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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5482243
· 쪽수 : 432쪽
책 소개
목차
#9장. 대항해시대
#10장. 장사의 신
#11장. 노디악 상단
#12장. 사랑을 알려 줘
#13장. 언 바다에 불을 던지는
#외전 1. 사랑앓이
#외전 2.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
#외전 3. 즐거운 나의 집
저자소개
책속에서
양측은 모두 곤혹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리나 측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섰을 때, 슈베르크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어 있는 것은 가운데 한 자리뿐이었다. 일레노아의 자리일 터였다.
일레노아가 이 계약의 주체라면 이리나 또한 이 계약의 주체였다. 일스 사람들이 곤란해했던 것은 그런 이리나가 제일 구석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쟤는 왜 말도 없이 또 저런 미친 짓을 하는 거야?
반면, 슈베르크 쪽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했던 것은 일스인들이 자꾸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 수상한 행색의 사람을 힐끔거리면서.
그러나 그들의 가운데 자리는 비워져 있었고, 상단의 대표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침묵이 깨진 것은 달칵거리는 작은 문소리 덕분이었다. 방 안의 사람들과 함께 이리나도 힐끔, 그쪽을 봤다.
일레노아가 대런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
변함없이 새하얀 얼굴. 서늘한 눈동자. 느리지만 우아한 걸음걸이.
우리 예쁜 쓰레기, 잘 있었니? 그 미모는 여전하구나.
이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를 몰래 관찰하던 이리나는 흠칫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습관처럼 사람들을 스윽 훑던 일레노아의 시선이 어느새 자신을 향했기 때문이다.
일레노아가 들어가다 말고 멈칫하는 것을 대런을 비롯한 사람들은 의아하게 보았다. 그는 꽤 오랜 시간 멈춰 섰으나 곧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일레노아는 어느 순간부터 한쪽을 아예 쏘아보고 있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수상한 행색의 사람이었다.
“…….”
저쪽의 행색도 이상했지만, 이쪽도 예의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슈베르크 상단 사람들은 난처해했다. 상단주가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인 건 유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모두는 굳은 얼굴로 눈치만 살폈다.
이 자리에서 이유를 온전히 짐작하는 건 오직 둘뿐이었다.
이리나는 고개를 좀처럼 들지도 못하고, 테이블 밑에서 손만 꼼지락댔다.
그녀는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쟤가 진짜로 나를 벌써 알아봤나?
- 심미안이 없을 뿐이지, 눈썰미가 없는 게 아닙니다.
이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후드째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일레노아는 눈을 아까보다 더욱 날카롭게 뜨며 하, 웃었다.
그는 허공을 한 번 바라보다 차가운 시선으로 이리나를 쏘아봤다.
분위기는 결국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는 닉이 수습했다.
“저, 임페논어를 할 줄 아는 분 계십니까. 죄송합니다만 키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슈베르크 간부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임페논어를 할 줄 알았다. 대런은 답변을 하려 했으나 일레노아는 비딱하게 웃으며 키센 표준어를 우아하게 발음했다.
“키센어를 그새 잊으신 건 아닐 테고요.”
“…….”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는 역시 귀신같은 남자였다. 일레노아가 보통 예리한 사람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리나는 이 순간 그의 눈썰미에 솔직하게 감탄했다.
놀라게 해 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리나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책하며 후드를 끌어 내렸고, 그러자 숨겨져 있던 붉은 곱슬머리가 와르르 쏟아졌다.
고개를 든 이리나는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야. 일레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