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43009456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25-09-05
책 소개
목차
권1
권2
권3
권4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지금으로 보자면 옛날, 중납언(中納言)의 신분으로 딸을 많이 둔 사람이 있었다. 제일 큰 딸과 둘째 딸은 사위를 맞아 서쪽과 동쪽에 화려한 별채를 마련해 주고, 셋째와 넷째 딸은 성년식의 채비를 하며 애지중지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또 그에게는 이따금 찾아가 정을 나눈 황족 혈통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어머니를 일찍 여읜 딸이 있었다. 중납언의 본부인(이하 계모)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집에서 부리는 여방(女房)보다 하찮게 여기며 침전(?殿)의 한쪽 구석진 여느 방보다 바닥이 푹 꺼진 두 칸 정도의 공간을 주어 살게 하며 ‘아씨’라고 부르지도 심지어는 ‘애기씨’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했다. 이름을 붙여 주자고 하면 중납언께서 생각하는 바가 있으시겠지라며 피하기만 하고 그저 오치쿠보라 하라고 하기에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다. 중납언도 이 딸을 어릴 때부터 귀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더더욱 계모 마음대로 가혹하게 대하는 일이 잦았다. 돌보아 줄 든든한 친척도 유모도 없었다. 단지 어머니 생전부터 시중들던 몸종이 하나 있었는데 아주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여인으로 후견인으로 여기며 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불쌍히 여기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치쿠보의 아름다운 모습은 계모가 애지중지하는 딸들보다 못하지 않았으나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이 없었기에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오치쿠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취가 가득 차는 방에 힘없이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죽으면 소장님과 두 번 다시 말을 나눌 수 없게 된다. 언제까지나 함께하자고 언약을 했는데.’
지난밤에 옷감을 당겨 주시던 소장의 모습만이 눈앞에 어른거려 그립고 슬펐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이런 화를 당하는가? 계모가 의붓자식을 미워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로 세상 사람들도 이야기하는 말을 들었어. 그렇지만 아버지마저 그러시다니.’
오치쿠보는 무척이나 한스러웠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을 들은 소장은 자신이 무척 싫어졌다.
‘이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 텐가? 다 나 때문에 이러한 고충을 겪으시는구나.’
“여차여차해 방을 빼앗겼습니다. 창피를 톡톡히 당했어요. 빈방 남은 게 있습니까?”
“지금 빈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 사람이 든 방마저 신분 높은 자제분들이 밀고 들어와 차지한 상황입니다. 늦게 도착하신 게 사태를 악화시켰어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수레 안에서 밤을 지새우실 수밖에요. 보통 사람이라면 주인 있는 방이라고 말씀을 드려 보겠으나 지금 제일 권세가 있으신 데다가 태정대신(太政大臣)도 이분을 만나면 아무 말도 못하시는 분입니다. 누이 되시는 분이 천황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시니 이분도 권세를 부리고 계세요. 혼자만 총애를 받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주지 스님은 이렇게 말을 던지고 가 버렸고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절에 도착하면 바로 내려서 방에 들어갈 것으로 알고 수레 한 대에 여섯 명이나 타고 왔으니 너무나 비좁아 옴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그 괴로움은 중장 부인이 푹 꺼진 방에 있을 때 맛본 것보다 더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날이 밝았다.
‘저 진저리 나는 놈이 출발하기 전에 어서 돌아가자!’
계모는 서둘렀으나 부러진 바퀴를 묶고 있는 사이에 중장이 수레에 올랐다. 어제처럼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인지라 계모 일행은 그들보다 늦게 출발하자며 서 있었다. 이를 본 중장이 생각했다.
‘이처럼 욕보인 것을 훗날에 알게 되리라. 지금 아무런 표시를 남겨 두지 않고서는 보복하는 보람이 없지.’
중장은 시종을 불러 명했다.
“너 저기 서 있는 수레 앞으로 가서 ‘이제 우리한테 질렸소?’라고 말을 전하고 오너라.”
시종이 명을 받고 계모의 수레 앞에 바싹 다가가서 시킨 대로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저 수레의 나리이십니다.”
“거봐라! 역시 마음에 품은 바가 있어 저러는 게야.”
계모 일행은 의아해하며 수군거렸다.
“아직 안 질렸다!”
계모의 이 말을 시종이 중장에게 알렸다.
“성질 하고는. 대답이 밉살스럽단 말이지. 이 사람이 여기 타고 있는 줄도 모를 거야.”
중장이 웃으며 다시 말을 전했다.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니 언제가 다시 곤욕을 치르게 되리라.”
“대꾸도 하지 마라. 어이가 없다.”
계모는 하인을 제지했다.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이 없자 중장은 니조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부인이 중장을 말리며 말했다.
“정말 어머니께 무슨 짓을 하시는 거예요? 괘씸하게 중장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나중에 아버지께서 들으실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런 막말 같은 건 그만두세요.”
“저 수레에 어디 아버님께서 타고 계셨소?”
“형제들이 타고 있었으니 매한가지입니다.”
“아버님은 나중에 잘 모시면 마음이 풀려요. 내가 결심한 것은 꼭 해내고야 말 거요.”
중장이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