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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연 1

해연 1

이정운 (지은이)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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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연 1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해연 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0522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3-08-31

책 소개

이정운의 로맨스 소설. 그는 눈을 감고 제좌에 얼굴을 묻었다. "연, 당신의 냄새가 나."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 피로 물든 대전에 흩어졌다.

저자소개

이정운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필명은 동하(冬河). 작가연합 시나브로 소속. 낮보다 밤을 좋아하는 올빼미. 달과 초콜릿 같은 글을 쓰고 싶은 여자. [종이책]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2009) 기라 1, 2 (2009) 야한夜寒이야기 (2009) 폐황후 1, 2 (2010) 구중궁궐 1, 2 (2010) 제신의 분노 (2011) 폐하! 고정하여 주시옵소서! (2011) 경국지색 (2011) ASKY(안생겨요) (2012) 해연 1, 2 (2013) 혹애 1, 2 (2015) 이사님의 취미생활 1, 2 (2015) 이불 밖은 위험해 (2018) [전자책] 가슴아 그만해! (2015) 두 번째 밤 (2015) 1등과 2등의 역학관계 (2016) 재가 된다 해도 (2017) [연재] 이사님의 취미생활 1, 2 (2015) / 네이버 웹소설 너를 보여줘 (2016) / 네이버 웹소설 해연 (2016) / 카카오페이지 기다리면 무료 이불 밖은 위험해 (2017) / 네이버 웹소설 경국지색(개정판) (2017) / 네이버 N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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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시신은?”
제좌帝座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
신하들은 당황했다. 갓 황제가 된 남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흥분에 도취해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남자의 안색을 살폈다. 장인이 손수 빚어서 만든 듯 아름다운 얼굴에는 열기가 없었다. 한 점의 기쁨조차 찾을 수 없는 그 낯빛에 사람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현실로 되돌아왔다.
“채석암에서 몸을 던지셨습니다.”
좌중랑장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바닥에 닿은 두 무릎으로 피가 스며들었다. 남자는 그것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사방이 피바다였다. 이미 피가 묻지 않은 자는 없었다.
말없이 잠잠히 있던 남자가 결정했다는 듯 말했다.
“찾아.”
나지막한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찾아내. 시신이라도.”
좌중랑장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1정町이 넘는 높이에서 떨어졌다. 시신이 온전할 리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절벽 아래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저마다 다른 곳으로 떠내려갔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황제는 그럼에도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분의 시신을.
처음 일을 도모할 때부터 그랬다.
「시신은 가져와. 가능한 한 상처 하나 없이.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그렇게 당부하는 남자는 언뜻 꿈을 꾸는 사람처럼 몽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같은 남자로서 그 눈빛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분이 채석암에서 투신했을 때, 내심 안도했다. 한때나마 주군이었던 분을 더는 욕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러나.
좌중랑장은 눈을 감았다.
높은 곳에서 턱을 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눈에는 기이한 집착마저 감돌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황제였다. 원래의 황제를 저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주인. 불복종은 있을 수 없었다.
“분부하신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제좌에 몸을 묻었다.
“피곤하군. 쉬고 싶어.”
신하들은 눈치를 살피다가 예의를 갖춰서 고했다.
“소신들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인기척이 사그라졌다. 이제 대전에는 황제의 옥좌에 앉은 남자와 정적만이 남았다.
사방에 튄 혈흔과 바닥에 고인 더운 피는 이곳에서 어떤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게 했다. 심약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광경이었다. 그런 곳에서 남자는 정신이 빠진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차피 남자는 이런 정경에 이골이 나 있었다. 남자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일각刻 전까지도 북방의 장군이었다. 언제나 최전방에서 적들을 베고, 또 베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피비린내는 그가 감상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지 못했다.
“몸을 던졌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끝내 당신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
혼잣말로 뇌까리던 남자는 이내 인정했다.
“그조차도 당신다워.”
검은 머리카락이, 밤의 한 자락처럼 허공에 흩어졌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어둠조차 가리지 못한 찬연한 긍지 높은 눈으로 그의 부하들을 바라보았겠지. 최후의 순간까지도 애원도, 복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여자였다. 절벽에서 추락하는 모습은 흡사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으리라.
남자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예리한 날붙이가 관통한 듯 심장이 욱신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좌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자리였다. 그녀가 항상 앉아있던 자리였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이 의자에 앉은 그 자태가 그림같이 아름다워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라서 그녀 외의 다른 주인은 상상할 수 없던 자리. 그 자리가 그의 것이 되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품을 찾는 아이처럼 온몸으로 제좌를 끌어안았다. 어깨에 두른 붉은 망토가 바닥에 닿아 서서히 피에 물들었다.
그녀의 자리. 그녀가 늘 앉아있던, 그녀의 것…….
그는 눈을 감고 제좌에 얼굴을 묻었다.
“연, 당신의 냄새가 나.”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 피로 물든 대전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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