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38435826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23-02-08
책 소개
목차
서장 대나무의 가을
제1장 1968년 여름
제2장 1968년 가을 ~ 1973년
제3장 1974년 ~ 1976년
제4장 1977년 ~ 1982년
제5장 1983년 ~ 2018년 봄
종장 대나무의 봄
리뷰
책속에서
남편이 나가자 부엌에서 혼자가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긴카는 가마솥을 씻던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양조장 뒤편의 대나무 숲이 와삭와삭 울고 있다.
눈을 감자 노랗게 물든 수많은 댓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은 대나무의 가을. 댓잎이 떨어지는 계절, 봄이다.
이 집에 온 지 벌써 50년이 되었다. 평생 대나무 소리를 들어왔다. 낮에도 밤에도,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행복했을 때도 그렇지 못했을 때도. 긴카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있어준 것은 양조장과 저 대나무 숲이었다.
가마솥의 물기를 닦고 식당을 들여다보았다. 세이코가 아기에게 젖을 주고 있다. 그 옆에서 사위인 사샤가 쌍둥이와 티격태격하며 된장국을 먹고 있다. 어디로 갔는지 남편의 모습은 없다.
-<서장 대나무의 가을> 중에서
“긴카에게 우리 양조장의 비밀을 가르쳐주마. 양조장에는 좌부동자가 산단다.”
“좌부동자? 그게 뭐야?” 긴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내밀었다.
“대대로 그 집에 사는 동자신인데 집을 지켜주지.”
“동자신? 남자아이야, 여자아이야? 나보다 커, 작아?”
큰 소리로 질문을 퍼붓자 아빠가 쓴웃음을 지었다.
“격자무늬 기모노를 입은 남자아이인데 실은 아빠도 본 적이 없어. 좌부동자를 볼 수 있는 건 야마오 가문의 당주뿐이지. 요컨대 좌부동자를 본 사람만이 당주 자격이 있다는 소리다.”
“당주는 또 뭐야?”
“그 집안의 책임자라는 뜻이지. 회사라면 사장, 학교로 말하면 교장 선생님 같은 거란다.”
“아빠는 당주 아니야? 후계자랑 다른 건가?”
“후계자가 맞긴 한데 당주를 할 깜냥은 아니야. 아빠 적성에는 맞지 않아.”
아빠가 남의 일처럼 말하며 웃었다.
“적성에 안 맞는데 간장은 만들 수 있어?”
“전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하지. 큰일이구나. 긴카, 네가 아빠 좀 도와다오.”
“알겠어. 내가 도와줄게.” 긴카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제1장 1968년 여름> 중에서
“아빠를 구하러 가야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졌다. 긴카는 털썩 주저앉았다. 안다. 아빠는 죽었다. 죽어서 강에 떠 있는 것이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제 아빠를 만날 수 없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머리를 토닥여주던 그 손길을 느낄 수 없다. 두 번 다시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아빠가 죽어버렸다. 이제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
“긴카.”
다즈코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다즈코를 봤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평소의 엄격함이 깃들어 있었다.
“미노리 씨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문객은 나와 네가 맞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러고는 잠시 허공을 노려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울고 있을 여유도 없지.”
다즈코의 말을 듣고 바로 깨달았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신이 하는 수밖에 없다. 긴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2장 1968년 가을 ~ 1973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