도 많은데 하필이면 늘 꺾이고, 짓밟히고, 어디서나 곁다리일 뿐인 꽃을 내 이름으로 택한 것만 보더라도 엄마가 나보다 언니들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마음은 더없이 서글펐다.
시글라스를 다시 눈앞에 마주하니 숨이 멎는 느낌이 든다. 런던에서 콘월까지 차로 다섯 시간 걸리지만 기차를 이용하면 좀 더 시간이 단축된다. 나는 기차에 앉아 번잡한 도시가 추억이 깃들어 있는 시골길로 바뀌는 풍경을 묵묵히 감상했다. 나는 몹시 번잡하고 바삐 돌아가는 런던보다는 느리고 단순하고 고요한 시골 풍경이 좋다.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면 가끔 멀미가 나는 편인데 오늘은 끄떡없다. 나는 다른 가족들보다 일찍 시글라스에 도착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다행이다.
시글라스는 지난번 왔을 때와 별반 달라진 점이 없다. 빅토리아 양식 석조주택으로 작은 첨탑들과 청록색 기와로 이루어진 지붕, 화강암으로 된 외벽을 장식한 푸른 유리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시글라스는 콘월 해안에서 가까운 섬에 자리한 집으로 멀리서 보면 철썩이는 파도에 둘러싸인 건물처럼 보인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블랙샌드 베이로 알려진 작은 해변과 가파른 절벽, 이정표 없는 오솔길이 있는 곳.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지만 다들 시글라스를 꺼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할머니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말했다. “시글라스는 트릭시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트릭시가 우리 가족의 미래라는 사실에 다들 이견이 없을 줄 안다. 내 나머지 재산과 향후 발생할 저작권 수입은 트릭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신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릴리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할머니의 재산 전부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이 집과 저작권료를 트릭시를 위해 남긴다고요? 그럼 저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잖아요? 할머니, 노망나셨어요?”
로즈가 비웃듯이 픽 웃는다. 로즈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딱히 기분이 상해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넌 나중에 트릭시의 소유가 될 신탁재산을 넘봐서는 안 돼. 너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이제부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길 바란다. 세상은 너희들에게 빚진 게 없어. 난 이제부터 마지막 책을 쓰며 여생을 보낼 거야. 너희들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겠지만.”
아빠가 말했다. “글을 쓰지 않은 지 오래되셨잖아요?”
“그동안 딱히 쓰고 싶은 글이 없었는데 이제 생겼어. 이기적이고 사악한 가족 이야기.”
엄마가 물었다. “우리 가족 이야기를 쓰려고요?”
할머니가 말했다. “이제 막 구상을 끝냈어.”
아빠가 샴페인 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 이야기라면 책이 그다지 많이 팔릴 것 같지 않네요. 우리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었으면서 굳이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뭐죠? 저는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