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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1345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14-02-19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7
1. 잿빛 웨딩드레스 :: 15
2. 결혼 3년 차 부부 :: 30
3. 움트는 싹 :: 69
4. 관계의 시작 1-용경 :: 91
5. 부부동반 :: 110
6. 3년 차 부부의 초야(初夜) :: 128
7. 장인과의 첫 독대 :: 160
8. 관계의 시작 2-도희 :: 183
9. 새로운 아침 :: 212
10. 밝혀지는 진실 :: 245
11. 도희의 뒷모습 :: 264
12. 무덤이 된 결혼 :: 291
13. 사랑의 다른 이름 :: 335
14. 변함없는 일상이 주는 기적 :: 378
15. 출발로 흔적을 덮다 :: 394
에필로그 :: 40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5년 전. 래만반도체 사옥 앞.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여름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인도를 걸어가는 24살의 도희는 누가 봐도 상큼한 아가씨였다. 턱선 보다 조금 더 긴 길이의 산뜻한 단발머리에 노란색 면 티셔츠, 그리고 발랄하게 받쳐 입은 흰색의 미니스커트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그녀의 뒤로 재잘재잘 통화하는 목소리가 새소리처럼 따라 흘렀다.
어느새 횡단보도 앞에 이른 도희는 초록색이 깜빡이는 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너기 위해 도로 위로 발을 내딛었다.
끼이이익!
타이어와 도로가 빚어내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고무 타는 냄새가 도희의 귓가와 코끝을 괴롭히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도희는 자신의 몸이 어떤 힘에 의해 확 끌어당겨지는 걸 느껴야 했다. 그 다음 느껴진 것은 예의 그 코를 찌르는 고무 타는 냄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옅은 에프터 쉐이브의 향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그 향을 맡고 싶어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향이 참 좋은 사람이구나. 이런 사람은 참 깔끔한 성격을 가졌을 거야.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낯선 사내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용경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잘 풀리지 않는 미팅 내용 덕분에 가슴이 답답해서 잠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 근처에서 차에서 내려 걷고 있던 중이었다. 꽉 짜여 진 스케줄 탓에 늘 시간에 쫓기는 자신인지라 이렇게 홀로 걷는 오 분, 십 분의 여유도 고맙기만 한 용경이었다.
도로 하나를 건너면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수많은 서류들과 곧 치러야 할 다양한 회의에 생각이 닿았다. 그 사실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대한 스트레스가 되어 기운을 뺐다.
바로 그 즈음. 용경은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걸음도 발랄하게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여학생이 보였다. 어쩌면 여학생처럼 보이는 직장 여성일지도 모른다는 짧은 감상이 스쳤다.
아무튼 느닷없이 용경은 그녀의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함께 스스로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젊은 날은 그저 치열한 전쟁터였을 뿐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했던 자신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살았었다. 부모 형제도, 돈도 그 어느 것 하나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자신이기에 남들의 몇 십 배, 아니, 몇 백배의 노력과 집중이 필요했었다.
'훗! 지치긴 했구나. 낯선 여자를 보며 추억에도 잠기고. 정신 바짝 차려라. 김용경. 네가 지금 이런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란 거 잘 알잖아?’
용경은 스스로를 꾸짖으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붉은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기 위해 깜박이는 걸 보았다. 서너 번 깜박이던 붉은 색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찰나 용경은 자신의 곁을 스치는 노란빛을 보았다. 순간 용경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노란빛을 확 낚아챘다. 횡단보도로 내려서는 노란빛과 횡단보도를 향해 질주하는 차를 동시에 보았기에 거의 본능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걸어오던 여자가 자신의 품에 들어왔고 질주해 오던 차 또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밀려 들어왔다. 차량이 선 곳은 이미 횡단보도의 반 이상을 물고 들어온 곳이었다.
숨마저 멈추고 있는 듯 아무런 기척이 없는 여학생을 조심스럽게 떼어 놓으며 용경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도희는 그윽하게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는 이내 옅게 볼을 붉혔다.
“괘, 괜찮아요.”
도희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용경의 시선이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향했다. 영락없는 고양이 눈매를 가진 여자였다. 그런데 여자의 맑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용경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녀의 맑고 깨끗한 동공을 조금만 더 마주보고 있으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어두운 기운을 들키고 말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느낀 그 느낌에 평소의 자신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황급히 상대의 시선을 피하고 만 것이다.
처음 본 여자이지만 여자에게선 맑고 깨끗한 냄새가 났다.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닌 뭐라고 해야 할까? 여자의 생명의 기운? 또는 영혼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자를 이루고 있는 그 깊숙한 내면의 무엇에서 나는 냄새였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배어들게 할 것 같은 냄새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답지 않은 오버군. 그 짧은 시간에 든 어이없는 감상에 용경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무당도 아니고 무슨 영혼의 냄새야. 큭.
시선을 옮기는 그를 따라 도희도 고개를 돌렸다. 조금 더 그와 눈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을 애써 눌러 담은 도희의 눈에 당황과 놀람이 뒤범벅이 된 젊은 남자가 고개를 조아리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신호를 못 봐서.”
자신도 놀라긴 했지만 상대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저도 주위를 살피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놀라셨죠?”
도희는 자신을 향해 깊게 허리 숙여 사과하는 젊은 남자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병원에라도?”
젊은 남자가 머뭇머뭇 물었다. 하지만 도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 분 덕에 무사해요.”
도희가 미소 지으며 용경을 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둘 다 이 분께 감사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도희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용경은 도희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눈부시게 미소를 짓는 걸 보았다. 웃는 모습이 참 잘 어울리는 아가씨란 생각이 스쳤다.
“앞으론 두 분 다 조심하십시오. 그럼 전 이만 바빠서.”
쓸데없는 자신의 생각에 쓴웃음을 지은 용경은 마침 신호가 또 다시 바뀌는 걸 보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가늘고 긴, 그러면서도 놀라울 만큼 차가운 감촉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목을 잡아당긴 것은.
“저기요. 제가 너무 감사해서 그런대요.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쑥스러운 모양인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눈가가 붉어진 채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 여자가 고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맞춰 왔다. 용경은 그녀의 얼굴과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그러쥐고 있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곤 나직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아니라 그 누가 옆에 있었더라도 도와드렸을 겁니다.”
자신의 답에 그녀가 잡고 있던 손목을 놓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야 용경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몸을 돌려 사무실을 향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여자의 말을 단칼에 쳐내고 사무실로 향하던 용경은 그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또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사람인가? 자신의 엉뚱한 생각에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났다.
일이라면 몰라도 이 세상천지 그에게 중요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뭐 굳이 중요한 사람을 꼽자면 자신의 비서이자 어릴 적부터 늘 함께 하고 있는 태준이 정도일까?
문득 돈도, 명예도 가졌지만 자신의 주변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용경은 보기 드물게 또 한 번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제 주변에 사람의 존재 유무를 살폈나 싶었던 것이다.
성큼성큼 걸어 횡단보도를 지나 건너편 건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도희는 활짝 웃었다. 남자가 사라진 건물은 자신의 목적지였던 래만반도체였다! 방문객일까? 아님 직원?
도희는 자신을 칠 뻔한 차주와 짤막하게 몇 마디의 인사를 건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계열사의 시찰을 나왔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래만반도체의 웅장한 사옥으로 들어서며 옅은 기대감을 가졌다. 만약 직원이라면 언젠간 또 마주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자를 보고 두근두근 가슴이 설렌 것은. 더구나 남자에게서 풍기는 에프터 쉐이브의 냄새와 체향이 함께 어우러져 풍기는 향이 이렇게나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은.
도희는 어쩌면 이런 것이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도희는 심장의 작은 모퉁이를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한순간에 내주어 버렸음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




















