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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94655053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5-05-21
책 소개
목차
라멘 평론가 사절
BAKESHOP MIREY’S
트리아지 2020
파티오 8
상점가 마담 숍은 왜 망하지 않을까
스타 탄생
리뷰
책속에서
온갖 매체에서 다뤄진 노조미의 중화 국수는 황금색 국물 안에 구불구불한 면발이 담겼고, 파, 발효 죽순, 챠슈, 소용돌이 맛살, 달걀조림이 절묘하게 배치되었다. 지극히 전형적인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맑은 국물의 아름다움에 사하시는 심상치 않은 박력을 느꼈다. 떨리는 손으로 구불구불한 면을 입에 넣자 기분 좋은 물결이 혀와 목구멍을 휩쓸 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왔고 면발의 탄력과 구수함, 좋은 식감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그 위로 휩쓸려오는 상쾌한 국물의 향. 국물을 마신 뒤에 밀려오는, 첫맛과는 전혀 다른 공격적인 풍미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당신 때문에 멋대로 규정당한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예요. 우리 손으로 직접.”
눈을 감으면 다운튼 애비의 포스터에 찍힌 저택이 떠올랐다. 고용인과 귀족으로 명확히 구분된 세계. 그걸 인정하지 않는 일본보다는 훨씬 양심적이고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레이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많은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이 느껴졌다. 유흥주점의 소음 탓에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그냥 자 버렸던 그날 밤부터였을까?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지도 모른다. 급식비를 낼 돈이 없다던 어머니가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미레이를 맡겨 둔 채 유부남과 마카오 여행을 떠났을 때였을까? 미레이에게는 슈퍼에서 할인하는 반찬만 먹이면서 애인조차 아닌, 어쩌다 한 번씩 가게에 들르는 샐러리맨을 위해 요리책을 옆에 두고 찜 요리에 도전하던 어머니의 필사적인 뒷모습을 보았을 때였을까? 어쩌면 마스카라가 번진 눈으로 “미레이 넌 열심히 노력해서 엄마 같은 인생은 살지 마.” 하고 안아주며 한 이불을 덮고 잤던 그날 밤이었을까?
이런 상황을 바꾸는 게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한다는 게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하지만 힘을 쥐어 짜내려고 할 때마다 ‘왜 나만’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며 미레이의 발목을 강하게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